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정의당 혁신위원회 회의에 ‘강령 개정 방향 설정을 위한 권고안’으로서 제출한 것입니다. 전 대표들을 포함하여 강령 개정은 불필요하다고 주장하시는 분들도 일부 있었는데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강령을 여러 차례 읽고, 강령 중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에 대하여 서술했습니다. 토론과 수정을 거쳐 혁신안에 포함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정의당은 2012년 진보정의당 창당과 함께 강령을 제정하였다. 하지만 초기 강령이 당원 토론을 거쳐 제정되지 못했고, 당시 진보정의당이 추구하는 진보 혁신과 국가운영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이후 2년 간의 당내외 토론을 거쳐, 2015년 3월 3차 당대회에서 현재의 강령을 제정했다. 강령 제정 당시 강령제정위원장이었던 천호선 전 대표는 ‘2015년 강령’이 “보편주의 복지에 머무르지 않고 분배정의를 실현하는 정의로운 복지국가 만들겠다”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의로운 복지국가 7대 비전’을 제시해 정의당이 집권할 경우 정치·경제·생태·노동·사회·복지·평화 영역에서 구축할 새로운 사회와 국가의 모습을 일종의 ‘생애강령’으로 드러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강령은 현 정세와 당의 주체적 조건, 그리고 내용면에서 부족한 점이 있다. 5년 전의 사회적·주체적 조건에서 타당하고 합리적이었던 문제의식과 입장도 시간이 흘러 정세와 국면, 조직의 상황과 세력 구도가 변화하면 응당 변화를 요구받기 마련이다. 그 때문에 최근 당내외의 상당히 많은 연구자 및 활동가들이 강령 개정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김승무 대구시당 교육위원장은 “(현재의) 강령만으로는 정의당의 '정의로운 복지국가' 지향과 민주당의 '포용적 복지국가' 지향을 구분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에, “보다 급진적이고 생태주의적이며 계급적인 대안 사회의 상을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효성 강원도당 부위원장 역시 지금의 강령은 현 강령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자본주의의 심화된 폐혜를 지적하고, 대안 이념을 채택함으로써 민주당과 정의당이 전혀 다른 세력임을 천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김병권 진보정치연구소장은 현 강령이 가진 문제점과 한계를 크게 다섯 가지로 요약해 설명한 바 있다. 불평등 해소 정책의 미흡하며, 기후위기에 대한 비상적 인식이 부족하고 생태전환의 한계를 안고 있으며, 플랫폼 자본주의 시대에 급변하고 있는 노동현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고, 교육 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 역시 미비하다고 평가한다. 또, 치열한 정체성 정치 대립구도에서 “다양성과 정체성의 존중, 차별 철폐” 등 내용들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위와 같은 비판과 문제의식에 근거하여 강령 개정 T/F 활동을 통한 강령 개정을 제안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당원들이 공히 참여하고 토론할 수 있도록 하여, 당의 전체적인 인식 지반을 제고할 수 있는 기회로 삼길 제안한다. 덧붙여 정의당 혁신위원회는 강령 개정 과정에서 아래와 같은 문제의식이 담겨져야 함을 권고하고자 한다. 이 방향을 결의함으로써, 이후 강령 개정 과정에서 아래 문제들을 충분히 다루고, 담을 수 있길 제안한다.
우리는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는 단발적이고 국지적인 위기가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하는 구조적 위기이며, 정치·경제·사회·국제관계의 모순이 지역·인종·문화적 모순과 더불어 다차원적으로 폭발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따라서 아무리 특정 사건이 돌출될 때에라도 오늘날 위기를 어느 한 가지 측면에서 설명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2015년에 개정된 기존 강령은 “이전까지의 진보의제를 가장 온건한 수준에서 집약”하고 있으나, “새로 발생하려고 하는 미래적 과제를 도전적으로 제시하지 않”다. 급변하는 정세를 반영해야 한다. 이런 내용으로는 “기존 진보의제의 온건한 수준의 업데이트는 중도정당인 민주당과 진보정당인 정의당 사이에 ‘장강이 흐른다’는 느낌을 주기 어려”운만큼, “적극적인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2020년 이후 우리는 세계가 마주한 구조적인 모순을 보다 명징하고 시의적으로 재규정하고, 새로운 판단 하에 담대한 도전을 시작해야 하기를 요구받고 있다. 정의당 강령 개정 과정에서 이러한 상황 진단과 문제의식을 담보해야 한다. 사회복지와 빈곤, 주거, 교육, 노동 등 여러 영역에 걸친 사회 개혁의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향후 10년 중기적으로는 그린뉴딜과 주거 변혁, 교육 변혁, 청년 플랫폼 노동자와 경력 단절 여성, 새로운 실버 세대 등의 사회적 조직화와 정치적 대변의 기획을 포함한 ‘제7공화국’ 비전의 제시해야 한다. 더불어 장기적으로,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 국면에 대응하여 ‘녹색 사회국가-평화 공동체’ 비전을 제시하고, 중기적 대안들이 외적 적합성과 내적 정합성을 갖추기 위해서도 상기한 장기적 비전은 강령 개정을 통해 제출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현재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모순에 맞선 대안 사회의 흐름을 촉발할 수 있고, 정의당의 정치적 비전을 수립할 수 있다.
2000년대 이후 세계경제는 생산능력의 확대로 글로벌 수준에서 과잉생산과 그에 따른 과잉자본 문제로 장기불황이 지속됐다. 이런 흐름은 장기불황 상태를 극복하지 못했고, 공급과잉에 따른 상품의 시장가격 하락으로 장기 이윤율 축소는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기업들을 따라다니고 있다. 특히 노동유연화와 노동비용 축소를 목표로 한 생산의 세계화, 호황국면에서 축적된 노동자 임금의 수탈을 통해 이윤율 개선을 꾀한 신자유주의 금융화, 시장 이윤율 확대를 추구한 민영화 등 신자유주의 체제가 2008년 금융위기를 통해 파산했고, 이후 세계경제는 이윤율 증대와 수익성 확대를 위한 새로운 출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화폐 자본의 과잉은 막대한 기업 부채를 낳았고, 한계 기업을 양산했으며, 부동산 시장을 폭등시켰다. 과잉생산-과잉자본은 해소되지 못했으며, 세계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한국 경제 역시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전부터 수년 간 저성장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조선업과 자동차 산업 등에서 경고음이 지속되고 있었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소리 없는 칼날에 잘려나갔다. 장기적인 이윤율 저하 추세와 대외 종속성은 우리 경제 역시 마찬가지로 안고 있는 모순이다.
이러한 구조적 모순이 누적되던 와중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터졌다. 우한과 뉴욕에서, 밀라노와 런던에서 바이러스 유행에 따른 록다운(lockdown)과 셧다운(shutdown)이 이뤄졌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실시되자 세계 경제는 초유의 대량 실업과 마이너스 성장을 맞닥뜨려야 했다. 미국의 2020년 2분기 경제는 1분기 대비 32.9%가 수축했고, 이는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제통화기금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처음으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 경기가 후퇴할 것”이라며, -4.9%의 경제성장률을 전망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코로나19 재확산시 경제성장률이 -7.6%까지 낮아질 수 있다고 예측하고 있다. 여전히도 매일 수십만 명의 확진자가 늘어나고 사망자 70만 명에 가까워지고 있는 방역 상황에서 볼 때, 이런 비관은 틀리지 않아 보인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세계경제에 뉴노멀(new normal) 논의가 나타났다. 저성장, 저소비, 높은 실업률, 고위험, 규제강화, 미국 경제 역할 축소 등의 양상들이 세계 질서를 새롭게 규정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비대면, 온라인, 인공지능, 플랫폼 경제와 같은 예견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면서 세계가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눠질 것이라 말한다. 지금까지 운영되어 온 질서에 극적인 재구조화(restructuring)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러한 구조적 모순과 전환이 어떻게 촉발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별 이야기가 없다.
코로나 팬더믹(pandemic)을 통한 확산되는 경제위기는 완전히 새로운 위기가 아니다. 바이러스는 목적에 있던 시장 경제의 순환적 공황에 심각한 수준의 데미지를 안겼으며, 이 체제의 기저질환을 더 악화시키고 있고, 경제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 수요가 줄면서 상대적 공급과잉을 부추겼고, 기업부도 위험을 높이고 있다. 수출에 의존해야 하는 한국은 세계 경제와 더불어 마이너스 성장을 경험하고 있다.
결국 오늘날 공급과잉과 기업부채 악성화를 초래한 원인은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대응으로 나타난 ‘저금리’와 ‘양적완화’가 낳은 산물이다. 낮은 이자율로 금융위기 이후 더 많은 좀비기업이 양산됐고, 부실기업이 양산되면서 기업채권시장을 악화시키고, 공급 역시 과잉상태로 만드는데 일조했다. 저금리와 양적완화가 기업부실을 청산하지 못했고, 가계부채와 기업부채의 위험성도 높여왔다. 부실기업이 청산되지 못하면서 기업의 수익률은 떨어졌고, 경쟁은 심화되어 글로벌 공급과잉도 부추겼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2년간 세계가 이루어낸 경제성장은 중앙은행의 통화 발행과 금융기관에 대한 구제금융이라는 조건 속에서 이루어졌다. 빚은 줄어들지 않았고 되려 72조 달러가 늘었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저널리스트 폴 메이슨이 “2008년 경제위기 때는 금융 시스템이라는 지붕이 건물 위로 무너져내린 것”이었고, “데미지는 있었지만 건물 자체는 멀쩡해 보였고 많은 이들은 지붕을 다시 올리면 될 거라 여겼”지만, “이번에는 건물의 기초가 무너지고 있다”고 경고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이번 위기가 어느 정도 수습된다고 하더라도 수년 후 다시 더 큰 위기에 봉착하는 게 불가피하다. 더구나 대응 방식 자체가 ‘부자 살리기’를 초점으로 맞추고 있어 불평등을 가속화할 것이다. 가령 미국 경제에서 소득 상위 1%와 하위 50%가 차지하는 비중은 신자유주의 시스템 이래 심각한 역전을 보이고 있다. 한국에서도 2019년 기준 순자산 상위 10%의 점유율은 43.3%로, 전년보다 1.0% 포인트 증가했고, 상위 20% 가구의 평균 순자산(10억8517만 원)은 하위 20%(864만 원)의 125.6배에 달한다. 이런 격차는 2018년 106.3배에 비해 크게 상승한 수치로, 자산불평등이 매우 심각해졌음을 보이고 있다.
한국 사회는 신자유주의 시기에 소득 격차가 심화됐지만, 그보다도 더 심각한 것은 빈곤, 임금 불평등, 자산 불평등이다. 이 모든 문제는 이미 발전주의 시기에 형성된 한국 사회의 특징(이중 구조)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러한 특징이 신자유주의 시기에 지구화-금융화에 맞춰 변형-심화되면서 현재의 양극화에 이르렀다. 부유하고 가진 자들을 지원하는 양적 완화를 뒤엎고, 몫 없는 이들의 공동체를 구제해야 한다.
정의당의 새로운 강령에 위와 같은 자세한 진단을 모두 담을 수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기존의 2015년 강령이 이런 구조적 모순과 경제위기에 대한 진단이 전무하다는 사실이다. 그저 한국 사회에서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끊어졌다”는 진단만 내놓고 있으며, “자본주의의 탐욕을 제어하고 사회 전체의 조화로운 발전을 도모”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자본주의의 탐욕만을 제어하겠다”는 의지와 포지션으로는 오늘날 정세에 어울리는 진보정당의 새로운 태세를 다질 수 없다. “현재 수준의 강령으로는 구조적으로 고착되고 세대를 이어서 반복되는 ‘세습자본주의’적 불평등 해소를 타개할 비전을 담을 수 없”으며, “소유권과 재산권에 대한 더 확실한 제한, 더 확실한 재분배 정책, 더 강한 누진 조세와 상속제한 제도 등을 통해 ‘평등경제’로 진입하는 길을 보여주어야 한”다.
사회경제적 진단과 방향 관련하여 2015년 강령이 주요하게 담고 있는 지향은 ‘복지국가’다. 당시 강령제정위원장에 따르면, “사민주의지향을 분명히 하자는 주장이 규모 있게 제기되었으나 이에 대한 다수의 동의가 형성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 있었”고, “(사민주의를) 바탕으로 한 북유럽 복지국가를 실제하고 참고할 가치가 있는 모범의 하나로 보아야 한다는 합의”를 근거로 한다.
‘복지국가 담론’은 이른바 ‘스웨덴 모델’을 기초로 하는데, 과거 그것은 “소득보장과 사회서비스로 구성되는 보편주의적 복지체제”이자, “노동계급의 권력자원과 복지 국가를 지향하는 계급간 동맹”이었다. 하지만 스웨덴 복지국가라는 모델은 그 자체로 한 곳에 머무르는 정태적 개념이 아니며,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생성, 변화, 발전, 소멸하는 동태적 개념이다. 최근 스웨덴은 코로나 방역에 완전히 실패한 모습을 보이고 있고, 정치적으로도 극우 정치세력의 부상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런 것에 미뤄볼 때 여전히 우리가 지향할 모델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국민들에게도 전혀 그러한 메시지를 제시할 수 없다.
복지국가 모델은 2차 대전 전후의 정세에서 복지국가가 전체주의 국가의 대안적인 형태로 제시된 것이었다. 이러한 모델은 서유럽에서 잠시 성공적으로 등장했다가,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가 전개되고 국민사회국가가 위기에 빠지면서 첨예한 갈등을 낳는다. 사회적 권리들이 축소되고 시민권이 약화되면서 노동자계급 중 다수가 “재프롤레타리아화”되었고, 빈곤이 확대되는 경향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유럽의 위기는 복지국가 모델이 처한 딜레마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 ‘복지국가’라는 이념 설정이 다른 정치세력이 보다 오른쪽에 포진했던 과거에는 유효했을 수 있지만 이제는 아니다. 사람들은 정의당이 외치는 복지를 민주당의 복지와 크게 구분하지 못한다. 그저 약간 더 센 목소리로 들을 뿐이며, 그마저 어떤 울림을 주지 못한다.
소득 불평등의 증가, 경제적 붐과 불황의 반복적인 순환, 기후위기 등은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가 어떻게 제시되어야 하고, 어떤 대안이 가능한지 진지하게 고려하는 정치적 경향들을 새롭게 잉태하고 있다. ‘탈(脫)자본주의(Post-capitalism) 대안사회’, ‘녹색 사회국가-평화 공동체’의 지향 제시를 우회하고는 질 좋은 일자리와 고용 확대, 복지의 확대와 불평등 및 빈곤의 축소 등이 불가능하다. 적극적인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이제 우리의 문제는 우리 사회 패자부활전의 기회를 구걸하는 게 아니라, 엘리트 정치세력에게 이 위기를 치유할 능력 자체가 없음을 인식하고, 그러한 사회에서 근본적인 대안을 도출해야 한다는 과제를 인식하는 것에 있다.
창당 이후 정의당은 내내 ‘정치노선’이나 ‘이념’을 둘러싼 논쟁에 대해 덮어두고 보자는 식의 태도를 고수해왔다. 멀리는 민주노동당이 “이념 충돌로 인해 무너졌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으로 상징되는 진보정당운동은 이념의 ‘과잉’이 아니라 이념의 ‘홀대’가 문제였다. 이념으로 출발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조직 보위를 앞세웠고, 그 사이 꾸준히 다듬고 벼려야 할 이념이라는 ‘날’을 방치한 게 문제였다. 세력 간 투쟁의 중심에는 이념이 아니라 뱃지가 있었다. 이념의 경합이 아니라 ‘세력의 경합’이었고, 세력의 경합 속에 이념의 날은 무뎌졌다.
2020년 이후의 진보정당은 포스트-신자유주의 자본주의 경제 및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양산한 파멸적 상황에 대해 인식하고, ‘좀 더 인간적인 자본주의’나 시효 만료된 ‘복지국가’ 슬로건이 아닌, ‘탈자본주의 대안사회’를 명시적으로 지향해야 한다. 자본주의를 고쳐 쓰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그 모순을 넘어서겠다는 선언이 필요하다.
지구는 불타오르고 있다. 그리고 이에 맞선 혁명적 기후운동 역시 동시에 부상하고 있다.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가 “2020년에 이산화탄소 배출이 정점에 달하고, 2030년까지 45%를 감축하고, 2050년까지 ‘순제로’를 달성해야 지구 평균기온 1.5 이상의 상승으로 인해 겪을 파국을 합리적으로 피할 수 있다”고 선언하면서 촉발됐다. 많은 사람들이 벼랑 끝으로 몰리지 않기 위해 지구 시스템의 위기에 상응하는 규모로 사회경제적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는 걸 깨닫고 있다. “기후변화가 아니라 체제변화”라는 구호는 세계 풀뿌리 기후운동의 슬로건이 됐다.
그러면서 그린 뉴딜이 대두되고 있다. 허나 존 벨라미 포스터(John Bellamy Foster)에 따르면 대부분의 그린 뉴딜 계획들은 위로부터의 녹색 케인스주의(green keynesianism), 생태적 현대화(ecological modernization), 코포라티즘적인 기술관료(technocracy corporatism) 주도의 계획과 맥락을 같이 한다. 이것들은 온건 개혁적 녹색 자본주의의 입장에서 고용 촉진, 빈곤 퇴치 등을 일부 고려하며, 매우 친기업적이다. 나아가 문재인 정부의 그린뉴딜 역시 이런 맥락과 연장선상에 있고,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진보정당의 그린뉴딜은 이와 명백하게 달라야 하며, 우리는 그것을 당 강령에 명시함으로써 우리 당이 2050년까지 기후위기를 주요한 아젠다로 삼는 생태 정당으로 거듭나겠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2030년 탈석탄과 2050년 온실가스 배출제로를 위해 이를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도출하고,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기후정의운동을 국민들에게 제안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전환은 기업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정의로운 전환이어야 한다. 온실가스 0% 배출 달성을 위한 과정에서 ‘좋은 일자리’를 창출해야 하며, 독점을 지양하고, 지속가능한 먹거리 체계(sustainable food system)를 구축하고, 배출 제로 차량 인프라 구축, 공공 교통의 재편과 지역 공동체에서의 협력, 일자리 보장, 공공 토지의 보호 등을 명시해야 한다. 오염 기업 및 화석연료 투자자의 수입 및 자산에 세금을 크게 인상하고, 오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화석연료 산업에 대한 예산을 철폐하고, 자본과 부유층에게 기후위기에 대한 특별 세금과 벌금을 부담케 해야 한다.
거대 정당들은 실행 의지나 구체 계획이 없으면서도 선거 때면 유불리에 따라 약속을 남발한다. 기후위기 비상사태 선언, 국회의 특별위원회 구성, 그린뉴딜 정책 같은 ‘말 껍데기’는 손쉽게 포섭될 위험이 크다. 디테일을 만든다고 우려가 불식되는 건 아니다. 사회적 압력이 조금 더 커지면 민주당이나 위성정당에 참여한 인사들은 여기에 모두 동의한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의 말처럼 “진짜 위험은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이 뭔가 ‘하는 척’하고”, 실제로는 아무 것도 안 하거나 더 나쁜 일을 하는 것에 있다. 기후위기 시대는 기존의 정치·경제 권력과 대결할 것을 요구한다.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대중운동은 오직 진보정당의 몫이다. 앞으로 수십 년 기후정치의 시대를 앞두고 있는 만큼, 이런 문제의식과 2050년 탈(脫)탄소사회에 대한 지향을 강령에 명시하고 그 행동 강령 역시 구체화해야 한다.
한국 사회를 20:80으로 나눈다면 상위 20%는 산업화 보수세력과 86세대로 대변되는 브라만 좌파가 양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양대 정당은 모두 상위 20%만을 핵심적으로 대변하는 정당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그렇다면 누가 나머지 80%를 대변할 것인가? 정의당은 고학력 엘리트들을 대변함으로써 불평등 해소라는 중대 과제에 전혀 손대지 못하는 ‘브라만 좌파’와 결별하고, 재분배를 지향하는 급진좌파로 거듭나야 한다.
불확실한 세계를 개척해나가는 힘은 사회를 민주적으로 재조직화하는 것에 있다. 지금 한국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 우리가 지금 어떤 세계에 살고 있고 앞으로 어떤 세계에 살아가게 될 것인지 공포와 협박을 동원하지 않고 해석해줄 수 있으며, 긴 길을 함께 견뎌내기 위해 필요한 존중과 공존의 규범, 부단히 잠정적 결정을 내리면서 시행착오를 용인해낼 수 있는 인내를 설득해낼 수 있고, 당장의 잠정적 솔루션을 넘어선 근본적인 문제를 질문하고 대면하도록 이끌어줄 수 있는 주체, 사람, 관점”이다. 즉, “현재 세계에 대한 해석자, 사회적 조직자를 지향”해야 한다. 우리가 누구의 편인지, 무너진 주체와 무너진 사회에서 누구의 편에 서서 이것을 재-조직화하고자 하는지 보다 선명하게 밝혀야 한다.
작금의 한국 사회 자산불평등의 원인은 부동산 가격 폭등에 있다. 전 세계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듯, 서울의 부동산 가격 역시 평균 18.9%나 올랐다. 강남의 아파트 가격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 이후 2년 반 동안 무려 34%가 올랐다. 소득 5분위(상위 20%)의 자산구성은 75%가 부동산이고, 이와 같은 부동산 구성비는 5분위 계층들 중 가장 높다. 그런 와중에 청와대 핵심인사를 비롯한 여권의 정치인들이 이런 이해관계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들이 확인되면서 대중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이는 물론 미래통합당 정치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만큼 사회 엘리트계층의 투기 축적과 자산불평등에 대한 국민의 원성이 높다. 반면 정의당은 다주택자인 고위공직자의 주택을 강제로 처분하도록 하는 법 개정을 제안하고 나섰다. 이런 방향을 전면적으로 확장해야 한다.
진보정당은 모든 국민을 대변하는 정당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불로소득인 다주택 부동산 투기로 불평등을 가속화하는 정책 지향과 분명하게 선을 긋고 그 반대편의 대안을 지속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정의당이 ‘진보’라는 추상화되고 모호해진, ‘민주화 운동’의 앙상해진 유산을 부여잡는 정당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현실의 밑바닥 시민들의 편에 선 정당임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선포해야 한다.
물론 현 강령은 정의당이 “우리는 일하는 사람들의 정당”이며, “비정규직, 영세 자영업자, 청년 구직자”의 정당임을 선언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호명은 오늘날 너무 모호하거나, 부정확하다. 모호한 호명은 구체적인 언어로, 부정확한 구획은 보다 선명하게 바뀌어야 한다. 우리 당이 가난하고 빼앗긴 사람들의 정당, 임차인과 영세 자영업자들의 정당, 플랫폼 이면 권리 없는 청년들의 정당, 임계장의 정당, 경력단절 여성들의 정당,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모든 실업자들의 정당이라고 보다 구체화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와 실업자, 도시빈민, 영세 자영업자, 특수고용 노동자, 경력단절 여성과 몇 개의 개울을 건너 바로 만날 수 있다.
덧붙여 성폭력과 혐오 정치는 장기화된 정세 속에 놓여 있다. 오늘날 만연한 성별화된 폭력과 혐오에 대한 입장 역시 보완이 필요하다. 그때그때 바뀌는 기준, 그때그때 혼돈에 빠지는 논란에 사로잡히는 것이 아니라, 무너져 가는 가치와 규범을 분명히 내세우고,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민주주의와 인권적 가치 하의 시민성을 규범화해야 한다. ‘인민의 호민관’으로써 지배 엘리트에 맞서 광범한 저항과 대안 사회를 제시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분명히 선언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 양상은 ‘다중 불평등’이다. 여러 영역의 불평등이 상호 작용을 일으키고, 개별 영역의 불평등만으로는 환원될 수 없는 지속적이고 구조적인 불평등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이에 맞서려면 이미 형성돼 있거나 쉽게 형성될 수 있는 저항-대안 주체의 정체성을 전제하지 않고, 다중 불평등의 기반이 되는 여러 영역을 가로지르는 이해관계들을 정세에 맞게 접합함으로서 저항-대안 동맹을 끊임없이 재구축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여러 피억압 집단을 단순히 대리하는 정치세력이 아니라, 무기를 쥐어주고 곁에서 함께 싸우는 정당으로 거듭나겠다는 태세 전환을 담아야 한다. 기존 역사적 블록의 해체와 대안 역사 블록을 구축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인구·투자·교육·일자리 등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서울공화국’이다. 그 현황을 살펴보면 수도권의 면적은 국토 면적의 11.8%이지만, 수도권 인구는 49.8%가 집중돼 있으며, 1000대 기업 본사의 74%가 밀집되어 있으며, 매달 발생하는 신용카드 사용액의 80%가 수도권에서 결제되고 있다.
역대 집권당들은 신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작동되던 95년부터는 지방자치를 중심으로 지방분권을 강조했다. 그런 가운데 지역균형발전 정책에서는 새로운 산업의 발전이 지역 분화를 발생시켜 불균형을 초래할 때, 지역 간 교류와 보완으로 지역 간의 소득격차가 해소가 되며 낙수효과로 성장이 확산될 것(극화발전이론)이라거나, 중심지 투자를 통해 소비를 늘리면 궁극적으로 배후지의 생산을 증대시키고 기술 확산이 일어난다(확산이론)는 식의 논리가 지배적이었다. 이에 따라 지역균형개발을 위한 국정과제 정책들은 행정수도이전, 혁신도시, 기업도시 건설정책 등 지속적으로 시행됐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모든 지역균형발전 전략들은 모두 실패했다. 그것은 집권당의 ‘표계산’에 근거한 분권적 개발주의, 분권적 신자유주의에 가까웠으며, 결국은 지역정치인들과 지역토호만을 위한 균형발전으로 끝났다. 중심지의 기능은 누적적으로 강화되어 인구와 자본을 중심지로 집중시켰고, 토지가와 생산비의 상승, 도시 서비스 한계 비용상승 등 너무 많은 폐단을 연쇄적으로 야기했다.
이에 대해 현 정의당 강령은 “지방 정부의 자치권을 대폭 강화해 중앙 정부와 수평적인 분업-협력 관계를 구현하고, 주민 참여를 확대해 풀뿌리 민주주의를 활성화”함으로써 “수도권과 지방, 지방과 지방, 도시와 농촌 사이의 격차와 차별을 극복하고 균형 있고 특색 있는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지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지방자치 강화를 강조하는 것으로는 ‘서울공화국’의 모순을 해결할 수 없다. 더구나, 한국 사회의 만연한 토건주의와 ‘개발논리’에 대한 청산 없이는 지역 사회에서의 진보적 가치의 증진을 꾀할 수 없다. 이런 정도의 주장으로는 부족하다.
지역 전략에 대한 기준을 정립해야 한다. 정의당의 개정 강령은 신자유주의적 지방분권 정책과 효율성 가치를 비판하고, 지역에 대한 형평성과 풀뿌리 민주주의, 복지에 대한 보편적 권리와 노동권을 지역발전의 우선적인 이념적 가치로 제시해야 한다. 그렇다고 할 때 지역운동 강화는 그것의 중대한 동력이 될 수밖에 없다. 지역 커뮤니티와 주민 공동체를 활성화시키고 주민자치를 강화함으로써, 풀뿌리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다양한 수준의 민주적 공론장을 활성화시킴으로서 숙의 민주주의를 도처에서 심화시켜야 한다. 그렇게 해야 정의당의 지역기반도 새롭게 구축될 수 있다.
모든 조직은 관료제를 경계하고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와 조직 내부의 민주주의를 작동시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당헌과 당규가 당내 민주주의를 담보하기 위한 내용을 충분히 담지 못했던 과오를 반영하여, 강령에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아야 한다. 진보정당 내의 관료제를 지양하고, 나아가 대안 정당 모델과 정당 민주주의를 부단히 실천하겠다는 다짐을 담아야 한다. 연결하고, 양성하고, 학습하고, 싸우는 대안 정당으로서의 발돋움을 담아야 한다.
이러한 강령 개정 과정에서 위와 같은 방향 전환과 조직 혁신이 당내의 더 많은 민주주의와 당 외적 실천들을 통해서만 유의미함을 우리 스스로 확인해야 한다. 지역과 부문 등 당의 골간에서부터 토론을 만들어야 한다. 전국의 모든 지역위원회를 돌면서, 모든 부문위원회와 당원모임들을 순회하며 쟁점을 중심으로 토론을 만들어야 한다.
- 「정의당 강령」
- 김병권, 「정의당이 추구하는 가치와 전망의 전환 필요성」(혁신위원회 간담회)
- 김정진, 「정의당의 진로에 관한 메모」(혁신위원회 간담회)
- 서복경, 「‘코로나19’이후 민주주의와 정의당」(혁신위원회 간담회)
- 장석준, 「한국 사회 변화와 정의당의 대응 - 중장기 대응 과제와 정책을 중심으로」(혁신위원회 간담회)
- 박하순,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미국·한국 고용·실업 분석 및 전망」, 민주노동연구원
- 홍석만, 「코로나 발 경제위기의 성격과 대응방향 - 불로소득에 책임을 묻고 노동소득을 지원해야」, 참세상연구소
- 김세균, 「세계 경제위기 배후는 ‘과잉생산’」, 경향신문
- 「툰베리 "정치인·기업들, 계산 말고 진짜 행동 나서야"」, 연합뉴스
- 「공직자윤리법 일부개정법률안 (심상정의원 대표발의)」
- IPCC,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
- John Bellamy Foster, On Fire This Time, MONTHLY REVIEW
- 그레타 툰베리, ‘제25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5) 연설’ 중
- Maddy Savage, 「Did Sweden's coronavirus strategy succeed or fail?」, BBC
- Kevin Sneader and Shubham Singhal, 「Beyond coronavirus: The path to the next normal」, mckinsey report
- Paul Mason, 「Will coronavirus signal the end of capitalism?」, Aljazee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