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기억

일탈

by HAN

며칠 전 차를 타고 라디오를 틀었는데 국민체조 음악이 나왔다. 오래전 학교에서 했던 그 체조의 음악. 왼쪽, 오른쪽, 옆구리를 외치는 진행하시는 분의 경쾌한 목소리에 맞춰 머리가 체조를 따라 했다. 익숙함의 편안함이라 할까?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 나지만 너무 반갑고 좋았다.




보이지 않지만 어딘가 저장되어 있는 기억들. 많은 일들 중 무엇이 저장되는 걸까? "초등학교"(우리 세대에는 국민학교) 하면 생각나는 한 순간은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다. 3학년 때, 아침에 일어났는데 숙제를 안 한 것이 생각났다. 엄마한테 이야기를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난 그날 학교를 안 갔다. 그리고 시장에 살던 나는 동네 아이들과 시장 안을 뛰어다니며 놀았다. 정신없이 놀다가 나를 향해 걸어오시는 담임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선생님은 엄마와 말씀을 하시고 돌아가셨고, 그 후는 기억이 없다. 야단을 맞지는 않은 거 같다. 그런데 그 순간이 또렷이 남아있다.


난 아침에 일어나서 잠깐은 걱정하고 당황했지만 가뿐히 털어내고 학교를 안 간 대신 확보한 그 시간을 즐겼다. 그때의 어린 나를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웃음이 나는 이유는 그 시간을 즐겼다는 거다.

학교를 안 간 건 그때가 처음이었고 그다음에 또 그런 일은 없었다. 어려운 형편에 태권도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하실 만큼 난 너무 소심한 아이였다. 집에서는 안 그랬는데 학교에서는 많이 위축된 아이였다. 지금 생각하면 위축된 어린아이의 머리에서 생각한 첫 번째 일탈이었던 거 같다.


엄마가 왜 야단을 안치셨는지는 모른다. 어떻게 하냐고 내가 미리 징징댔을 수도 있다. 어쨌든 난 그 순간이 민망함과 함께 좋았던 기억으로 오래 남아 있다.


난 지난 1년이 사춘기, 갱년기 반항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글을 적다 보니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순간순간 일탈을 즐기며 나의 소리를 내고 있었던 거 같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감사하다. 나의 일탈을 누군가는 받아줬을 테니까.


누군가의 사소한 일탈도 조금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바라봐 주면 좋겠다. 지금의 나처럼 생각할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