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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명교 Jun 24. 2020

기존의 청년정의당 제안은 ‘앙꼬 없는 찐빵’이다

정의당 ‘청년발전기본계획(안)’ 비판

정의당의 ‘청년당원’ 지위는 만 35세까지다. 따라서 나는 정의당 내에서는 ‘청년당원’을 벗어났다. 그 때문에 청년 당원들의 여러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해왔다. 청년학생운동에 대해 상대적으로 경험이 풍부한 내가 말을 보탰다가 자칫 청년학생운동의 독자적 질을 해치는 결과를 끼칠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혁신위원으로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혁신위원은 모든 과제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시민과 당원의 견해를 청취해야 하는 의무과 책임이 있다. 나 역시 그런 책임이 있고, 청년운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 때문에 지난 연말연시에 제출된 것으로 알려진 ‘청년발전기본계획안’을 최근 읽었다. 혁신위원이 되고 난 후 일부 20대 당원들이 SNS를 통해 “청년정의당을 건설해야 한다”며 글을 올리고 난 후였다.


한 가지 분명히 하자면, 나는 청년학생운동이 재활성화 되어야 하며, 그것은 청년 세대 자신의 정치적 목표 때문만이 아니라, 사회운동 활동가 재생산의 측면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학생운동이 거의 소멸한 오늘날 한국사회, 정의당 안에서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문제의식이 결코 무시되지 않았으면 하고, 전체의 문제로 받아들여지길 소망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보정당운동 전체의 ‘생존’의 문제이고, 나아가 전통적 학생운동 명맥이 끊어질 위험에 쳐해있는 사회운동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를 전제로 하여, 기존에 정의당 청년본부가 제출한 ‘청년발전기본계획안’(이하 ‘기존안’)에 대한 견해를 밝히려 한다.


지난 5월 ‘민주적 사회주의자’ 주최 하에 열린 청년 정치 토론회에서 이번 총선에서의 청년 비례후보 전술에 대해 다소 비판적으로 평가한 바 있다. 다만 우리가 선출한 청년 국회의원들에 대해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주면서, 이 청년정치인들이 ‘제2의 심상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정의당 청년 당원들의 리더, 나아가 한국 사회에서 청년 세대의 정치적 구심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려면 이분들이 단지 21대 국회에서 구도상 큰 힘을 발휘하기 어려운 원내에만 갇혀 고군분투를 하기 보다는, 정의당의 청년 단위가 원 밖에서 능동적으로 활동하는 데 있어 ‘정치적/상징적 징검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나아가 다음 총선 비례 후보는 모두 청년들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서, 청년 할당은 없애버리거나, 가산점 정도를 두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탁월한 청년 정치인/활동가는 고유의 경험과 스토리를 거쳐 만들어지는 것이지, 기계적인 조건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정치인은 실력이 담보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실패한다.


물론 이는 현재 정의당의 상당수 청년 당원들은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하는 것이 정의당 청년 사업의 발전에 더욱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본다. 진보정당운동의 목표는 ‘국회의원’ 만드는 게 아니라, 제도 정치가 만드는 조건을 부정하지 않는 한에서,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다른 대안을 만드는 것에 있다. 세상을 바꾸는 것에 있다. 청년 사업도 마찬가지다. 청년학생운동을 재건하는 것이 중심이지, 청년 국회의원을 만드는 것이 중심이 아니다. 청년 국회의원을 만든다고 청년학생운동이 회생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청년정의당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다시 ‘기존안’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자. ‘기존안’은 그 진정성과 진의를 충분히 이해하더라도 몇 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일단, ‘청년정의당 건설’의 목적이 ‘청년 정치인 배출’에 맞춰져 있고, 논의의 영역 역시 정의당 내에 국한돼 있다. 정의당을 벗어나 청년 활동가들이 당밖의 대중을 만나 ‘어떻게 활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아무 관점이 없다. 단순히 청년정의당을 통해 청년 정치인의 비중을 늘리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기존의 관점과 별반 차이가 없다. 청년 여성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기성 정치가 얼마나 많이 여성 의제를 다루었는지에 대해서만 평가하고, 여성 정치인의 비율에 대해서만 논할 뿐 그 내용이나, 운동적 의의, 활동 방향에 대해서는 관점이 부재하다. 정치인이 되지 않을 99.999%의 사람들의 ‘정치’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다.


문제는 또 있다. ‘기존안’은 현재 정의당의 상태를 ‘나이주의’ 문화가 확연하고, ‘육성 시스템’이 부재하며, 이로 인해 당내 세대 간 격차가 확대됐다고 진단하고 있다. 청소년 당원 문제에 대해서는 정당 참여의 제한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을 뿐, 청소년들의 대중운동, 각각의 중등교육 공간에서 어떤 대중 활동을 펼쳐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전무하다. ‘기존안’은 상기한 바와 같은 문화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청년정의당 건설을 제안하고 있는데, 청년정의당의 체계에 대해 그 형식적인 체계에 대해서만 논할 뿐, 관점과 구체적인 운동 전술, 학생운동 부흥의 비전 등의 방안은 부재하다. 어떻게 ‘평가’도, ‘진단’도 없이 기획을 할 수 있는지 넌센스다.


예산안도 큰 문제다. 아마 내가 ‘청년정의당 기획안’을 작성했다면, ‘안’의 마지막 부분에 대의원을 향해 ‘거래를 걸듯’ 적시한 2개의 예산안은 적지 않았을 것이다. ‘기존안’은 터무니 없이 형식주의적인 틀을 제시하고 있고, 마치 대의원들에게 “이 정도 거래는 해줄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진심에 대해서는 전혀 의심하지 않지만, 운동(사업) 기획은 없고, 거래만 한다는 느낌이 든다. 방향 설정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지난해 총선 비례대표 구성에 대해 결정한 전국위원회 회의에서 대다수 선배 활동가들의 결정은 솔직하지 못했다. 상당수의 활동가와 전국위원들은 청년 할당에 대해 어떤 불만이 있었음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계적인 거수기가 되어 손을 들었다. 실제 비례대표 후보 경선에 출마한 여러 후보들이 “그게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꼰대’라고 찍힐까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걸 들은 바 있다. 이는 문제를 봉합하고, 오히려 모순만을 키웠다. 나는 그것이 활동가답지 못한 태도였다고 생각한다.


그래. “실천의 구심으로서의 청년정의당”은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려면 청년 당원들 내에서 충분하게 논쟁하고 토론부터 했으면 좋겠다. 지난 시기 학생운동은 왜 망했는지, 나아가 정의당의 지난 8년 간의 청년 사업은 왜 잘 안됐는지 평가부터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각 대학에서 3명에서 하는 학생위원회 말고, 10명 20명을 모으고 100명을 모으는 강연회나 학내 집회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실패의 경험들을 축적해야 한다. ‘기존안’에는 그런 내용이 전무하며, 형식과 체계에 대한 구상만 과대하다. 운동에 있어서 형식과 체계는 정세에 따라 변화하고, 또 생물과도 같은 것인데, 청년 당원들 중 활동성이 강한 당원들 전반이 모종의 형식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이런 빈약한 내용으로 어떻게 청년정의당을 만들겠다는 것인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


그러니 지금 정의당의 청년 활동가들에게 필요한 것은 ‘요구’가 아니라, 스스로 자기 내용을 만드는 것이다. 진심으로 혁신안 논의 과정에서 청년정의당 건설을 관철하고 싶다면, 보다 부지런하고 솔직해져야 한다. 정세 진단과 정의당 혁신과 청년정의당 건설 문제가 왜 맞닿아 있는가에 대한 보다 설득력 있는 논리가 구성될 필요가 있다.


사회운동이든 정치든 자신의 견해를 솔직하고 당당하게 밝히고, 있는 그대로 논쟁하는 게 더욱 정직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망할 게 빤한 빈약한 기획을 가지고 그냥 우겨가면서 밀어붙일 순 없는 노릇이고, 문제 의식이 있으면서 침묵하는 것도 잘못이다. 청년 당원들은 현 상황과 과거에 대해 진단과 기획부터 제대로 하고, ‘청년정의당 건설’을 주장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출범도 못하고 망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기성 정치를 어설프게 따라하는 방식은 폐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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