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법절차와 해석의 문제
근래 주목을 받고 있는 엘 살바도르 출신 이민자 킬마 아만도 아브레고 가르시아 사건에 대해서도 학생들과 지난주에 긴 토론 시간을 가졌다. 이 사람이 잡혀 간 곳이 바로 옆 볼티모어이기 때문에 학생들도 더 관심이 크다.
아브레고 가르시아는 지난달에 이민 당국에 체포되어 엘 살바도르에 있는 테러범 수용소에 수감되었다(현재는 다른 곳으로 이송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사건은 어떻게 보면 단순한 행정 착오가 낳은 대참사이지만, 다른 한편 꽤 까다로운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도 현재 논란거리인 “권한의 적법한, 적절한 행사” 문제, “사법부의 명령이 행정부를 얼마만큼 통제할 수 있는가”의 문제, “양극화된 정치와 미디어”의 문제 등과 직접적으로 연관되기에 더욱 그렇다.
몇 가지만 지적해 본다.
법무부 대리인과 이민 당국은 법정에서 변론으로 또는 공식 서면 증언으로 아브레고 가르시아 추방조치에 “행정 착오”가 있었음을 시인했다.
무엇이 ‘착오’였단 말인가? 아브레고 가르시아를 추방한 것 자체가 착오라는 것은 아니다. 그를 엘 살바도르로 추방한 것이 착오라는 것이다.
어째서인가? 추방조치를 실행할 당시 담당자들이 그에게 “추방보류” 명령이 내려진 상태였던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추방보류” 명령은 장소를 특정하게 되어 있으며, 절차상 “추방” 명령이 있고 나서야 내려지는 명령이다. 즉, 아브레고 가르시아에게는 “추방” 명령과 (엘 살바도르로의) “추방보류” 명령이 내려진 상태였던 것이다. 따라서 그를 추방하는 것 자체는 법적으로 문제 될 것이 없는데, 엘 살바도르로의 “추방보류” 명령을 어기고 엘 살바도르로 추방한 것은 실수가 맞다는 주장이다.
이와는 별도로 정부의 고위 인사들은 사뭇 다른 태도를 보여왔다. 그들은 대개 이민 당국 실무자나 법무부 실무팀이 인정한 이러한 행정 착오를 거론하지 않는다. 엘 살바도르에서 온 “불법” 이민자를, 그것도 테러 조직으로 공식 지정된 “폭력조직원”인 이민자를 제 나라로 돌려보낸 것이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것이 백악관이나 법무부, 국토안보부 고위 관계자들이 보이는 기본 입장이다.
지난 4월 10일, 연방대법원이 이 사건과 관련한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그러나 정부의 추방조치의 시비를 가리는 판결이 아니라, 연방지방법원이 정부에게 내린 명령의 적합성을 따지는 판결이다. 영미법 체계의 용어로 말하자면, law 가 아니라 equity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다. 과거 영국에서는 law를 따지는 재판소와 equity를 따지는 재판소가 독립적으로 존재했는데, 현재 미국 연방법원은 헌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law와 equity를 모두 관장한다. 법원이 원고의 청을 받아들여 피고에게 특정한 행동을 하거나 하지 못하도록 명령하는 것은 법적 구제가 아니라 equitable 구제에 속한다.
아브레고 가르시아가 추방되자, 그의 아내와 아들이 그를 대신하여 (또한 그와 함께 공동 원고로써) 메릴랜드 주의 연방지방법원에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했다. 요는 정부가 “추방보류” 명령에 관한 법률, 헌법의 적법절차 조항, 행정절차법 등을 어기고 아브레고 가르시아를 엘 살바도르로 추방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우선적인 요청은 미국 정부로 하여금 엘 살바도르 정부에게 아브레고 가르시아를 수용하는 대가로 내게 되어 있는 비용 지불을 즉시 멈추도록 하는 것, 아브레고 가르시아를 엘 살바도르 내 미국 대사관으로 풀어 주도록 엘 살바도르 정부에게 요청하도록 하는 것, 그리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하여 그의 미국 송환을 추진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지난 4월 4일 연방지방법원은 본안 심사를 마치기 전 “늦어도 2025년 4월 7일 월요일 오후 11시 59분까지 원고 킬마 아만도 아브레고 가르시아의 미국 송환을 촉진하고 실시”하도록 정부에 지시하는 예비/임시 명령을 내렸다. 정부의 잘못과 예비/임시 명령의 적합성을 확인하는 법원의 공식 의견은 6일에 나왔다.
정부는 즉시 연방제 4 순회법원에 항소했는데, 아브레고 가르시아가 현재 타국에 있기 때문에 연방지방법원이 그에 대한 인신 관할권이 없을뿐더러, 외교 문제는 행정부(와 입법부) 소관이라 사법부가 행정부에게 특정한 정책 실행을 요구하는 것은 헌법이 정한 권력분립을 지키지 않는 월권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equitable 구제책으로 지방법원의 명령을 긴급 중지해 줄 것을 요청했다. 중지 요청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항소 중 중지”이고 다른 하나는 “행정 상 중지”다. 전자는 항소심에서 심사를 마무리하고 결정을 내리 전까지 하급법원의 결정을 중지하는 것이고, 후자는 “항소 중 중지”에 대한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 하급법원의 결정을 일단 즉시 중지하는 것이다. 정부는 둘 다 요청했고, 연방제 4 순회법원은 둘 다 기각했다.
정부는 연방대법원에 같은 긴급 중지 신청을 넣었다. 연방대법원장은 지방법원의 정한 송환 날짜인 4월 7일 당일에 우선 “행정 상 중지”를 내려, 지방법원의 명령을 일시 중지시켰다. 그리고 3일 뒤 판결을 통해 지방법원의 명령에 대해 부분적으로 합당하고 부분적으로 부당하다는 무기명 판결을 내렸다.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주문을 작성한 대법관이 있는 경우가 많지만, 때로는 무기명으로 (법원 전체의 이름으로) 나오기도 한다. 그것을 “per curiam” (by a court) 판결이라고 한다. Per curiam 판결이라고 해서 곧 만장일치 판결이라는 뜻은 아니다. 주문은 per curiam으로 나오지만, 보충의견과 반대의견이 뒤따르는 경우도 더러 있다.
어쨌거나 이번 대법원 판결도 per curiam 나왔고 소토마이어 대법관의 추가 의견이 있었다. 판결의 요지는 지방법원이 정부에게 아브레고 가르시아 송환을 그와 같이 “촉진”하라고 한 것은 적합한 것이었지만, “실시”하라고 한 것은 외교 문제를 관장하는 정부의 권한을 침해하는 월권의 소지가 있을 수 있으니 그 점을 감안하여 정부의 고유 권한을 “존중”하고 지시의 내용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연방대법원이 만장일치로 자신들의 편을 들어줬다는 정부 관계자의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니고, 또한 연방대법원이 아브레고 가르시아를 미국으로 송환하도록 정부에게 명령했다는 세간의 해석도 엄밀히 말하면 사실이 아니다. 연방대법원이 한 일은 지방법원의 명령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지방법원이 그 판단을 지침으로 삼아 명령을 수정하도록 사건을 돌려보낸 것이다.
지방법원은 지시 사항을 수정하여 이제 정부 관계자로 하여금 그동안 아브레고 가르시아의 송환을 촉진하기 위하여 정부가 어떠한 조치들을 취해왔는지, 그리고 그에 대한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를 보고하도록 했다. 지금까지의 정부의 대응은 선택적이고 미온적이다. 우선, 선택적으로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정부의 승리로 간주했다. 연방대법원이 사법부가 행정부를 “존중”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했다는 점에 치중한 해석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연방대법원의 결정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정을 최대한 유리하게 취사선택하여 공표하는 전략을 취한 것이다. 한편, 지방법원을 상대하는 정부의 실무자들은 미온적인 태도로 대응하고 있다. 이미 정부의 “행정 상의 착오”를 인정한 법무부의 실무자는 강제 휴가조치가 내려진 상태다.
원고들이 애초에 주장한 대로 이 사건의 핵심은 적법 절차의 위반이다. 수정헌법의 적법 절차 조항이나 다른 행정 절차법 위반도 논해야 하겠지만, 가장 직접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추방보류” 명령이다. “추방보류” 명령을 무효로 만들기 위해서 따라야 할 절차를 위반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추방보류” 명령을 내린 것은 이민행정법원의 판사인데, 이 기관은 엄밀히 말해서 사법부가 아니며, 이 판사들은 소위 헌법 3조가 지정한 연방사법부의 판사들이 아니다. 이민행정법원은 법무부 직속의 행정기관이다. 연방사법부 판사들은 대통령이 지명과 상원의 동의를 받아 임명되며 종신직인 반면, 이민 판사들은 법무부 장관이 임명하며 임기는 보통 15년이다.
대통령을 위시로 한 행정부 각 기관들을 일치 단결된 조직으로 간주하는 행정부 일원론 주창자들이 있는데, 그러한 관점에서는 행정부 한 기관의 결정이 다른 기관에 의해 (전체적 기조에 따라) 유연하고 재량껏 변경되는 것이 종종 옹호되곤 한다.
여기서 아브레고 가르시아의 폭력조직원 혐의가 문제가 된다. 그가 미국에 허가 없이 입국한 것은 2011/2012년 경, 이민 당국에 체포되어 “추방” 명령과 “추방보류” 명령을 받은 것이 2019년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는 노동 허가도 얻고 가정도 꾸리고 살아온 그가 3월 갑자기 체포되어 추방된 배경에는 바로 지난 2월에 엘 살바도르의 모 조직이 몇몇 다른 조직들과 함께 공식 위험 외국 테러 조직으로 규정된 일이 있었다. 이 때문에 해당 조직의 일원으로 의심을 받는 이민자들이 대규모 추방 조치에 놓였던 것이다. 행정부 일원론 주창자들의 관점에서 제공되는 논의들에 따르면, 만약 아브레고 가르시아가 공식적으로 위험 테러 조직으로 지정된 갱단의 조직원이라면, 그에게 내려진 “추방보류” 명령은 자동으로 집행 불가 상태로 전환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추방” 명령 발동이 가능해진다. 정부는 설사 절차 상의 문제가 있었다고 해도 이미 본국으로 송환된 엘 살바도르 시민을 엘 살바도르 정부의 의지에 반하여 다시 미국으로 데려올 수는 없으며, 만약 엘 살바도르가 그를 미국으로 보내도록 결정한다고 해도, 그의 신분이 “추방” 대상자이기 때문에 미국 이민 당국은 그를 다시 추방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아브레고 가르시아의 폭력조직원 혐의의 근거는 무엇인가? 그가 2019년에 경찰에 체포되어 이민 당국으로 넘겨져 추방 위기에 놓여 있었을 때, 바로 이 폭력조직원 혐의를 받았다. 이민 당국은 지역 경찰의 기록에 기반하여 아브레고 가르시아가 “다른 조직원들과 함께 체포”되었으며 “신뢰할 수 있는 정보원에 의해 * 갱단의 고위 조직원으로 확인되었다”라고 주장했으며, 이민행정법원 볼티모어 지부 담당 판사였던 엘리자베스 케슬러는 그의 보석 신청을 기각하면서 “증거에 따르면 그는 * 의 확인된 조직원이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아브레고 가르시아는 그 조직의 일원이라는 혐의를 부인했지만, 케슬러 이민 판사는 그가 이민 당국의 주장을 성공적으로 반박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아브레고 가르시아는 이민행정 절차에 따라 항소했지만, 그의 보석 기각은 인용되었다.
그러니 아브레고 가르시아의 폭력조직원 혐의의 근거는 1) 2019년 그의 보석 신청을 기각했던 이민 판사의 결정이고 (그 바탕이 되는 것은 경찰이 정보원으로부터 확보한 정보와 인상착의로부터 유추한 정보다), 2) 그 이민 판사의 결정이 적합했음을 확인한 이민행정국 항소심의 결정, 즉 행정부에 속하는 이민행정법원의 보석 기각에 대한 결정이다. 따라서 엄밀하게 사법부가 형사사건을 다룰 때 사용하는 기준으로 보면 “풍문” 수준을 넘지 못하는 증거다.
문제는 이민자의 추방은 형사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형사 사건에 서 피의자를 보호하는 까닭은 피의자가 재판 결과에 따라 사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인데, 이민을 주권 국가의 절대적 권한으로 보는 법리 하에서 이민자의 추방은 사법적 처벌이 아닌 행정적 조치다. 아브레고 가르시아 문제가 현실적으로 까다로울 수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아브레고 가르시아 사건은 1월 새로 출범한 행정부의 광폭 행보를 사법부가 중지 명령으로 막아서는 것에 대한 권한쟁의가 한창인 때 발생한 사건이다. 미국의 맥락에서 이 문제는 그 자체로 오래 논란거리였다. 소위 “전국적 중지명령”의 타당성에 대한 법적 논쟁인데, 사실 “전국적”이라는 수식어는 핵심 사항을 오도할 수 있다. 핵심은 연방지방법원이 정부의 정책을 심사하면서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제삼자에게까지 유효한 중지명령을 내리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다소 만만치 않은 문제다.
만만치 않은 문제가 대두되면 정치권은 대개 이중잣대로 대응한다. 충분히 예측가능하다는 점에서 이해할만한 일이다. 모든 법은 결국 해석의 문제인데, 해석을 위한 이론들은 여럿 존재하고 그 이론들을 적용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가다머 식으로 말해서) 이론의 적용에 대한 이론은 없다. 특정 이론을 적용하는 정치적 동기와 이유가 있을 뿐이다.
보기 좋은 “그림”을 만들려는 노력, 듣기 좋은 “스토리”와 딱 들어맞는 “프레임”을 짜려는 노력은 이미 전방위적으로 진행 중이다.
이 일이 어떻게 끝날 지는 정치인들의 정치적 계산에 (따라서 그 계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것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