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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민정 Nov 03. 2023

잭 다니엘의 멘토, 엉클 니어리스트 위스키의 탄생

노예와 주인을 넘어 엉클 니어리스트의 이름을 지킨 사람들

2016년 6월 26일, 뉴욕 타임스 인터내셔널 에디션 1면에서는 세계적인 베스트 셀링 위스키, 잭 다니엘스 Jack Daniel's가 창립 150주년을 맞아, 잭 다니엘이 노예였던 니어리스 그린 Nearis Green으로부터 증류법을 배웠음을 공표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위스키의 역사는 백인들만의 이야기였다. 미국 위스키는 독일과 스카치-아이리시 정착자들이 구세계의 증류 기술을 테네시주와 켄터키주 등 개척지로 가져온 것으로 알려져 왔는데, 잭 다니엘스는 사실을 바로잡겠다고 했다. 


니어리스 그린과 잭 다니엘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잭 다니엘은 생후 4개월 만에 어머니가 발진티푸스로 사망한 후, 1850년대 언젠가 7세 무렵 설교자이자 디스틸러인 댄 콜 Dan Call의 농장에서 잡일꾼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리고 댄 콜은 임대한 노예 니어리스 그린에게 위스키 제조에 관한 모든 것을 잭 다니엘에게 가르치도록 했다.


당시 위험하고 고된 증류주 제조작업에는 보통 노예들이 일했는데, 이들은 육체노동만을 제공한 것이 아니었다. 흑인 노예들은 서부 아프리카의 콘 비어 corn beer와 과일 증류주를 만드는 고유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잭 다니엘스 위스키는 링컨 카운티 공법 Lincoln Country Process을 거치는데, 이는 숙성되지 않은 위스키를 몇 피트의 단풍나무 숯에 여과시켜 불순물을 제거하고 독특하고 부드러운 단맛을 내는 기술이다. 니어리스 그린은 이 링컨 카운티 공법의 전문가로 최고의 위스키 제조자였고, 잭 다니엘은 그린으로부터 링컨 카운티 공법을 배웠다. 


1865년 미국 수정 헌법 제13조가 비준되어 공식적으로 노예제가 폐지되고, 1년 후 잭 다니엘은 댄 콜의 증류소를 인수하여 자신의 이름으로 증류소를 열었다. 잭 다니엘은 자유인이 된 니어리스 그린을 잭 다니엘 증류소의 첫 번째 마스터 디스틸러로 임명했고, 그린의 아들인 조지와 일라이도 잭 다니엘 증류소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오늘날까지도 7세대에 걸쳐 그린의 가족은 잭 다니엘스 브랜드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


잭 다니엘스의 분투

백인 주류인 위스키 시장에서 흑인 노예의 기술에 기원한 위스키라는 사실이 마케팅에 무슨 도움이 되겠냐만은, 잭 다니엘스는 창립 150주년을 맞아 니어리스 그린을 잭 다니엘의 첫 번째 마스터 디스틸러로 명명하여 그의 공헌을 알리려 했다. 하지만 2016년은 대선을 앞두고 인종 문제가 격화되었던 때였다. 잭 다니엘스의 브랜드 총책임자 CBO(Chief Brand Officer) 마크 맥캘럼 Mark McCallum은 "상업적 이익을 위해 큰 이슈를 만들었다는 비난을 받을 것 같았습니다."라고 밝혔다. 많은 사람들이 잭 다니엘이 그린을 노예로 소유하고 레시피를 훔쳤을 거라 생각하는 것도 부담을 가중시켰다. 한때 잭 다니엘스는 전직 마스터 디스틸러를 기념하는 한정판 '마스터 디스틸러' 시리즈에 그린의 병을 추가하려고 구상하기도 했지만, 그린의 이름을 이용해 돈을 버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우려에 이 아이디어를 철회했다. 이렇게 니어리스 그린의 존재는 희미해져 가는 것 같았다. 


폰 위버 Fawn Weaver, 그린에 대한 책을 쓰기로 결심하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가 보도한 이 기사를 읽은 한 사람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폰 위버 Fawn Weaver는 이 기사를 읽고 니어리스 그린에 대한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위버는 잭 다니엘스 증류소가 있는 린치버그에 집을 구해 그 지역에 살고 있는 그린의 후손들을 접촉했고, 잭 다니엘과 그린에 관한 1만 여건의 문서와 유물을 모았다. (위버는 이를 워싱턴에 새 국립 아프리칸 아메리칸 역사 문화 박물관 National Museum of African American History and Culture에 기증하기로 했다.) 


또한 위버는 그린의 진짜 이름이 지금까지 알려진 니어리스 Nearis가 아닌 네이선 Nathan이었으며 니어리스트 Nearest가 그의 닉네임이었음을 알아냈다. 그제야 네이선 "니어리스트" 그린 Nathan "Nearest" Green이라는 온전한 이름이 드러난 것이다. 


위버는 잭 다니엘과 니어리스트 그린의 관계를 조사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잭 다니엘의 유산 Jack Daniel's Legacy (벤 그린 Ben Green 지음)>을 구했는데, 첫 페이지부터 니어리스트가 계속해서 언급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조지 그린과 일라이 그린이 책 전체에 걸쳐 반복해서 언급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노예였던 사람에 대해 굳이 이름을 지을 필요 없이 그냥 '노예'라고 말하거나 아예 빼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잭과 그의 가족은 니어리스트의 유산과 그 자녀들의 유산이 잊히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이 진정으로 사랑과 명예, 존경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니어리스트 그린은 잭의 노예가 아니었습니다. 잭은 노예를 소유한 적이 없었습니다. 니어리스트 그린은 잭의 멘토였습니다. 그리고 잭의 후손과 니어리스트의 후손은 친구로 지내며 함께 살면서 함께 일했습니다. 이들 사이에 구분은 없었습니다."


이런 위버의 노력으로 니어리스트 그린 Nearest Green의 유산에 관한 보다 명확한 그림이 드러나게 되었다.

2017년 3월 말, 위버는 자신이 모은 1만여 건의 자료를 가지고 잭 다니엘스 브랜드 총책임자 맥컬럼을 만났다. 이후 맥컬럼은 몇 주 만에 그린을 잭 다니엘스의 공식 역사에 포함시키는 방법을 계획하며 니어리스트 그린을 잭 다니엘스 증류소 방문자 투어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잭 다니엘스는 처음으로 그린의 유산을 공표한 지 거의 1년이 지난 후인 2017년 5월, 공식적으로 네이선 니어리스트 그린을 잭 다니엘스의 첫 번째 마스터 디스틸러로 공인했다. (잭 다니엘은 현재 두 번째 마스터 디스틸러로 등재되어 있다.) 


1904년 잭 다니엘과 그린의 아들로 추정되는 조지 그린 image via wikipedia.org

또한 잭 다니엘스는 자체 명예의 전당인 마스터 디스틸러 벽에 위 사진을 걸었다. 이는 1904년 잭 다니엘과 직원들이 찍은 사진인데, 니어리스트 그린의 아들인 조지 그린으로 추정되는 흑인이 잭 다니엘 바로 옆에 앉아 있다. 이는 흑인과 나란히 사진을 찍지 않았던 당시 상황과는 분명히 대비된다. 


계획을 변경하다


원래 위버는 이 이야기를 책으로 써서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 <히든 피겨스 Hidden Figures>를 본 후 계획을 바꾸게 되었다. "몇 주가 지나자 영화 전체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배우의 이름은 기억하지만 캐릭터는 기억하지 못하게 됩니다."라고 위버는 말했다. 현재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장편 영화를 개발하고 있기는 하지만, 위버는 영화로는 이 이야기가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위버는 그린의 후손들을 만나 니어리스트 그린을 기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물었다. 그린의 후손들은 니어리스트 그린의 이름이 자신만의 위스키 병에 새겨져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이렇게 해서 위버는 그린의 유산을 기리는 위스키 회사 설립에 대해 모색하게 되었다.     


엉클 니어리스트 위스키의 탄생


엉클 니어리스트 위스키 회사 설립에는 잭 다니엘의 후손인 셰리 무어 Sherrie Moore가 나섰다. 위버가 처음 린치버그에서 조사를 시작했을 때, 셰리 무어는 항상 니어리스트에 대해 알고 있었으며 어떤 프로젝트든 돕겠다고 했다. 실은 무어는 약 31년 동안 테네시 위스키 업계에 종사했는데, 은퇴 후 엉클 니어리스트의 일을 맡기로 했고 위버는 자금을 끌어왔다.


그렇게 엉클 니어리스트 프리미엄 위스키가 2017년 7월에 출시되었다. 엉클 니어리스트 위스키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기념하는 최초의 증류주이자 기록상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마스터의 증류주이다. 위버는 현재 회사의 CEO를 맡고 있으며, 니어리스트 그린의 후손인 빅토리아 이디-버틀러 Victoria Eady-Butler가 엉클 니어리스트 증류소의 마스터 블렌더로 근무하고 있다. 

 

또한 위버는 흑인 소유의 증류주 브랜드를 늘리려 한다. 2020년 6월 니어리스트 그린 증류소는 잭 다니엘스와 제휴하여 니어리스트&잭 발전 이니셔티브 Nearest & Jack Advancement Initiative를 통해 5백만 달러를 공동 기부하기로 서약했다.


이 비영리 벤처는 니어리스트 그린 증류주 학교 the Nearest Green School of Distilling를 설립하고, 수습생들을 위한 리더십 가속화 프로그램(LAP: Leadership Acceleration Program) 개발하며, 주류 업계 아프리카계 미국인 기업가들에게 전문 지식과 자원을 제공한다. 또한 LAP는 위스키 업계에서 수석 증류사, 숙성 책임자 또는 생산 관리자가 되고자 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수습 기회를 제공한다. 이 이니셔티브에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엉클 니어리스트와 잭 다니엘스의 최고 책임자들이다. 다른 여러 회사에서도 이를 돕겠다고 나섰다. 엉클 니어리스트 역시 브랜딩, 리브랜딩, 유통 등 여러 분야에서 흑인 브랜드를 돕고 있다.


< 참고자료 >

Jack Daniel's Embraces a Hidden Ingredient: Help From a Slave, The New York Times, 2016/06/26  

https://www.nytimes.com/2016/06/26/dining/jack-daniels-whiskey-nearis-green-slave.html?auth=linked-google1tap


When Jack Daniel’s Failed to Honor a Slave, an Author Rewrote History, The New York Times, 2017/08/15 

https://www.nytimes.com/2017/08/15/dining/jack-daniels-whiskey-slave-nearest-green.html


Breaking boundaries: Fawn Weaver, Uncle Nearest CEO, The Spirits Business, By Melita Kiely  2020/10/01 

https://www.thespiritsbusiness.com/2020/10/fawn-weaver-on-creating-uncle-nearest-whiskey/


Nearest Green, The Man Who Taught Jack Daniels About Whiskey, https://www.npr.org/ , 2017/09/03

https://www.npr.org/2017/09/03/548342180/nearest-green-the-man-who-taught-jack-daniels-about-whiskey


The story of Nearest Green, America’s first known Black master distiller, The Conversation, By Stephanie Benjamin, 2021/08/17

https://theconversation.com/the-story-of-nearest-green-americas-first-known-black-master-distiller-164311


How an Enslaved Man Helped Jack Daniel Develop His Famous Whiskey, https://www.history.com/, By Aaron Randle, 2023/06/01

https://www.history.com/news/jack-daniels-enslaved-distiller-nathan-nearest-green                     


https://en.wikipedia.org/wiki/Nathan_%22Nearest%22_Gr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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