담당자란 무엇인가?
온라인 교육 운영자가 출근해서 하는 일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다름 아닌 ‘문의 응대’다. 메일로 문의사항을 받기도 하고, 사내 메신저로 문의를 받기도 하지만 가장 많은 문의는 전화로 쏟아진다. 가장 빠르고, 가장 직관적인 문의 방법이기 때문에 행여나 실수로 대답을 할 위험이 있으며, 이력을 남기고 싶지 않은 고객님들이 선호하시는 방법이기 때문에 전화기의 벨이 울릴 때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준비태세를 취해야 한다. 그렇지만 전화로 문의받는 일을 1년 정도 하다 보니, 고객의 첫마디와 목소리만 들어도 이 사람이 통상적인 문의를 하고 끊을 사람인지, 말도 안 되는 컴플레인을 하려고 전화기를 힘껏 붙들고 있는 사람인지 수화기 너머로도 그 악력이 대충 느껴진다. 때때로 이 문의는 긴 싸움이 될 수도 있겠다 싶은 태세로 불평불만을 돌진해오는 진격의 고객도 허다하다.
하루는 평이한 전화가 걸려왔다. 개인적인 사유로 신청한 과정의 취소 방법을 문의하는 젠틀한 중년 남자분이었다. 직급으로 치면 차장, 빠르면 부장쯤 되었겠다 싶었으며 말투가 감미로운 것이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나오는 원장님 목소리와 닮았었다.
내가 가진 친절함 중에 가장 친절한 버전의 목소리로 메모장에 적어두었던 취소 매뉴얼을 그대로 읊고는 곧 수화기를 내려놓을 준비를 했다. 그러자 그는 "그런데요~" 라며 용건을 덧붙이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라니. 역접의 접속사는 늘 불안한 법이다. 이 평이하고 젠틀한 중년 남성의 문의사항의 뉘앙스가 역행하는 길에 들어선 것이다. "제가 이러 이런 과정도 들어보고, 주변에서도 많이들 들어봤다고 하는데요~ 이게 무슨 사이버강의인지 모르겠어요? ppt만 있고... 이걸 강의라고 만들어 놓은 건지…” 분명 조금 전까지 감미롭던 말투가 어쩐지 손에 피 한 방울 안 묻히고 여럿 저승 보내는 조직의 보스 마냥 싸늘하게 비아냥대고 있었다. 그의 불만은 콘텐츠에 구성과 내용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해당 강의는 사내에서 임직원들이 직접 직무에 필요한 내용들을 신규 인력이 들어올 때마다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작성한 ppt를 동영상처럼 만든 온라인 강의였다. 우리 회사는 이 과정이 온라인 강의처럼 운영될 수 있도록 플랫폼만 제공할 뿐이기 때문에 나에게 질의해도 개선사항이 나아질 리 없는 담화였다.
“시스템에 대한 문의가 아니라 콘텐츠에 대한 말씀은 사내 OOO 부서에 있는 OOO 수석님이 책임자로 계시니 그분에게 문의하시면 됩니다.”
곧바로 이어진 그의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나는 당황했다.
"제가 이 회사를 아는데요~ 말한다고 해도 바뀌지 않아요..."
나는 생각했다. (그럼 저한테는 왜 말씀하시는 건지…)라는 말이 목 구녕까지 차 올랐지만 다행히 수화기 너머로 전달되지는 않았다.
번지수를 잘못 찾은 그의 불평은 계속 이어졌고. 나는 하릴없이 듣고만 있었다. 어느 순간 현실을 자각한 그는 먼저 말을 줄였다. 내가 먼저 끊을 수도 없고 그에게 해줄 다른 말도 없는 상황. 적막이 흘렀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순간 아득하다가 불현듯 내가 통신사나 카드사에 전화 문의를 하고 끊기 전에 듣던 말이 생각났다.
“추가적으로 다른 문의사항은 없으신가요? 프로님?”
그리고 그는 대답했다.
“네, 여기까지 제 넋두리였습니다. 수고하세요~”
근래 들은 말 중 가장 낯선 단어였다. 넋두리라니. 이 통화에서 나의 수고는 무엇이었으며, 교육 운영자라는 것은 무엇인가. 넋두리란 또 무엇인가. 나는 넋두리를 들어야 하는 사람인가. 별안간 내가 알고 있는 모든 통념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진상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감정을 배제하고 기계처럼 응대한 지난날들은 잘못된 시간들이었을까. 아니 그렇다고 하면 일면식 없는 사람의 넋두리 마저 품는 일도 나의 직업적 사명의 일부일까? 업과는 별개로 인간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삶에서 필수 불가결한 일일까.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나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넋두리를 한다. 그리고 여러분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이것이 에세이인가? 에세이란 무엇인가? 넋두리를 포괄하는가?
글쓴이
담당자. 당신이 전화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생각보다 많은 일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