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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youngjoo Dec 31. 2021

크리스, 생일 축하해





크리스, 생일 축하해. 네가 태어난 정확한 날짜를 기억할 수는 없지만 너를 처음 만난 날만큼은 확실하게 기억할 수 있어.

너는 크리스마스를 4일 앞두고 우리와 만났어. 너는 기억나? 너의 두 살이 끝나갈 때 쯤 우리 처음 만났잖아. 너를 만나는 게 마냥 쉬운 일은 아니었어. 가장 완벽한 너를 찾기 위해 수십장의 사진을 봤고, 많은 상담을 했고, 서너장이 넘는 자기소개서까지 썼다니까. 그렇게 마침내 너를 가족으로 맞아들이기로 하고 준비를 하면서 난 많이 설렜었어. 기대도 컸고, 너의 모든 걸 알고 싶었고, 앞으로 최고로 행복하게 해주고만 싶었어. 너를 데리러 가기 전날밤이 기억나. 봉사센터 홈페이지에 올라와있는 너의 흔적을 발견하려고 그곳에 다녀갔던 봉사자들이 올린 글들을 샅샅이 뒤져봤었어. 너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어. 봉사자들이 찾아가면 안아달라고 달려나오는 개들과 달리 너는 센터 안의 텐트에만 콕 박혀있었다면서, 너를 ‘텐트 사랑 크리스’라고 부르더라고. 그때 생각했었어. 내성적이고 겁이 많은 아이겠구나. 그리고 그 짐작은 맞아 떨어졌지. 때마침 우리 집에도 당시 여섯살이었던 딸 아이를 위한 비슷한 텐트가 준비되어 있었어서, 나는 그 텐트를 너를 맞이한답시고 펼쳐놨다가, 오히려 안좋은 기억일수도 있겠다 싶어서 다시 접었다가, 했던 밤이 아직 생생해. 다음날 마침내 너를 만났고, 집으로 돌아와 우리가 함께 있는 첫 ‘가족사진’을 받아본 센터의 봉사자분은 “크리스가 가족분들과 잘어울린다”는 덕담과 함께 ‘크리스’라는 네 이름의 뜻에 대해 설명해줬어. 크리스라는 이름은 ‘크리스마스 전에는 평생 함께할 가족을 만나서, 꼭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내라는 뜻’이면서, “이름대로 이루어졌네요”라는 말과 함께 말이야.


그렇게 낯선 존재였던 네가 우리 가족이 되어 함께 5번의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냈네. 그동안 우리는 정말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됐지. 우리는 실수로 바닥에 음식을 떨어트리거나, 외출 후 집에 돌아오며 문을 열 때 네가 달려드는 모습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게 됐어. 가끔 네가 미용을 하러 병원에 가 있거나 할 때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어. 그럴 때면 생각해. 널 만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사실 내 어릴 적 꿈은 성공한 어른이 되어서 유기견보호센터를 짓는 거였어. 돈을 아주 많이 벌고, 유기견 센터를 지어서 100마리, 200마리의 유기견을 수용할 수 있고 아주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보호센터 소장이 되고 싶었어. 그런데 현실은 쉽지 않더라. 내 한 몸 사람구실하기도 버거운데 보호센터라니. 그런 비슷한 꿈도 꿀 수가 없구나 싶었던, 어린 딸아이를 몇년째 돌보면서 자신감도 활력도 잃어가던 그런 어느 때였어.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꼭 그 꿈이 100마리, 200마리여야 할까. 1마리를 행복하게 해주면 그건 적어도 1/100, 1/200 만큼의 꿈은 나도 이룰 수 있게 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말야. 다행히 가족들도 모두 내 계획에 찬성해줬고, 그렇게 나는 너를 만나면서 내 꿈의 작은 조각을 이뤘던 거야. 그리고 너를 만난 후 나는 작가가 되겠다던 꿈도 이뤘어. 너를 자랑하고 싶어서 이렇게 잡지에 글을 연재하게 되었고, 주기적으로 글을 쓰는데 자신감이 붙어서 꾸준하게 글을 쓰다가 올해는 책도 발간하게 됐거든. 앞으로 쓰고 싶은 글들이 많은데 그 시작이 너를 만난 것이었다는 걸 결코 부정할 수 없을 거야.


너의 꿈은 뭐였을까? 말 못하는 너를 두고 꿈을 함부로 추측하는건 아주 별로인 일일 것 같지만 하나는 마음대로 생각해도 맞지 않을까? 니가 행복해지고 싶어한다는걸 말이야. 너의 이름은 거기에서 온거라고 했어. 니가 행복하다고 표정으로 말해왔던 순간들을 떠올려봐.


처음 우리 집에 오고 나서 당시 집 앞에 있던 공원을 산책할 때, 어떤 할머니가 너를 몇살이냐고 묻고서 “왜 이렇게 늙어보여?”라고 툭 내뱉었던 때가 기억나. 그때 나는 너무 속상하고 분했었는데, 점점 니가 살이 붙고 눈물자국이 사라져가면서 밖에 나가기만 하면 예쁘다는 감탄과 비명을 받게 됐잖아. 사람에게나 개에게나 외모가 그리 중요한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네가 우리집에 온 뒤로 엄청나게 예뻐졌다는건 분명한 사실이야.


우리 처음으로 차타고 드라이브했던것. 처음으로 같이 한강에 가서 텐트를 친것. 사실 그때가 나도 첫 한강텐트였어. 평생 서울에서 나고 자라면서 한강에서 텐트치고 놀 생각을 한번도 못했는데, 너랑 함께여서 가능했던 것 같아. 니가 오면서부터인지, 한창 자라나는 아이가 집에 함께여서인지, 아마 둘 다 이겠지만 우리는 참 자연을 많이 즐겼어.


우리가 같이 캠핑을 갔을 때도 그래. 저번 초가을 캠핑은 생각보다 너무 추웠잖아. 같이 별을 보고, 해가 떨어진 후에는 너무너무 추워서 그때 꼭 껴안고 잤었잖아.


아 맞다, 너는 이제 잡지에도 나오는 개야. 우리끼리 얘기지만 사실 가끔 너를 ‘연예견’이라고 부르기도 하잖아.


너는 발표되지 않은 주제곡도 있잖아. 그 노래의 가사를 처음으로 공개해보면 이래. <가족들이 모두 외출을 하고 나면 나는 거울을 본다네. 거울 속 내 몸은 온 몸이 꿈틀꿈틀. 몸통은 좀 길지만 난 신경쓰지 않아. 왜냐면 난 유럽의 인기견종 말티푸, 말티푸, 말티푸.> 크리스.


택배로 간식이 배달되어오면 너는 눈이 반짝거리고 꼬리가 흔들거려. 또 내가 옷을 사줬을 때도 크리스 네가 좋아한다는걸 난 네 눈빛에서 분명히 읽을 수 있어. 난 니가 말을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내가 네 말을 못한다고 생각해.


잘 못했던 산책을 즐기게 되어가던 모습도 생생해. 며칠전에는 니가 처음으로 거리에서 만난 다른 개 친구의 냄새를 맡기도 했잖아.


앞으로는 더 많은 걸 함께 즐기자. 같이 여행도 많이 가고, 수영장도 함께 가자. 별 보러 캠핑장도 또 가고, 성대한 생일파티도 열어줄게. 커다란 추억들을 만들면서 우리, 무엇보다 평범한 서로의 하루하루에 늘 함께 하자. 그리고 그게 무엇보다 소중하고 행복하다는 걸 언제나 기억하자. 너의 여섯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크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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