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은 '카페의 천국'이다.
카페가 차고 넘친다.
그런데도
신통찮던 가게가 문 닫았다 싶으면
영락없이 카페로 변신해 돌아온다.
심지어 잘 된다!
끊임없이 생겨나고 또 잘되는 걸 보면
직장인들이 그만큼 '쉼에 목말라 있구나' 싶다.
꼭 차 마시고 싶어서 카페를 찾는건 아니니까.
대로(大路)를 벗어나
골목을 찬찬히 훑다보면
글로벌 브랜드 틈바구니에서
오롯이 버티고 선 카페들이 보인다.
광화문 직장인들은 알음알음 아는,
교보에서 책 한 권 사들고 찾기좋은,
이 곳마저 미어터질까 쉬쉬하게 되는
'숨은' 카페 다섯 곳을 소개한다.
덕수궁 돌담길 따라 걷다보면
이화여고를 지날 때쯤
빨간 벽돌건물이 보인다.
작년 여름 문을 연 '루소랩'이다.
건물 두 개층을 쓰는데
계단을 올라가면
'광활하고 쾌적한' 공간에 놀라게 된다.
손님도 많지않다.
좋으면서도 불현듯 드는 생각,
'이러다 곧 사라지겠는데...'
고맙게도 1년간 잘 버텨줬다.
커피도 맛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브런치 세트를 좋아한다.
평일 점심 혹은 주말
파니니, 커피 한 잔에
책 읽다오는 것도 좋다.
광화문에서 보기 드물게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루소랩'을 지나 좀 더 올라가면
오른편에 가톨릭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이 보인다.
'산 다미아노(SAN DAMIANO)'는
프란치스코 작은형제회에서 운영하는 카페다.
"산 다미아노는 성 프란치스코(1182~1226)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들은 성당의 이름"이라고 한다. 카페 이름에도 그런 뜻이 담겨있다.
이 곳은 북카페이자
종종 음악회가 열리는 문화공간이기도 하다.
안에 들어서면 안락하고 성스러운 기분마저 든다.
가톨릭 서적을 비롯한 다양한 책들이 벽면 서가에 꽂혀있다. 공간이 넓어 눈치보지 않고 책을 읽을 수 있다.
커피는 공정무역 원두를 사용한다.
가격도 착하다. 아메리카노가 3000원대.
팥빙수, 샌드위치도 괜찮다.
정동극장~이화여고,예원학교~캐나다대사관~프란치스코 교육회관~경향신문사로 이어지는 정동길의 분위기를 잘 담고있는 곳이다.
서울역사박물관 뒤
'경희궁길'은 고즈넉하다.
이 곳에 '서울 3대 커피맛집'이라는
커피스트가 있다.
(누가 꼽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넓지않은 내부는
아기자기함과 일종의 기품이랄까 싶은 것이
묘하게 섞여있다.
로얄 알버트 잔에 내주는 '비엔나커피'(왼쪽)와
달달한 연유, 에스프레소에 우유거품을 더한
'미스사이공'(오른쪽)이 대표 메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멍하니 창 밖 보며 커피 한 잔 마시면 좋을 곳이다.
커피스트만 알고
바로 건너편 '성곡미술관' 카페를 놓친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매표소에서 '미술관 티켓' 대신
"카페 티켓 주세요"하면 된다.
한 장에 5000원이다.
음료 한 잔과
'조각정원' 입장권이 포함돼 있다.
카페는 아담하다.
실내는 10석 남짓, 테라스도 비슷하다.
자리에 앉아도 좋고
음료 한 잔 받아들고 공원을 산책해도 좋다.
도심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호젓한 자연 카페다.
점심에 산책하며 한숨 돌리기 좋은 곳이다.
'나무사이로'는
한옥을 개조해 만든 카페다.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사직공원 방향으로
걷다보면 나타난다.
현대식 외관을 보고 들어서면
예고없이 나타나는 한옥의 정겨운 모습이
놀랍고 또 반갑다.
앞마당에서 선선한 바람 맞으며
책 읽으면 참 좋다.
개인적으로 이 집의 백미는 다락방!
신발벗고 올라가면
대여섯 앉아도 충분한 공간이 나타난다.
커피 맛으로도 정평이 났다.
음악을 전공했다는 주인장이
봄의 제전, 풍요로운 땅, 날아올라와 같은
멋진 이름을 붙였다. 메뉴는 계절마다 바뀐다.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글로벌 브랜드 카페에선
만나기 어려운 소신과 고집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
p.s
'좋은 곳 혼자만 알기'의 딜레마가 있다.
혼자만 꽁꽁 감춰두고 넓은 공간도 쾌적하게 쓰고 좋은데 그러다 그 집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경험을 여러번(!) 했다. '뭐 알음알음 아는 사람은 오겠지' 했는데, 망했다. 좋아하는 집이라면 적당히 소문을 내는 것이 그 집을 오래 볼 수 있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