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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환 Jan 18. 2022

광주 아파트 붕괴와 ‘전라디언의 굴레’.

현대산업개발 아파트가 반년 사이에 두 번 무너졌다. 그것도 광주에서.

조귀동의 ‘전라디언의 굴레’라는 책에 광주 무등산아이파크 2차 재개발 사업 이야기가 잠깐 나온다. 지난해 6월, 철거 중이던 건물이 무너져 9명이 죽고 8명이 다친 그 현장이다.


그리고 7개월 뒤, 광주 화정동 아파트 공사 현장 붕괴 사고도 역시 같은 회사, 현대산업개발이 짓던 건물이다.
여러 언론에서 지적했고 이 책에서도 명확하게 짚고 있듯이 참사의 원인은 실정법을 위반하고 재재하청을 맡기면서 공사 비용이 발주 금액의 7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데 있다. 현대산업개발이 한솔건설에, 한솔건설은 백손건설에, 백손건설은 아산개발에 연쇄적으로 하도급을 줬다. 3.3평방미터에 28만 원이던 해체 공사 비용이 4만 원으로 줄었고 원가를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철거를 진행했던 게 원인이다.


조귀동은 단순히 건설 업계의 구조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지역의 부패라는 측면에서 이 사고를 좀 더 깊게 들어간다.


학동 4구역 재개발조합장 조종진은 ‘동구의 대통령’이라고 불렸던 사람이고, 구청 직원들이 꼼짝 못할 정도로 지역의 실력자였다. 박주선 전 의원의 핵심 측근이었고 광주 동구 의원에 당선돼 부의장까지 맡았던 사람이다. 2010년에 선거법 위반으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고 의원직 박탈됐지만 여전히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그랬던 사람이 학동 3구역 조합장을 지내다 공사가 끝나자 4구역으로 옮겨와 조합장을 내쫓고 새로 조합장에 당선됐다. 조귀동은 “그가 대통령이라고 불릴 정도로 성장한 것은 재개발 사업을 매개로 돈줄과 정치적 연줄을 동시에 잡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리고 조종진을 도와 실력 행사를 했던 사람이 5·18구속부상자회 회장을 지낸 문흥식인데 이 사람은 원래 학동에서 활동하던 건달이었다. 신양OB파 부두목이었고 학동 3구역 재개발 사업에서 상당한 돈을 벌었다고 한다. 문흥식은 철거 업체에게 3억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현대산업개발이 특별히 연고가 없었던 광주에서 대형 사업을 여러 차례 수주한 것은 조종진과 손을 잡았기 때문이라는 게 조귀동의 분석이다. 현대산업개발이 조종진의 후원자 역할을 했고 조종진은 그 과정에서 정치인과 구청, 폭력조직 등과 이합 집산체를 형성했다는 이야기다.


위민연구원 이사로 있는 정준호는 광주일보 칼럼에서 “얼키고 설킨 지역의 이권관계를 부분적으로나마 확인하면서 재개발 사업을 지렛대로 지역의 토호로 변신을 꾀하고 있는 세력과 이를 묵인하고 있는 정관계 인사들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있으리라 예상”했지만 “경찰의 중간 수사 결과는 그야말로 무기력과 허탈함 그 자체”라고 비난했다.


두 사건의 관계만큼이나 관심이 가는 건 조귀동의 지적처럼 이게 광주라서 가능한 일인지 아니면 현대산업개발의 문제인 건지, 아니면 지역을 떠난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인 건지다. 아마도 셋 다 얽혀 있는 사건일 가능성이 크다. 참고로 지난해 학동 사고로 현대산업개발에 부과된 과태료는 3320만 원 밖에 안 됐다.


다음은 ‘전라디언의 굴레’의 한 대목.


“광주는 내재적인 역량이 없고 거버넌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자원을 투입해도 성장할 수 없는 일종의 제3세계형 저발전의 함정에 빠졌다고 할 수 있다.”


(‘전라디언’이라는 표현이 일베 용어라서 논란이 있었고, 저자가 조선일보 계열 언론사 소속이라 반감을 갖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것과 책이 담고 있는 문제 의식은 별개다. 추천할 만한 좋은 책이다.)


조귀동에 따르면 지방 지배 체제는 재경 엘리트와 지역 기반 정당, 그리고 중앙 정부의 재원에 의존하는 지역 개발 사업이라는 세 축으로 구성되는데 2010년 이후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됐다. 지방 경제가 쇠퇴하면서 전통적인 고정 자본 투자의 효과가 크게 줄어들었고 인구 이동이 일단락되면서 중앙과 지방의 관계도 단절됐다. 지역 소외도 문제지만 그것과 별개로 지역 엘리트들의 무능과 지방 정부의 부패가 근본 원인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조귀동이 제안하는 해법은 크게 두 가지 방향이다. 첫째, 정치 구조와 거버넌스의 개혁, 둘째, 서울과 분업 구조를 벗어나 자생적인 발전 역량을 확보하는 것. 특히 호남의 문제는 서울과 지방의 공간적 분할 구조와 탈산업화 과정에서 야기되는 지방의 위축이 본질이고, “중앙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시민 사회 전체가 동원되고 자신들의 엽관과 출세를 위해 호남몫을 받아내는 엘리트 정치 대신 주민들의 의견이 반영되고 건전한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는 진짜 지역 정치를 외치는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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