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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분위기 메이커들을 위한 변론

우리들은 잘못이 없다

by 관절조심

유년시절 학생 기록부에 자주 등장한 단어가 있다. “분위기 메이커”라는 단어다. 대학에 들어가고 취직을 해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회사 워크숍에서도 팀원들은 나의 장점에 ‘분위기 메이커’라는 말을 곧잘 썼다. 지금까지의 궤적들로 따져보면 나는 분위기를 만드는 사람인 셈이다.


사실 얼핏보기에 칭찬 같은 이 단어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조금 더 꼬인 심사를 드러내보자면 이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분위기 메이커라는 말은 엄청난 신체적, 정신적 노동을 불과 여섯 음절로 축약한 것일 뿐이다. 미리 말하건대 ‘그럼 분위기 메이커 따위 안하면 되잖아’ 라는 소리는 하지 말자. 좋든 싫든 분위기 메이커라고 불리는 이들은 그 노동을 태생적으로 피할 수 없다. 이것이 중노동이라는 증거들은 아마도 다음과 같을 것이다.


분위기 메이커라 불리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말이 많다. 말이 많다기보다 말을 해야만 한다. 어색한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어색함을 참지 못하는 이유는 고요함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개인적으로는 모임 자리에 노래만 틀어 놓아도 이들이 해야 하는 노동의 상당 부분은 절감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을 하는 것도 결국 신체 행위의 일부이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심하다. 이들이 말만 많이 하는가? 리액션도 대부분 잘해준다. 많은 분위기 메이커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녹초가 되어 현타를 느끼는 이유도 이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은 결국 본인을 더 드러내야 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가장 바닥나지 않는 소재는 본인이기 때문이다. 분위기 메이커들은 결국 원치 않는 개인사를 털어놓게 되고, 말하고 싶지 않았던 정보도 제공하게 된다. 가장 최악의 경우는 실언을 할 때다.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실언은 ‘갑분싸'형 실언보다도 '웃음으로 신념닦기'형 실언이다. 상황을 대충 모면하거나 재미있게 넘어가기 위해 개인의 신념에 위배되는 이야기를 나도 모르게 뱉을 때가 주로 해당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꼭 웃고 넘어가느라 정정할 시간 따위도 없다. 웃음 뒤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현타는 오로지 분위기 메이커들의 몫이다. 그때만큼은 집에 들어가서 세숫대야에 얼굴을 처박고 싶을 정도로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


한 번 분위기 메이커로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 그 이후도 머리가 아파진다. 한 번 모임에서 굳어진 역할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특정 모임에서 분위기 메이커를 맡게 되면 어느 순간 침묵까지 분위기 메이커의 책임이 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분명 그 누구도 힐난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가 뜨는 순간 모두의 눈초리와 은근한 기대는 슬며시 분위기 메이커를 향해 있다. 자의식 과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위기의 순간을 외면하기 쉬운 분위기 메이커들은 없다. 오늘은 가만히 있겠어! 라고 다짐한 순간에도 은근한 ‘분위기’의 압박이 가해져오면 어김없이 열리는 것이 분위기 메이커들의 입이다.


물론 세월의 힘에 밀려 분위기 메이커들은 변하기도 한다. 분위기 노동에 대한 지각이 생기고 그에 따른 현타가 지속되고 나면 분위기 메이커들도 조금씩 바뀐다. 나 역시 이제는 어느 정도 노동의 강도를 조절할 줄 안다. 심지어 원치 않을 때는 철골보다 무거운 어색함을 견디며 입을 다물고 있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를 수식하는 말에 분위기 메이커라는 단어는 자주 등장한다. 어쩌면 그 이유에 태생적인 원인만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분위기 메이커는 기본적으로 분위기를 상승 시키는 사람들에게 붙는 칭호다. 구태여 ‘좋은’ 분위기 메이커라고 말하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분위기를 나쁘게 만드는 사람들에게 분위기 메이커라는 품계는 하사되지는 않는다. 물론 세상의 모든 모임 분위기가 좋아야만 할 필요는 없다. 굳이 분위기 메이커가 없이도 잘 운영되는 모임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분위기 메이커들은 모임을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견인하는 사람들이다. 분위기 메이커의 발화 한 스푼이 들어간 자리는 유들유들해진다. 유들유들해진 공기는 곧 장벽을 내리고 사람들간의 핑퐁을 부른다. 다양한 핑퐁 사이에서 사람들은 사람으로부터 얻는 '에너지'를 느끼게 된다. 어쩌면 집단의 긍정적 기능을 가장 잘 활용하는 사람들은 분위기 메이커들이 아닐까.


인간 관계에 대해 잘은 몰라도 지금껏 웃으며 보낸 관계들 치고 안 좋게 끝낸 적은 없다. 대인관계의 중요성이야 데일 카네기나 다수의 심리학자들이 잘 말해줄테니 여기서는 잠시 생략하자. 어쨌든 분위기 메이커들은 인류를 좀 더 좋은 쪽으로 견인하는 사람들이다. 얼마 전 친구가 새해 인사로 남긴 말을 끝으로 이 세상 모든 분위기 메이커들에게 심심한 위로와 올해도 화이팅 하자는 메세지를 남겨본다. “너 덕분에 올해도 즐거웠어. 매번 애써줘서 고맙다.”


/ 아카이빙, 2021년 합평 글 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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