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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후 탄핵 재판? 두 번째 탄핵과 트럼프

by 발태모의 포랍도


지난 1월 6일, 미국에서는 의사당 불법 난입이라는 초유의 사건이 있었다. 경찰관 1명 포함 5명이 사망했고, 부상을 입은 사람은 부지기수였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인 13일, 미국 연방 하원은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한 대통령이 탄핵소추를 두 번 당한 것은 미국 역사상 유래 없는 일이다. 하원은 1월 6일에 있었던 집회에서 트럼프가 군중들을 선동하고 폭동을 고무했다는 점을 탄핵 사유로 들었다. 하원 의장 낸시 펠로시(민주당)는 트럼프를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 인물로 규정하면서 의원들의 찬성 투표를 독려했다. 탄핵소추의 부당함을 역설한 야당 원내 대표 케빈 맥카시(공화당)조차 트럼프가 난동에 대해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투표 결과는 232-197, 찬성표를 던진 이들 중에는 열 명의 공화당 의원들도 있었다.


하원이 탄핵 소추를 했으니 이제 헌법이 정한 바에 따라 상원이 탄핵 재판을 수행해야 했는데, 이 일이 트럼프의 임기 말미에 벌어진 까닭에 재판이 열리기도 전에 정권이 교체되었다. 1월 20일, 조 바이든이 새 대통령으로 취임한 것이다.


그리고 오늘 (2월 9일), 상원에서 트럼프에 대한 탄핵 재판이 시작되었다.


이미 '전직' 대통령이 된 트럼프에 대해 탄핵 재판을 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트럼프가 공직에서 물러난 이상 그에 대한 탄핵 재판을 열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고, 이번 탄핵은 결국 기껏해야 상징적인 의미를 가질 뿐인 정치판의 소동일 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미국 헌법 조문과 탄핵 재판의 역사를 살펴보면, 트럼프에 대한 두 번째 탄핵 재판은 가능할 뿐 아니라 꼭 필요하다는 주장 역시 설득력이 있다.


우선, 임기가 종료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헌법이 탄핵의 대상을 “대통령과 부통령, 그리고 연방 정부의 모든 관리”(2조 4절)라고 규정하고 있는 점에 주목한다. 임기가 이미 끝난 "전직" 대통령에 관한 탄핵 재판을 연다는 것은 근거 없는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허나, 탄핵소추와 탄핵 심판의 주체인 연방 의회의 권한에 대해서 논하는 헌법 조문을 살펴보면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헌법 1조는 우선 연방 하원에게 탄핵소추의 권한을, 연방 상원에게 탄핵 심판의 권한을 전적으로 부여하고(2절 5항과 3절 6항), 이어서 상원의 판결권을 다음과 같이 풀어 설명한다.


"... 누구라도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 없이는 유죄판결을 받지 아니한다. (6항)"


"탄핵 재판의 판결은 면직 그리고 명예직, 위임직, 또는 유급 관직에 취임하거나 재직하는 자격을 박탈하는 것 이상이 될 수 없다. 다만, 이같이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일지라도 법률 규정에 따른 기소, 재판, 판결 및 처벌을 면할 수 없다. (7항)"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상원의 탄핵 재판은 사법 재판이 아니라는 점이다. 탄핵 재판의 유죄 판결은 사법 재판 상의 유죄를 의미하지 않는다. 법률에 따른 기소와 재판은 탄핵 재판과 별도로 진행될 일이다. 둘째, 탄핵 재판은 대상자의 면직뿐 아니라, 공직에 취임할 수 있는 자격을 박탈하는 문제 역시 심사한다. 이점이 중요하다. 따라서 탄핵 재판 대상이 되는 대통령을 비롯한 연방 관리가 이미 면직 상태에 처해 있다고 하더라도, 자격 박탈에 대한 판단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일견 비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는 퇴임 후 탄핵 재판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실제 미국 역사에서 흡사한 일은 없었을까? 230년이 넘는 미헌정사 상 탄핵 재판이 열린 것은 단 스무 번뿐이다. 그중 열다섯 번은 임기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은 연방 판사들에 대한 재판이었다. 나머지 다섯 명은 대통령 세 명(앤드류 존슨, 빌 클린턴, 트럼프), 행정부 각료 한 명(윌리엄 벨크냅 전쟁부 장관), 상원 의원 한 명(윌리엄 블론트)이다.


블론트는 미국 독립전쟁에 참여하고, 연방 헌법 제정 회의에도 참석했던 건국 공신이었지만, 역사상 최초로 탄핵 심판 대상자가 된 인물이다. 그는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영국,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과 공모하여 당시 스페인령이었던 루이지애나와 플로리다를 공격하는 계획을 꾀하다 들통이나 탄핵 위기에 처했다. 음모가 처음 발각된 것은 1797년 7월, 상하원은 모두 즉시 조사에 착수했다. 하원은 서둘러 블론트를 탄핵 소추했고, 이어서 상원은 그에게 탄핵 재판 출석을 명함과 동시에 그를 제명해 버렸다. 블론트는 본거지인 테네시로 돌아가서 한 동안 나타나지 않았고, 그에 대한 탄핵 재판은 1798년 12월이 되어서야 열릴 수 있었는데 그의 신병은 여전히 확보되지 않은 상태였다. 상원은 1799년 1월에 결국 블론트의 탄핵 사유를 기각했지만, 이미 제명된 사람에 대한 탄핵 재판의 선례를 남기게 되었다.


전쟁부(현 국방부의 전신) 장관이었던 벨크냅 탄핵 재판 역시 주목할만하다. 부패한 장관이었던 그는 탄핵 위기에 처하자 하원의 탄핵소추 표결에 앞서 사임했다. (기록에 따르면 투표가 있던 날 당일 오전에 백악관으로 달려가 당시 율리시즈 그랜트 대통령에게 사직서를 전달하며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그러나 하원은 예정대로 탄핵소추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고, 상원도 다음 달에 탄핵 재판을 진행했다. 40여 명의 증인을 소환하며 진행된 재판 끝에 상원 의원의 과반수는 벨크냅에 대한 다섯 가지의 탄핵 사유를 모두 승인했지만, 헌법이 명한 "3분의 2 이상의 찬성"에 도달하지 못해 무죄 선고가 내려졌다. 이 탄핵 재판을 통해 상원은 "전직" 관리에 대해서도 탄핵 심판권이 있음을 명시적으로 확인한 셈이다.


이처럼 헌법 조문 해석과 선례에 비추어 보았을 때, 상원이 트럼프 퇴임 후에 그에 대한 탄핵 재판을 진행할 근거는 충분하다. 트럼프가 스스로 2024년 선거 출마 가능성을 내비친 적이 있는 까닭에(워싱턴을 떠나기 직전 그는 "우리는 돌아올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이라고 말했다), 그의 자격 박탈에 대한 심사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크기에 더욱 그렇다.


문제는 정치적 상황이다. 탄핵 재판은 결국 도덕적 정죄도 사법적 심판도 아닌 정치적 절차이기 때문이다. 바이든 정부 입장에서 보면, 트럼프 탄핵 재판이 기회이자 부담일 것이다. 우선, 이 기회에 의사당 난입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에 대한 책임을 트럼프와 그 추종자들에게 확실히 따져 묻고, 그들을 정치적으로 고립시킬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 있겠다. 그러나 여전히 트럼프 지지자들의 영향력이 사그라들지 않은 작금의 사정을 감안할 때, 트럼프 탄핵 재판이 계속되는 비타협과 반목의 좋은 구실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블론트는 탄핵 재판의 오명에도 불구하고 본거지인 테네시 주에서는 인기가 좋았다. 탄핵 재판 뒤 테네시 주상원의원으로 뽑힌 그는 일 년 뒤 사망할 때까지 의장 역할을 맡았다. 트럼프와 트럼프 일가도 플로리다를 비롯한 그들을 반기는 어느 곳에서 재기를 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재판이 시작되면, 트럼프에 쪽에서는 지지자들을 부추기면서 혐의를 부인하고 책임을 회피하려 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그대로 소멸될 수도 있을 트럼프의 정치세력이 탄핵 재판을 계기로 다시금 힘을 얻게 된다면, 민주당이 바라는 탄핵의 정치적 효과는 반감될 것이다.


1933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취임하고, 가장 분주하고 중요한 첫 100일을 보내고 있을 때, 캘리포니아 주의 연방 판사였던 해롤드 로더백의 탄핵 문제가 불거진 일이 있었다. 당시 상원은 거의 한 달 내내 로더백의 탄핵 재판에만 매달렸다. 그때 민주당 의원들은 공화당 의원들이 탄핵 재판을 빌미로 개혁입법 진행을 방해한다고 비난했었다. 물론 지금의 상원은 그 당시에 비해 당면 과제들을 속행할 수 있는 제도와 절차를 구비하고 있지만, 탄핵 재판이 시작되면 모든 관심이 일차적으로 여기에 쏠릴 것이라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새로 출범한 바이든 정부와 오랜만에 상하원 다수를 차지한 민주당은 어떤 리더십과 정치를 보여줄 것인가? 트럼프 탄핵 재판은 이들의 정치력을 시험하는 첫 번째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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