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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선장수 Oct 07. 2018

행복 : 결국 행복은 ?

서은국, 행복의 기원 06

심리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도 '매슬로우의 욕구단계 이론'은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인간의 다양한 욕구들은 피라미드 모양의 위계적 단계를 이룬다는 것이다. 가장 아래 단계의 생리적 욕구들(식욕 등)이 채워져야 보다 고차원적인 상위 욕구에 관심이 생긴다는 전제다. 한마디로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다.


하지만 이 철옹성 같던 매슬로우의 이론도 최근 위아래가 뒤바뀌고 있다. 금강산 구경을 위해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 욕구(식욕, 성욕)를 채우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금강산 유럼(자아성취)을 한다는 것이 최근 진화심리학적 설명이다.


피카소나 칭기즈칸뿐 아니라, 자아성찰의 교과서적 인물인 간디나 마틴 루터 킹 목사도 사실은 대단한 여성 편력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많은 경우, 금강산을 찾아가는 이유(자아성취를 하려고 하는 이유)를 본인도 모른다.



매슬로우를 비롯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은 정확히 말해 '가치 있는 삶 good life'이지 '행복한 삶 happy life'가 아니다. 행복은 가치 value나 이상, 혹은 도덕적 지침이 아니다. 천연의 행복은 레몬의 신맛처럼 매우 구체적인 경험이다. 그리고 쾌락적 즐거움이 그 중심에 있다. 쾌락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지만, 이것을 뒷전에 두고 행복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행복하기 위해 쾌락주의자가 되자는 말인가? 다소 그럴 필요가 있다. 그동안 우리는 내일이 없이 즐겁게 사는 베짱이를 한심하게 생각하도록 세뇌받고 살았다. 두 가지 염려 때문에. 첫째, 쾌락주의자들의 즐거움은 저급하다. 둘째, 그런 삶의 말로는 한심한 것이다. 둘 다 근거 없는 염려다. 수많은 최근 연구들에서 나오는 결론은 오히려 그 반대다.


행복한 사람들을 오랜 시간 추적한 연구들을 보면 행복한 사람일수록 미래에 더 건강해지고, 직장에서 더 성공하며, 사회적 관계도 윤택해지고, 더 건강한 시민의식을 갖게 된다. 이러한 연구에서 어떤 사람을 '행복한 사람'으로 정의했을까? 남의 칭송과 칭찬을 받으며 사는 사람이 아니라, 일상에서 긍정저인 정서를 남들보다 자주 경험하는 사람이다.


가치 있는 삶을 살 것이냐, 행복한 삶을 살 것이냐는 개인의 선택이다. 다만, 이 둘은 같지 않다는 것. 그리고 어디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삶의 선택과 관심이 달라진다. 무엇이 가치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하여 잣대가 필요하고, 많은 경우 그 잣대의 역할을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다. 앞에서 설명했듯 여기서 행복은 역풍을 맞기 시작한다.


 

결론을 맺을 때다.

내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행복에 대한 두 가지 생각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어서였다.


첫째, 행복은 거창한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험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쾌락에 뿌리를 둔, 기쁨과 즐거움 같은 긍정적 정서들이다. 이런 경험은 본질적으로 뇌에서 발생하는 현상이기 때문에, 철학이 아닌 생물학적 논리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둘째, 행복에 대한 이해는 곧 인간이라는 동물이 왜 쾌감을 느끼는지를 이해하는 것과 직결된다. 가장 본질적인 쾌감은 먹을 때와 섹스할 때, 더 넓게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온다. 진화의 여정에서 쾌감이라는 경험이 탄생한 이유 자체가 두 자원(생존과 번식)을 확보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행복의 핵심을 한 장의 사진에 담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이다. 문명에 묻혀 살지만, 우리의 원시적인 뇌가 여전히 가장 흥분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바로 이 두 가지다. 음식 그리고 사람.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모든 껍데기를 벗겨내면 행복은 결국 이 한 장의 사진에 요약된다. 행복과 불행은 이 장면이 가득한 인생 대 그렇지 않은 인생의 차이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The rest is detai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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