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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선장수 Oct 12. 2018

법앞에서, 카프카의 전설

카프카 01


법 앞에 문지기 한 사람이 서 있다. 시골서 온 한 남자가 문지기에게 다가와서 법 안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문지기는 지금은 입장을 허락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 시골 남자는 생각에 잠겼다가 그렇다면 나중에 들어갈 수 있느냐고 묻는다. “가능하지요”하고 문지기가 대답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안되요.” 법으로 들어가는 문은 여느 때처럼 열려있고, 문지기가 옆으로 비켜서 있어서 그 남자는 문을 통해서 안으로 들여다보려고 몸을 구부린다. 문지기는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며 말한다. “그렇게 마음이 끌리면 내가 금지해도 구애받지 말고 들어가려고 애써보시오. 그러나 내가 막강하다는 것을 명심하시오. 나는 최말단의 문지기에 불과하지. 하지만 방을 지날 때마다 문지기가 서 있는데 점점 더 막강한 자들이지. 세 번째 문지기의 모습을 생각하니 나도 아찔해.” 시골 남자는 이러한 어려움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법은 모든 사람에게 언제나 개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모피외투를 걸치고 있는 문지기의 모습을 더 자세히 뜯어보고, 그의 큼직한 매부리코며 길고 듬성듬성하게 자란 시꺼먼 타타르인의 콧수염을 꼼꼼히 들여다보면서 그는 출입증을 받을 때까지 차라리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고 결심한다. 문지기는 그에게 의자를 내어주며 문 옆에 앉아 있게 한다. 그는 거기에 앉아서 수많은 날과 해를 보낸다. 그는 입장하려고 끝없는 시도와 간청을 하면서 문지기를 지치게 만든다. 문지기는 간혹 간단한 심문들을 하고 고향에 대한 것 등 여러 가지를 묻지만 그것들은 높은 사람들이 하듯 관심 없는 질문들이며, 마지막에 가서 그가 늘 반복해서 한 이야기는 그를 아직 들여보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여행을 위해 많은 것을 준비해 가지고 왔는데 상당히 값진 물건도 있었지만, 문지기를 매수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써버린다. 문지기는 모든 것을 다 받아 챙기며 그때마다 “내가 이것을 받는 것은 당신이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가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요.”라고 말한다. 여러 해를 보내면서 그 남자는 문지기를 거의 끊임없이 관찰한다. 그는 다른 문지기들을 잊어버리고, 이 첫 번째 문지기가 그가 법으로 들어가는데 유일한 방해로 여겨진다. 그는 이 불행한 우연을 저주하며 처음 몇 년을 막무가내로 큰 소리를 지르다가 나중에 늙어서는 속으로 혼자 투덜거린다. 그는 어린아이처럼 되어서 여러 해 동안 문지기를 탐구하다보니 모피 외투 벼룩에게까지 그를 도와주고 문지기의 마음을 바꿔달라고 간청한다. 마침내 그의 시력이 나빠지고, 그는 실제로 주위가 어두워진 것인지 아니면 그의 눈이 자기를 속이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어쩌면 그는 이제 어둠 속에서 법의 문으로부터 꺼지지 않고 비쳐 나오는 한 가닥의 빛을 느끼고 있다. 그는 얼마 살지 못한다. 죽음을 앞둔 그의 머릿속에 오랜 세월 동안의 모든 경험들이 지금까지 문지기에게 해보지 못했던 하나의 질문으로 압축된다. 그는 뻣뻣하게 굳어가는 몸을 더 일으켜 세울 수 없어 문지기에게 눈짓으로 말한다. 두 사람의 큰 차이가 이 남자에게 불리하게 변했기 때문에 문지기는 말할 때 그를 향해 몸을 숙이지 않으면 안 된다. “도대체 당신은 지금 서 뭘 더 알고 싶은 거요?”라며 문지기가 묻는다. “당신은 참 질긴 사람이군.” “모든 사람들은 법을 얻고자 노력하거늘.”하고 시골 남자가 말한다. “그런데 많은 세월 동안 나 이외의 어떤 사람도 입장허가를 받으려는 사람이 없으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요?” 문지기는 이 남자에게 죽음이 가까이 왔음을 눈치 챈다. 그래서 그는 사라져가는 청력에 이르도록 큰 소리로 말한다. “이 입구는 오직 당신만을 위해 지정된 것이니 여기서는 어느 누구도 입장허가를 받을 수 없소. 이제 나는 가야하니 문을 닫겠소.”

프란츠 카프카 - 법 앞에서


카프카는 이 글을 쓰고 스스로 만족과 행복감을 느낀다고 일기에 적으며 이 짧은 소설을 '전설'이라고 했다.

'나는 나를 만나기 위해 기다려야 한다'라는 명제가 나를 휘감고 있는 지금 이 글을 다시 보니 내가 기다려야 하는 내가 존재하기나 한 것인지? 그 내가 도래하기나 할 것인지? 상당히 의문스럽다.

예나 지금이나 카프카를 이해하려는 행동은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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