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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태모의 포랍도 Mar 13. 2022

"전후 유럽에서의 '악의 문제'"

[사람과 사상] 토니 주트, 한나 아렌트, 그리고 나

때로는 직접 만나서 잘 알고 지낸 사이가 아니어도 가깝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 서로 소통한 것이라고는 이메일 몇 개뿐이지만 특별히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경우도 있다.




대학에서 정치사상에 처음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시작할 무렵에 내가 가장 매료되었었던 사상가는 한나 아렌트였다. 그 맘 때 한국에서는 아렌트의 이름이 서서히 널리 알려지고 있던 차였다. 미국에서도 아렌트의 미출간 원고 여러 편들이 책으로 묶여 나왔다. 아렌트의 제자였던 제롬 콘이 편집한 Responsibility and Judgment와 The Promise of Politics 등의 출간을 기다렸다가 기꺼운 마음으로 구입하여 읽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한국에서 아마존을 통해 책을 많이 구입하면 큰 마대자루에 상자가 담겨서 왔었다.) 거기 수록된 논문들의 편집 상의 문제에 대해 콘에게 이메일로 묻기도 했다.


당시에는 아렌트에 관심이 컸기 때문에 그와 연관된 것은 무엇이든 일단 주목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러다 알게 된 학자 중에 토니 주트가 있었다. 그가 2007년에 주트는 독일 브레멘 시로부터 '한나 아렌트 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주트는 당시 뉴욕대학교 교수였고 원래 전공은 19세기 프랑스 사회주의 사상이지만, 전반적인 유럽의 지성사, 정치사에 밝은 대학자였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 등 당시 현안에 대해서도 예리한 평론을 쓰곤 했다.


'한나 아렌트 상'을 받은 기념으로 주트가 강연한 바가 있었는데, 그 강연록이 수정을 거쳐서 "전후 유럽에서의 '악의 문제'"라는 제목으로 뉴욕서평지(New York Review of Books)에 실렸었다. 2008년 2월 14일이었다. 읽어 보니 공감하는 바가 컸다. 번역을 해서 소개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초벌 번역을 마치고 주트를 국내에 소개한 바 있는 <창작과 비평> 등에 문의를 해 보았다. 그러나 요즘은 번역문을 싣지 않는다는 답만 돌아왔다.


시간이 흘러 나는 토니 주트의 책과 논설을 즐겨 읽게 되었고,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그가 아렌트와 닮은 구석이 꽤 있다고 생각했다. 위에서 언급한 강연에서 주트는 아렌트를 "평화의 훼방꾼"이라고 부른 바 있다. 여기서 "평화의 훼방꾼"이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다.


불쾌한 주제를 정면으로 공격하기, 공식화된 지혜를 따르지 않기, 비판자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특별히 자신의 친구들 사이에서도 논쟁을 유발하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용인된 의견의 손쉬운 평화를 어지럽히기


주트가 본 아렌트의 장점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내가 보기에 주트 역시 이러한 성향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도 역시 그러한 "평화의 훼방꾼"이다.




그리고 시간이 좀 더 흘렀다. 나는 2009년 6월에 공군사관학교 교수요원 군 복무를 마치고, 같은 곳에서 한 학기를 더 가르쳤다. 그러면서 유학 준비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주트가 쓴 글을 읽다가 그가 루게릭 병에 걸려서 투병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담담하게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는 주트의 글을 읽으며 한 밤 중에 아연실색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일면식도 없고 나와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었지만 마음이 아팠다.


얼마 후에는 그가 휠체어 앉아 호흡을 도와주는 기구를 장착한 채로 강연하는 영상도 볼 수 있었는데, 강연을 시작하며 자신이 아마 많이 움직이지는 않을 거라는 유머를 섞는 그의 모습에서 일종의 안도와 경외감을 함께 느꼈다. 짧게 이메일을 썼다. 물론 아마 그는 내 이메일을 읽을 겨를이 없을 것이고, 읽더라도 답을 할 수는 없을 것이라 짐작했다. 그저 한 독자로서 감사한 마음을 표하고 싶었다.


예상외로 답변이 왔다.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고 나중에는 말조차 할 수 없었던 그가 조교와 기구의 도움으로 작성한 이메일이었다. 이메일은 그렇게 몇 번을 오갔고 주트 교수는 당시 내가 여러 대학에 제출했었던 학업계획서도 읽고 짧게 코멘트해 주었다. 그가 세상을 뜨기 몇 달 전의 일이다. 나는 그와의 짧은 대화를 늘 소중하게 여겨 왔다.




지난 2022년 1월 우연히 <철학과 문화>라는 학술지에서 번역 논문도 게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문학연구소에서 발행하는 학술지였다. 언뜻 2008년에 내가 초벌 번역을 해 두었던 주트의 글이 생각났다. 담당자에 이런 성격의 글 번역본도 관심이 있느냐고 물었고, 긍정적인 회신을 받았다. 저작권 문제를 해결해야 했는데, 뉴욕서평지와 이야기해 보니 해당 주트 글의 저작권은 출판사 소유가 아니고, 주트 지적 재산권을 승계한 사람 소유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곧 주트의 배우자인 제니퍼 호만스 교수에게 연락을 취했다. 흔쾌히 검토하겠다는 답신을 보내며 구체적인 일은 해당 에이전시와 진행하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한국어 번역판 저작권을 획득하고, 이제 거의 14 만에 초벌 번역본을 다시 읽어 보니 오류도 더러 있고 어색한 부분도 많았다. 수정을 가해 투고를 했고  결과물이 얼마 전에 출판되었다. 지금 내가 당면한 여러 일 중 우선순위를 따져 보았을 때 이 번역은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겠지만, 감사한 마음이 커서 그런지 뭔지 모를 뿌듯함을 느낀다.


아래 링크에서 전문을   있다.


토니 주트, 김주만 옮김, 전후 유럽에서의 '악의 문제', 철학과 문화, 제46집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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