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 언론들은 종종 "민주노총=정규직=귀족노동자"라는 도식을 아무 객관적 분석없이 유포한다. 한데 진보정당이라고 하는 정의당 정치인들까지 이런 도식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재생산하기도 한다. "조사 없이는 발언도 없는 것"인데, 면밀한 관찰 없이 기성언론의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것이다.
가령 장혜영 혁신위원장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들에서 이런 도식을 재생산하는 말을 반복했다. 장혜영 위원장은 보수 월간지인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정의당 하면 사람들이 민주노총을 떠올린다. 하지만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훨씬 많고, 수많은 비정규직 중에 어떤 조직에도 속하지 못하는 분들은 과연 정의당이 자신들을 대변한다고 생각할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 사회에서 투명인간 취급받는 최약자들, 하위 90%를 대변하는 당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하고 싶은 말씀이 뭔지는 알겠는데, 민주노총에 대한 내용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고, 장 위원장이 그간 얼마나 '노동' 문제에 대해 무관심했는지 보여준다.
이런 왜곡은 당내와 사회에 '노동문제'에 대한 오해를 확산시키고, 노동자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의 공동 발전을 방해한다. 더구나 이는 실제 상황과는 상당히 다른 사실을 근거로 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국회의원이 집회에라도 얼굴 내비춰주면 훌륭한 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세상이 왜 이모양 이꼴인지 원인을 모르고 겉핥기만 하는데,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 정치를 하겠다고 말할 수 있을까?모르는 얘기는 하지 않거나, 일단은 배우는 게 모든 활동가와 정치인의 덕목이다.
1년 여 전, 민주노총 조합원 수는 23년만에 처음으로 한국노총을 추월해 '제1노총'으로 등극했다. 고용노동부가 12월 25일 발표한 「2018년 전국 노동조합 조직 현황」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민주노총 조합원 수는 96만8천35명으로, 한국노총(93만2천991명)보다 3만5천44명 많았다. 10퍼센트 밑까지 떨어졌던 노조 조직률은 11.8퍼센트까지 올랐다. 현재는 약 102만 명으로 조합원 증가의 파고는 지속되고 있다. 불과 4년 전까지만 해도 민주노총 조합원 수는 60만 명대였다.
물론 이는 촛불 항쟁과 문재인 정부 이후의 상황에 대한 기대가 반영된 것이다. 촛불 항쟁이 대체 무엇을 이루었냐는 반성과 비판도 많지만, 노동자들 내에서는 그것에 대한 어떤 정치적 기대가 크게 발생한 셈이라 볼 수 있다. 지난해 9월 10일 민주노총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촛불항쟁 이후 뚜렷한 조합원 증가 추세로 사업장 765곳에서 21만9971명(27.4%)이 늘어 2019년 4월 기준 101만4845명에 이르렀다. 신규 노조 765곳 중 249곳 설문조사 결과 비정규직과 여성, 청년 세대 조합원이 늘어났다.
신규 노조 중 비정규직 사업장 비중은 34.9%, 정규직은 38.1%이었고, 나머지 27%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있는 일터였다. 기존 민주노총 조합원 중에서 비정규직 조합원 비중이 1/3 수준이었던 것에 비하면 비정규직 비중이 더욱 높아진 것이다. 우리나라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1100만명에 다다른다. 하지만 노조 가입률은 2.8%에 그치고 있다. 민주노총의 비정규직 조직화 사업이 더욱 집중되어야 하는 이유다. 신규 조합원 평균 연령 역시 41.9살로, 2018년 기준 민주노총 조합원 평균 연령 43.6살보다 젊었다. 파리바게뜨, 병원 공공부문, 톨게이트 등 여성 중심 조직의 가입이 늘어나 2018년 기준 민주노총 여성 조합원 비율은 29%(28만6162명)로 높아졌다.
주지하다시피 이런 변화는 촛불 항쟁이 가져온 성취이기도 하지만, 민주노총이 오랜 시간 축적해온 '전략조직화 사업'의 성과이기도 하다. 민주노총은 건설·제조업, 공공부문, 서비스업 등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와 권리 증진을 위해 분투해왔다. 여러 부침도 있었고, 오류와 실패도 있었지만, 점차 성장해왔다.
물론 민주노총이 아무 문제 없는 조직인 것은 아니다. 내부적으로 보면 문제도 많고, 여전히 한계도 있고, 혁신되어야 하는 부분도 많다. 특히 최근 청와대와의 테이블에만 신경을 쓰는 것처럼 보이는 민주노총 위원장의 행보나 조직화 사업에 더욱 공격적으로 자원을 집중하지 못하는 것 등 상당히 의아한 점이 많다. 그러니 논쟁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선 정당하게 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이와 무관하게 정의당 정치인이 기성 보수언론이 유포하는 "민주노총 = 정규직"의 도식을 답습하고, 이에 대당하여 "민주노총이 아닌 비정규직을 만나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됐다. 이는 오히려 제대로 된 이해를 방해하고, 제대로 된 혁신을 방해한다.
사실 정의당 내에서 이런 왜곡은 꽤 오래 반복되어왔다. 정의당은 그간 민주노총과 가깝기는커녕 꽤 먼 관계를 유지해왔다. (오히려 정의당에 대한 민주노총 활동가들의 이질감과 문제의식은 팽배하다) 최근 다시 접점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지만, 그게 쉽지는 않다. 나는 이런 오해와 무관심, 무지, 오류들 역시 하나의 실력을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저임금·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결국 단결해서 권리를 향상시키고 삶을 개선하려면 노동조합에 가입해야 하는데, 진보정치인이 잘못된 도식을 반복해봤자, 무엇을 책임질 수 있나? 오히려 정의당은 노동자운동과 노동조합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어떻게 더 긴밀히 연대하고, 동행하며, 노동자운동의 발전이 곧 진보정치의 발전으로, 동시에 진보정당의 혁신이 곧 노동자들의 정치적 각성과 급진화로 이어지게 할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무지와 무관심도 정의당 혁신과 무관하지 않은 문제인데, 혁신위원회 과정에서 이런 의도되지 않은 왜곡이 또 반복되고 있는 것 같다. 결국 사람 문제가 아니라, 구조와 정체성의 문제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총체적으로 성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