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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자까 May 03. 2017

나이를 먹으면 알게 되는 것들

성숙

큰 아이와 작은 아이 사이에 다툼이 있은 후, 큰 아이를 불러 꾸중을 하고 나면 큰 아이는 토라져 글썽이며 "아빠 싫어!!" 하고 자기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간다. "이 자식 말하는 거 봐!" 하고 크게 화를 내기보다 가슴이 아련하게 시려오기 시작하면, 아이가 아빠를 진짜 싫어해서가 아니라 가장 좋아하는 아빠가 자신을 믿어주지 않아서 서운해했다는 걸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다.


부모님 댁을 다녀올 때면 항상 손수 농사 지으신 채소와 야채들을 가득 실어 주려 하신다. "아~ 필요 없어요. 뭘 자꾸 가져가래요. 넘쳐나는 게 먹을 건데. 다음에 가져갈게요" 하고 싫은 기색을 내비치며 돌아서지만 금세 발걸음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부모님께서도 도시에 먹을 것이 넘쳐나는 줄 알지만 내 자식에게 손수 기른 채소와 야채를 직접 챙겨주시고 싶어 하신다. 그게 객지에서 생활하는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라는 건, 내가 어느덧 부모가 되고 내 아이에게 좋은 음식만을 먹이고자 할 때가 되어서야 그때 내 부모의 마음을 알게 된다.


퇴근 전이나 금요일 늦게 상사가 이런저런 일을 시키면, '아 뭐야 짜증 나게. 낮에는 뭐하고 꼭 마칠 때 되면 일 시키고 그래'라고 내색은 못하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상사도 미안하지만 어렵게 말을 꺼내고 일 지시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주저하면서도 단호하게 말해야 한다는 걸, 어느덧 나도 그만한 후배 사원이 생기고 누군가의 상사가 되고 나서야 알게 된다.


추운 겨울 내내 두터운 옷깃을 여미며 오들오들 떨 때면 지긋지긋한 추위를 원망한다. 빨리 따뜻한 날이 찾아오기를 학수고대한다. 그러고 나서 끈적이는 땀을 흘리는 무더운 한여름을 맞이할 때면 더운 계절을 원망하고 다시 차가운 계절을 그리워하는 건, 계절은 돌고 돌아 제자리를 찾는다는 걸 시간이 흘러 계절의 순환을 맞이하고서야 자연의 이치를 알게 된다.


대상의 이해는 드러난 현상과 내가 가진 기준으로 판단해서 생기는 과정의 결과가 아니다. 농익은 사과의 속살이 더 달고 맛있듯이 시간의 흐름은 생각의 여지를 만들어 내고 대상의 이해 범위를 한층 높혀주고 넓혀준다. 한창 혈기왕성할 땐 내가 세상의 중심이고 세상은 내가 판단하는 대로 이해될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며 알게 되는 것은, 세상은 그런 자신을 절대 이해시켜주지도 내 뜻대로 변화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대상과 사물의 속성을 이해하는 힘은 세월이라는 시간의 뜸을 들이면서 내가 익어가는 것이다. 나이를 점점 먹어가면 알게 되는 농후함은 그래서 사람을 성숙하게 하고 익어가게 만든다.


나이를 먹어가면 노화도 오고 건강도 나빠져 잃어가는 것도 많지만, 나이를 먹어가는 건 결국 세상의 이치를 한층 키워가며 이해를 키워가는 나 자신이 성숙해져 가는 과정인 것이다. 대상의 변화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해 대상의 이해 폭을 넓혀가는 것이 나이먹음의 가장 큰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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