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맞춤정장을 생각하며
삼거리양복점
큰 회사 면접을 앞두고 있을때 엄마와 함께 이대앞 맞춤옷가게에 가서 정장을 맞춰입은 적이 있다
엄마는 외할머니와 함께 동네 양장점에서 옷을 맞춰입었던 얘기를 나눠주며, “그런데 요즘도 옷을 맞춰서 입냐, 그냥 백화점에서 기성복사서 평소에도 입지.”라고 권했었다
난 그냥 맞춤정장을 입기를 고집했고, 그때 그 면접은 떨어졌고, 이후 그 옷은 옷장에서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
‘부’로 시작했던 그 옷가게는 이후 내가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때까지 지속적으로 영업문자를 보내오다가, 마침내는 폐업을 알리는 문자를 마지막으로 내 기억에서 사라져버렸다
오늘 초등학생 딸아이의 학교 총회에 다녀와 이 그림책 <삼거리양복점>을 읽는데 갑자기 그 옷과 옷가게 생각이 났다
‘학교총회룩’을 검색해도 이제는 칼같이 떨어지는, 어딘가에서 거하게 맞춘 듯한 옷에 대한 수요가 확실히 사라진 것 같다
차마 버리지 못한채 옷장만 차지하던, 오랜만에 꺼내본 그 옷은 이제는 정말 입을 수 없겠다싶은 너무나도 클래식한 정장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거의 2000년대 후반 여성면접룩. 이라고 박물관에 받제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 비주얼
세월의 변화에 빠르게 발맞추어 변화하는 것들이 아닌, 변화를 따르지 않고 정체되어있는 것들은
그 정체 자체로 전시할만한 하나의 예술이 되어버리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