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야 그거 무서워
디자인과 관련하여 유명한 말이 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건축가 루이스 설리반의 말이다.
그래서인지 디자인은 종종 특정한 결과물의 형태만을 다루는 것으로 여겨지며, 기술에 종속적인 것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하지만 디자인은 어떠한 결과물이라기 보다는, 현상을 관찰하고 문제를 정의하며 해결책을 제시하는 일련의 과정 자체다. 표면적인 문제를 기능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보다는,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 한 단계 혹은 다른 시점에서의 숨겨진 욕구(unrevealed needs)를 찾아내고, 그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 그것이 디자인적 사고(Design thinking)방법론이자, 현대의 디자인이 명확히 향하고 있는 방향이자 흐름이다.
흔히들 디자이너들을 '특이하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떤 문제의 표면적인 부분에 대해 설명하는 대신, 조금 다른 시야에서, 다른 기준으로 바라보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디자인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디자인적 사고는 그 자체만 가지고는 의미가 없으며, 그것이 실제적인 다른 분야(예를 들어, 전통적으로는 그래픽,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엔지니어링 혹은 테크놀로지)와 결합될 때 큰 힘을 발휘한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읽었다면,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디자인은 뭔가를 그리거나 만들거나 ‘눈에 보이는’ 뭔가를 만드는 그런 거 아니었어? 학교에서도 그런 거 가르치지 않나?”
맞다.
그 이유는 사람이 그만큼 ‘시각 정보’에 대한 의존성이 크기 때문이다. 동일한 기능을 갖고서도 단지 시각적인 몇몇 차이 때문에 전혀 다른 효과를 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교통표지판이나 건물 등의 Signage가 대표적인데, 어떤 물리적인 기능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시각정보전달 매체로서 어떻게 디자인되느냐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
디자인은 시대의 요구에 따라, 그리고 사람들의 삶과 밀접한 분야가 무엇인가에 따라, 다양한 분야와 결합해 왔다. 심지어 ‘디자인’이라는 말이 존재하기 전부터 그래왔다.
책이 그랬고,
의복이 그랬으며,
건축이 그랬다.
현대에 이르러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 디바이스와 디자인이 점점 밀접해지고 있는 이유는, 그만큼 그러한 기기(와 기술)들이 이 시대 사람들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디자인은 점차 그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여전히 대부분의 ‘디자인 결과물’들은 시각적인 부분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의 요구와 욕구가 다양해지면서 음향, 질감, 미각 등 인간의 오감을 이용한 디자인 결과물 뿐만 아니라, 심리학, 데이터 등 인문학과 공학을 넘나들며 다양한 혼종(?)을 만들어내는 중이다.
디자인적 사고는 디자이너의 전유물이 아니다. 혹은 우리 모두는 디자인적 사고를 통해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