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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민정 Mar 31. 2024

영화 <검은 사제들> 다시 보기

악은 가까이에 있다. 하지만 이에 맞서는 인간의 의지는 깊다. 

*이 글은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내가 <검은 사제들>을 사랑하는 이유는 악을 인간이 다룰 수 있는 것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구마 의식을 행하는 두 신부뿐만 아니라 악령이 머무르는 여고생(박소담 분)까지도 자신의 의지로 악을 붙들고 있는 모습에서 악을 막아내려는 인간의 깊은 의지를 느낀다. 2015년 이 영화가 개봉된 이래 나는 마음이 약해질 때면 이 영화를 보곤 했다. 이번에는 영화 <파묘>를 보고 나서 감동이 가시지 않아서 어제 이 영화를 다시 봤는데, 나이를 먹고 다시 보니 예전에 봤을 때와는 다른 생각과 감정들이 떠오른다.


1.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내가 최준호 아가토 부제(강동원 분)와 나이가 비슷했었고 그 당시 나 역시 트라우마와 싸우고 있었기 때문에 최부제가 불쑥 나타나는 트라우마에 스스로 맞서려 하는 과정에 몰입하게 되었다. 내가 오래도록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최부제가 마침내 과거의 자신과 마주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었다. 아픈 기억이 얼마나 오래되었고, 고통스럽고, 복잡하더라도 이를 마주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이를 극복하게 되는 장면에서 엄청난 희망을 느꼈다. 그런데 이번에 보니 최부제가 그 이후 자신의 자리를 찾는 장면이 더욱 와닿는다.


"아가토."

"네. 여기 있습니다."

과거의 기억을 넘어 지금 한 소녀를 구하기 위해 최부제가 구마의식으로 돌아왔을 때 김범신 베드로 신부(김윤석 분)가 하는 말이 이처럼 최부제를 자기 자리로 이끌었다.


니 잘못이 아니야. 니 동생이 더 작아서 그런 거야.
짐승은 절대 자기보다 큰 놈한테 덤비지 않아.
그리고 악도 언제나 그런 식으로 인간을 절망시키지.
 니들도 짐승과 다를 바 없다고.
그런데 신은 인간을 그렇게 만들지 않았어.

이후 두 사제가 읊는 구약성서 에제키엘서 2장 6절은 늘 마음에 새기려 하는 구절이다.


그러니 너 사람의 아들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이 하는 말도 두려워하지 마라. 비록 가시가 너를 둘러싸고,
네가 전갈 떼 가운데에서 산다 하더라도,
 그들이 하는 말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얼굴을 보고 떨지도 마라......

2. 시간이 흘러 지금의 나는 김범신 베드로 신부의 삶에 대해 더 생각해 보게 된다. 어제 이 영화를 다시 보며 김신부의 여동생이 꼭 친여동생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구마의식 중에 김신부의 귀에서는 자신의 피가 흘러내린다. 그의 몸에는 늘 악령과 싸운 흔적이 남아 있다. 구마의식을 행하는 그에게 특별한 영적인 능력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그는 누가 되었든 그렇게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내어줄 것이며, 그것이 김신부의 힘이라는 점이다. 


3. 최부제가 난관을 뚫고 악령이 깃든 돼지를 데리고 택시를 탔을 때 만난 택시 기사님에게서는 여전히 루카 복음의 착한 사마리아인이 떠올랐다. 한 사람이 "누가 이웃인가"를 예수님께 물었을 때 위기에 처한 사람을 보고도 지나치는 그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과 그 집단에 속하지는 않지만 지나가다가 그 사람을 돕는 사람(사마리아인)을 빗대어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이웃임을 깨닫게 하는 구절이다.     


4. 영화 후반부에 악령이 깃든 돼지를 강에 던지면 된다고 했는데도 돼지와 함께 강에 뛰어드는 최부제에 대해 꽤 오랫동안 생각했었다. 악령의 숙주가 되어가는 자신을 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는 많은 부분 내 생각의 투사이다.)과 지금 악령을 완전히 없애지 않으면 여전히 이 세상에 악령은 존재할 것이기에 어떻게든 없애야만 한다는 투지, 그리고 그 악령이 찾게 될 또다른 숙주는 어쩌면 김신부가 될지도 모른다는 여러 생각들이 복합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봤을 때, 자신이 두고 간 붉은 묵주를 다시 쥐고 담담히 미소 지으며 걷는 최부제의 모습에서 그의 선택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길에 대한 확신이었음을 느꼈다.


5. 최부제의 기숙사 책장에서 피에르 신부(Abbé Pierre)의 <단순한 기쁨>이 보였다. 김신부와 최부제가 처음 만나서 김신부가 최부제의 성장 배경을 듣고 한 말에 최부제가 발끈한 것이 단순히 최부제의 성격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마침 오늘은 부활절이다. 피에르 신부의 <단순한 기쁨>을 읽으며 오늘 하루를 마무리해야겠다.

공허한 말에 만족하지 말고 사랑하자.
그리하여 시간의 어둠에서 빠져나갈 때,
모든 사랑의 원천에 다가서는 우리의 마음은 
타는 듯 뜨거우리라

피에르 신부 <단순한 기쁨>의 첫 구절에서


누군가는 늘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음을 잊지 마시기를. 평화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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