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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youngjoo Mar 08. 2023

특별주문케이크

그림책스터디


결혼을 하기 전에는 내 손으로 계란프라이 한 장 부쳐먹어본 적이 없었다.

그랬기에 내 가정이 생기고 난 후 제일 곤혹스러웠던 건 가족들의 식사를 담당하는 일이었다.


주위의 다른 친구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어떻게 엄마는 이걸 한걸까."

하는 놀라움으로 시작됐던 대화는 마지막에는 늘 비슷한 변명을 찾아냈다.

"한식이 원래 너무 번거로워."


정말 그랬다. 심지어 내가 주부생활을 시작했던 시기는 '집밥'에 대해 약간은 천시하는 분위기가 생기기도 했던 때와 맞물려 있었다. 그러니까 주로 여성의 사회생활과 관련된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던.


정성들여 집밥 안차려도 미국애들은 잘만 큰다는 인터넷 게시글을 보면 사진 속 그들의 점심급식식단이 특히나 단촐한 게 눈에 띄기도 했다.


한식은 정말 번거로운 게 맞다.


대충먹자는 김밥 한번 하려면 계란 지단 만들어 썰고, 우엉은 간장에 달콤하게 졸이고, 당근은 가느다랗게 채썰어 볶아내고, 시금치는 알맞게 데치고, 햄을 굽고, 밥은 식초와 소금으로 간하고, 김발에서 터지지 않게 돌돌 말아야 한다.


대충 국 한그릇 놓고 먹으려고 해도 어딘가 성의 없어보이고 허전해서 온갖 밑반찬이 있어야 하니까.


서양식의 식사는 진짜 편하고, 편하다고 해서 성의없다거나 영양가가 없다는 공식으로 귀결되지도 않는다는 게 한국식 집밥의 비효율성을 공격하는 글들의 요지였고,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성의를 보이기 위해 공을 들이는 요리의 과정 자체를 폄하할 수는 없지 않을까.


그림책 <특별주문케이크>의 비둘기 할머니는 특별한 케이크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이웃 생쥐가족에게 선물을 하려는 곰아저씨, 고백을 준비하는 토끼소년, 중요한 시합을 앞둔 친구들을 위한 선물을 준비하는 달팽이소녀, 결혼기념일을 축하하려는 다람쥐와 족제비 부부 등이 고객이다.


비둘기 할머니는 각자의 고객들이 좋아하는 음식재료를 정성스럽게 준비해서, 맞춤형으로 특별한 케이크를 준비해서 고객들의 소중한 날들을 빛내준다.


그 정성에 많은 고객들이 감동하고, 덕분에 할머니의 케이크가게는 늘 바쁘다.


그런 할머니에게도 케이크를 준비해주고 싶은 친구가 있었다. 할머니는 친구가 좋아하는 지렁이를 준비해 열심히 케이크를 준비해서 친구와 나누어 먹는다.


'직접 해야지'라는 알 수 없는 오기로 쌀 한알한알을 직접 씻고 불려서 만들어먹였던 이유식들.


"이럴 거면 사먹는 게 낫지"라는 말을 들어가며 일일이 밀가루를 밀어서 칼국수를 만들어먹었던 어느날의 밥상.


재료를 살 때부터 설레고 귀했던 그 마음들이, 책을 읽으며 하나하나 떠올랐다.


일상의 모든 밥상을 누군가가 전담해서 힘들게 차려낼 수는 없지만(그러니까 '특별주문밥상'이 아닌 '특별주문케이크' 겠지 . 케이크는 특별한 날에 먹는 거니까), 소중한 날을 위해 정성들여 준비하는 음식만큼 귀한 마음은 없다는 생각도 든다.


난 케이크를 만드는 재주는 없지만, 가끔씩은 번거롭고 수고롭게 특별한 음식을 만드는 고생을 하고싶다. 그걸 해주고싶을만큼 귀한 사람과 귀한 날들이 존재하는 인생을 살고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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