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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youngjoo Jul 11. 2020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처럼 우리의 추억을 뿌려둘게

크리스의 크리스마스


개를 좋아해온 시간이 긴만큼, 개에 대해 많은걸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입양을 앞두고 많은 이들이 “막상 키우면 생각과 다를 수 있다”고 말했지만 이미 거의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크리스는 내 생각과 달랐던 모습이 많았다. 제일 달랐던 건 생각보다 산책을 안좋아한다는 거였다. ‘산책 싫어하는 개’, ‘산책 안좋아하는 개’ 같은 키워드를 초록창에 얼마나 많이 검색해댔는지 모른다.     


 

입양 첫 날, 반려인의 기본상식(?)인 1일1산책을 위해 준비해뒀던 목줄과 배변봉투를 들고 나간 거리에서, 크리스는 한 발도 떼지 못하고 안겨만 있다가 들어왔다. 발을 바닥에 붙이기를 한사코 거부하는 크리스를 다시 안고 집으로 들어오면서, 다리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엄청나게 걱정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다리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후, 매일 꾸준히 크리스를 데리고 나갔다. 인터넷에서 다른 반려인들에게 도움도 많이 청했다. 산책을 안좋아하는 개들도 의외로 제법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간식을 가지고 나가기, 힘들어할 때는 잠깐 안아주기, 가고 싶어하는 곳을 그냥 지나치지 않기 같은 팁들도 많이 얻었다. 그렇게 크리스는 서서히 적응을 해가는 듯 했다. 집앞 공원을 꽤 신나게 달리기도 했다. 나도 크리스와 함께 하는 산책에 탄력이 붙어, 점점 나가는 거리와 시간을 늘렸다. 우리의 산책적응기는 그렇게 단기간에 성공하는 듯 했다.      


과유불급. 이 단어를 여기서도 만날줄은 몰랐다. 산책을 많이 하면 할수록 좋은 일일줄 알았다. 어느날 한시간이 훌쩍 넘는 거리를 달렸던 날, 크리스는 다시 낑낑대며 걷기를 거부했다. 그렇게 힘들게 다시 집으로 돌아온 날 이후로 크리스는 다시 산책을 싫어하는 개가 되었다.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했다. 매일 조금씩 걷는 시간을 늘려나갔고, 걷기 싫어하면 안고 걸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짐작할 수 있었다. 크리스가 갑자기 산책을 다시 거부하기 시작한 이유, 그리고 산책을 아직도 썩 좋아하지 않는 이유를. 그건 집에서 너무 멀리가면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탓인 것 같다. 이렇게 짐작한 이유는 크리스가 집에서 산책을 출발할 때는 걷기 싫어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산책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신난 모습을 바뀌어 곧잘 뛰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크리스가 뛰는 모습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일 때만 볼 수 있다. 가끔 사람이 많지 않은 큰 공원에 갔을 때면 그런것도 잊은 채 뛰는 크리스를 볼 수 있다. 아마 그때가 크리스 입장에서 가장 행복한 산책일 것이다.      


-크리스 입장에서     


크리스는 그동안 많이도 변했다. 생각해보면 크리스에게는 힘든 적응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물론 나도 변한 생활에 적응하느라 나름대로 공을 들이긴 했어도, 크리스가 겪은 격변의 시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거라 짐작한다. 무엇보다 입양의 주체는 나였고, 항상 내가 마음먹은 대로, 내 시간표대로 크리스는 따라야 했으니까. ‘산책나가자고 하면 컹컹대며 좋아하는 발랄한 개’를 상상한 것도 나고, 집에서 머나먼 산책의 경로를 정하는 것도 일방적으로 나였다. ‘집에서 멀어지는건 무섭지만 돌아오는 길이라면 괜찮아. 바람을 맞고 해를 쬐는 건 좋지만 집에서 멀리가는 건 싫어’라는 크리스의 마음을 이해한 후부터, 우리의 산책길은 조금 달라졌다. 집에서 나올때는 먼저 안겨서 걷는다. 벤치에 앉아서 예열시간을 갖기도 한다. 그런 후 천천히 원하는 속도로 집에서 멀어졌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음껏 달린다. 그리고 이 방법을 크리스는 훨씬 더 즐긴다.    


  

크리스가 산책을 즐기게 된 것을 아는 건 어렵지 않다. (새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참새와 비둘기를 쫓고나면 바로 표정이 의기양양해지고, 잘건너지 못했던 하수구 위를 폴짝 잘도 뛰어넘고는 내 표정을 확인한다. 산책을 한 후 집에 돌아가는 길을 어렵지 않게 찾아내고, 마침내 아파트 앞에 도달했을 때 크리스가 뿌듯함을 느끼고 칭찬을 바란다는 걸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이렇게 둘이서 산책을 하다보면, 애니멀커뮤니케이터가 되는 것도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크리스의 마음이 읽힌다.  

    

집에 오는 길을 잘 알 수 있는 지점에 도달하면 크리스의 꼬리가 흔들리고 엉덩이가 가볍다. 나와 함께 사는 우리집에 돌아간다는 것에 저렇게 들뜨는 크리스가 더욱 예쁘고 고맙다. 집에 돌아오는 길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과자부스러기를 뿌려둔 헨젤과 그레텔처럼, 온동네에 너와 나의 발자국과 추억을 잔뜩 뿌려둘게. 사랑해 크리스야.           




<이 글은 매거진P 6월호에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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