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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자까 Mar 21. 2017

'내 어머니'라는 애잔함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우리 시대의 어머니에게 느끼는 감성의 전달 점은 각기 다르지만 그래도 비슷하게 공감하는 공통점이 있을 것이다.


7~80년대 개발 산업시대를 거치며 밤낮 일로 세월을 보내시고 자식들에게만은 더 좋은 옷에, 더 좋은 환경에서, 더 많은 공부를 할 수 있게 부단히 살아오셨다. 대학 입시 전에는 조용히 절에 가셔서 간절히 기도를 올리셨고, 좋은 직장을 잡고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이어나가길 기원하셨다. 완고한 남편의 내조를 끓는 속을 참아가며 하셨고 착한 아들, 딸의 성공을 위해 차가운 공기에 몸서리치시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길 위 생활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자신도 못다 한 공부에 대한 한(恨)을 품고 계셨지만 대학 문턱은 구경조차 하지 못하셨고 다만 아들의 학사모를 조용히 눌러쓰시고는 흐뭇한 웃음으로 아들의 팔짱을 끼시고 곁을 지키셨다. 그렇게 본인의 꿈을 누르고 가족을 위한 희생으로 젊은 시절을 관통해 오셨다. 정작 본인이 즐길 나이가 오자 청춘은 이미 다 지나가 버렸고 하나둘 몸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삶의 애환을 긁는 소리에 귀 기울 일 나이가 되셨다.


내 부모, 내 어머니가 늙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아니 적어도 나 자신이 한창 자라고 결혼 걱정, 취직 걱정, 직장 걱정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동안 생각지 못한 일이다. 나 자신이 중심이 되어 돌아가는 환경 안에서는 자신의 근심, 진로, 미래, 가족 걱정이 늘 주가 되었기 때문이다.


내 어머니의 나이 듦은 언제쯤 직면하게 될까?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경험상 병과 관련이 적지 않다고 본다. 늘 헌신하고 자식 봉사(?)에 여념이 없으신 어머니를 보면 당장 한계점이 오리란 상상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작던 크던 병이라는 이름으로 잠시 주춤하거나 고통받을 상황을 직시하는 순간 내 어머니의 나이 듦은 서서히 현실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내 어머니의 경우는 '당뇨' 다. 경중을 떠나 40여 년 가까이 재래시장 생활을 하시는 동안 감기, 몸살 정도는 수도 없이 겪어오셨지만 이번 병은 본인 스스로에게도 받아들이기 힘드셨나 보다. 건강하다는 자부심이 남다르셨던 만큼 갑자기 찾아온 병마에 걱정도 많으시다.


지긋히 손녀를 바라보시는 내 어머니


어머니의 이삼십 대는 나의 유년 시절이다. 기억 단편에 부모님 앞에서 춤추고 재롱부리는 기억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그때는 내 어머니의 자리는 확고하게 거대했고 무너지지 않을 성(城)과 같았다. 내 어머니의 사오십대는 나의 청년시절이다. 한창 일을 하실 때고 건강은 염려할 필요도 없었고 하루하루 바쁜 나날을 보내오셨다. 군대를 다녀오고 복학을 하고 졸업을 하고 직장생활을 이어오던 동안 나의 바쁜 생활만큼 어머니의 생활도 바쁘게 돌아가던 시기다. 그때의 내 어머니의 사오십대를 기억하는 내가 이제 사십 대를 지나고 있고, 내 아이들의 유년기를 보내고 내 아이의 수백수천 장의 사진을 담아가고 있는 지금. 어머니의 자리는 눈에 띄게 줄어가고 있고, 대신 어머니의 나이 듦은 눈에 띄게 늘어가고 있다.


장수 건강 시대이다. 쓸데없는 생각이지만, 불현듯 내 어머니의 다음 순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의 부재가 두려운 게 아니라 내 어머니의 부재를 상상해 보지 않아서, 해본 적이 없어서 가끔 가슴 한편에 아련함이 맺힌다. 이렇게 지금처럼 바쁜 일상, 바쁜 직장 생활에 빠져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내 어머니와의 작은 대화 하나, 기억해야 할 작은 추억 하나 뭐가 있을까, 뭐가 남을까 하는 아쉬움 같은 게 자꾸 생긴다. 올해는 잘해서 어머니 모시고 제주도 여행이라도 한번 다녀와야지, 그게 안되면 돈 모아서 해외여행 한번 보내드려야지, 맛있는 거 한번 대접해 드려야지, 밥 한 끼 해드려야지, 집안 청소 한번 해드려야지. 생각의 계획만 반복될 뿐 직접 나서서 해드린 게 없고 또 한해 한 해가 지나가 버리면 안 되는데 하는 조바심만 앞선다.


내 어머니는 늘 한결같이 말씀하신다.

밥 제때 찾아먹고 애들한테 가족한테 잘할 생각만 하라고...

본인은 괜찮다고,

돈도 없을 텐데 뭐하러 신경 쓰느냐 너희 맛난 거 사 먹고 즐기라고...

본인은 괜찮다고,

아프지 말고 옷 따뜻하게 입고 다니라고...

본인은 괜찮다며,


어머니는 늘 한결같으시다.
"나는 괜찮다..."


잃어버린 시간을 되돌려 다시 함께할 수는 없다.

지금이 중요한 것이고 지금 당장 누리고 사는 게 중요하다.

어머니와의 추억은 지금 할 수 있을 때 나누고 간직하는 게 낫다는 걸 깨달아 갈 시간이다.


수백수천 장의 아이들 사진만큼,

지금 내 어머니의 사진 한 장은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걸 알아가고 있다


건강때문에 산을 다니신다. 사진 찍기를 부끄러워하시는 어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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