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과 시작의 경계 어딘가에 존재하는 조용한 장소가 있다. 천국도 아니고 지상도 아닌 흐릿한 회색의 공간.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멈춘 듯 보이지만, 사실은 멈추지 않는다.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고, 양자 상태의 입자처럼 동시에 여러 가능성 속에 머물러 있다. 과거와 미래는 이곳에서 구분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연옥의 공기는 묘하게 밀도가 다르다. 현실의 공기보다 약간 더 무거운 느낌이다. 어쩌면 이곳의 물질은 우리가 아는 입자보다 느리게 진동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의 걸음은 멈춘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초미세 스케일에서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시간과 공간이 엉켜버린 이곳에서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도 정확히 적용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마치 꿈속에서 당신이 초현실적 풍경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사람들은 이곳에서 아무런 목적 없이 움직인다. 아니, 목적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입자처럼 측정될 수 없다. 그들은 벤치에 앉아 반쯤 찬 커피를 마시고, 끝을 알 수 없는 책을 읽는다. 그들의 표정은 평온해 보이지만, 미세한 눈빛 속에는 불확실한 상태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떨림이 있다. 마치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그들은 살아 있지만, 동시에 멈춰 있다.
방 한 구석, 한 남자가 낡은 턴테이블에 재즈 레코드를 올린다. 마일스 데이비스다. 그의 연주는 중력파처럼 공간을 뒤흔들지만, 듣는 이들은 그 진동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 음악은 파동으로 퍼져나가며, 이 세계의 양자적 진동과 공명하고 있다. 당신이 그에게 묻는다. “무엇을 기다리고 있나요?” 그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대답한다. “아마도 결정을 기다리는 중일 겁니다. 하지만 결정은 스스로 다가오진 않죠.”
연옥은 단순히 영혼의 대기실이 아니다. 그것은 우주적 차원에서 미완성의 상태를 나타낸다. 여기는 초기 우주와 비슷하다. 에너지가 아직 물질로 응축되지 않고, 모든 가능성이 섞여 있는 혼돈의 바다. 당신은 이곳에서 무언가가 결정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당신이 그것을 결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그 미세한 떨림이 당신의 손끝에서 느껴진다. 어쩌면 이 연옥은, 우리가 진정으로 이해해야 할 것은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 속의 의미라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리적 법칙과 감정이 교차하는 이곳에서, 당신은 깨닫는다. 우리가 연옥이라 부르는 이 상태는 결국 우주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일지도 모른다.
“네가 진짜로 기다리는 것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