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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urney Han Mar 18. 2023

그리스 사람, 엘 그레코

<그리스 프로젝트> ⑭ 화가 엘 그레코


이름은 한 사람의 정체성을 담은 상징이자 현실이다옛날 드라마를 보면 항상 이름이 없거나 본명을 알 수 없는 ㅇㅇ댁이나 ㅇㅇ가와 같은 무명의 인물들이 등장하곤 했다누구도 그 사람의 본명을 묻진 않지만 그 별칭만으로도 ㅇㅇ에서 시집왔다든지 ㅇㅇ지역 출신이란 걸 추측할 수 있었고결국 ㅇㅇ는 그 사람의 이름뿐 아니라 그 사람 자체가 되곤 했다

타지에서 온 이방인들에게 새겨주는 문신같기도 하고고향을 잊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선언같기도 한 이 별칭들에는 떨어져 온 거리만큼의 쓸쓸함이 묻어 있기도 하다



스페인어로 ‘그리스 사람(El Greco)’이란 이름의 화가가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알려진 엘 그레코(1541~1614).

화가이자 조각가, 건축가였던 엘 그레코는 당시 이탈리아 베네치아 공화국 지배하에 있던 칸디아 왕국(지금의 그리스 크레타 섬) 이라클리온에서 태어났다. ‘도미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Δομήνικος Θεοτοκόπουλος)’라는 그리스식 본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에서 이탈리아를 거쳐 스페인 톨레도에 정착하는 인생여정 속에서 그냥 ‘그리스 사람’이 되었고, 지금까지 ‘엘 그레코’라는 이름으로 예술 역사에 남아 있다.       

 

화풍에 있어서 르네상스 시대의 이단아와도 같았던 엘 그레코는 언제나 자신의 작품에 그리스 문자로 본명을 서명했고, 가끔씩은 고향인 크레타 섬을 의미하는 ‘크리스’(Κρής/Krḗs)를 넣으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곤 했다. 그러나 읽기도 발음하기도 어려운 그의 그리스식 이름은 그냥 그리스 사람으로 기억되어 오다가 사후에 ‘엘 그레코’란 고유명사로 자리 잡게 되었다.


엘 그레코의 본명인 '도미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로 쓰여진 서명



영혼을 뛰게 하는 독창적 스타일 고집한 르네상스시대의 이단아      


엘 그레코는 일찍이 후기 비잔틴 예술의 중심지였던 크레타 섬에서 전통예술(성화상)을 익힌 아이콘 화가였다. 26세 때인 1567년 베네치아로 여행가면서 그곳에서 르네상스 화풍을 만나게 되고, 다시 로마로 이주하면서 당시의 수많은 예술가-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다빈치-들에게서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대가들의 스타일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기를 고집했다. 

“대가들을 공부해야 하지만 영혼을 뛰게 하는 독창적인 스타일을 지켜야 하고, 그것을 훔치려는 사람들은 칼로 찔러야 합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자기 확신이 컸던 엘 그레코는 과장되고 비현실적인 색상 사용과 길쭉하고 뒤틀린 형태의 그림을 그리면서 당시의 예술계에 충격을 주었고, 급기야 로마 주민들의 반발을 사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로마에서 축출된다.      


스페인 톨레도로 건너간 엘 그레코는 스페인 펠리페 2세의 궁중화가가 되어 주요한 커미션을 받으면서 다양한 대작들을 완성한다. 하지만 당시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극적이고 표현주의적인 스타일은 이곳 사람들에게도 크게 어필하지 못한다. 

회색빛 명암과 색채, 자연의 법칙을 무시하고 비정상적으로 길쭉하고 뒤틀린 인체묘사와 같이 파격적인 화풍은 실제 사람과 사물을 똑같이 표현하는 고전주의 사조가 유행하던 당시로서는 ‘매너리즘’ 화풍으로 평가절하되거나 심지어 엘 그레코가 미쳤거나 난시를 앓고 있다는 소문을 낳게도 했다.     


뒤틀리고 길쭉한 형태로 그린 <다섯 번째 봉인의 열림> (성 요한의 비전, 1608-1614)



시간이 지나면서 엘 그레코는 조금씩 동료들과 예술 애호가들의 찬사와 다양한 후원자들로부터 의뢰를 받게 된다. 미켈란젤로를 연상시키는 방식과 베네치아 풍의 화풍, 생생하고 대담한 색상을 활용한 대작뿐 아니라 뛰어난 초상화가로 두각을 드러내면서 인물의 에너지와 피사체의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포착하는 것으로 각광을 받게 된다.    

 

엘 그레코는 1614년 4월 7일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톨레도에서 톨레도의 작가로 살았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 대부분은 톨레도에서 1597년부터 1607년까지의 10년 동안 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17세기 초에 등장한 초기 바로크 양식의 원칙에 여러 면에서 반대됐기 때문에 사후 세대들의 경멸을 받았고, 추종자도 없었다. 그의 아들 호르헤 마누엘(Jorge Manuel)만이 아버지 작품을 모방하면서 화풍을 이어갔다고 한다.   


(왼쪽) 엘 그레코의 자화상으로 알려진 그림(1595–1600), (오른쪽) Portrait of Saint Aloysius Gonzaga, ca. 1583



그리스-이탈리아-스페인의 화풍과 정신의 결합체     

 

“비잔틴 아이콘의 평평한 상징적 세계에서 르네상스 회화의 세계를 포용하고 인본주의적인 비전으로 정신적으로 이동한 위대한 서양 예술가로는 엘 그레코가 유일하다.” _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미술사학자 키스 크리스천슨(Keith Christiansen)      


“혈통으로는 그리스인이고, 예술적 준비로는 이탈리아인이었지만 스페인의 종교 환경에 깊이 몰입, 세 가지 문화의 결합으로 인해 그는 전통적인 학파에 속하지 않고 전례 없는 정서적 힘과 상상력을 가진 외로운 천재가 될 정도로 개인적인 예술가로 발전했다.” _ 미술사학자이자 엘 그레코 학자인 해롤드 웨시(Harold Wethey)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1588



세잔피카소릴케카잔차키스… 엘 그레코에 매료되다     


사후 오랫동안 묻혔던 엘 그레코가 다시 재평가받으며 관심을 받게 된 것은 19세기초 낭만주의가 부상하면서부터. 환상적이고 극단적인 것에 흥분한 낭만주의자들은 “위대한 화가와 천재의 광기를 배반하는 타락한 에너지”라며(테오 필 고티에 Théophile Gautier) 엘 그레코에 매료되었다. 

엘 그레코의 작품에서의 현실에 대한 주관적인 인식과 구조성은 후기 인상파이자 입체파의 선구자 중 한 명인 세잔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고, 표현력과 색채는 들라크루아마네에게 영향을 미쳤다. 피카소 또한 엘 그레코를 연구, <다섯 번째 봉인의 열림>과 <아비뇽의 처녀들> 간의 유사성과 모티프 간의 관계가 분석되기도 했다.     

특히 20세기 초 독일 표현주의가 등장하면서 엘 그레코는 미술사에서 신기원을 이룬 가장 중요한 작가로 부각되기 시작하는데, 잭슨 폴록의 추상표현주의 또한 엘 그레코의 영향 아래 있다고 알려졌다. 미술사학자 마누엘 바르톨로메 코시오와 줄리어스 마이어-그라프는 “그의 뒤를 이은 모든 세대가 그의 영역에 살고 있다”며 엘 그레코의 작품에 대한 재평가를 시작했다. 

엘 그레코의 환상성과 현대성은 미술뿐 아니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 등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알려져 있다.      


다양한 재평가와 함께 1910년에서야 엘 그레코 박물관이 톨레도에 건립되었다. 

미술사학자 에피 푼둘라키(Ephi Foundoulaki)는 “낭만주의자들에 의해 재발견된 이후 엘 그레코의 작품은 인상파, 상징주의자, 모더니스트, 표현주의자들에게 ‘계시적 대리인’ 역할을 하는 ‘현대 미술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의 귀중한 도구’가 되었다”며 엘 그레코를 ‘현대’ 화가로 간주하고 엘 그레코 예술이 보편성을 얻는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왼쪽) <View of Toledo>(1596–1600) Metropolitan Museum of Art, (오른쪽)<촛불켜는소년의우화>(1526-1528)



헝가리 부다페스트 국립미술관에서 공개한 80점의 엘 그레코 회고전    

  

헝가리 부다페스트 국립미술관(www.mfab.hu)은 지난해 10월 28일부터 올해 2월 9일까지 장장 4개월 가까이 <엘 그레코> 걸작 전시를 올렸다. 헝가리 미술관은 유럽에서 스페인 다음으로 엘 그레코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곳으로, 8년 동안 이 전시를 준비해 왔다고 한다. 마드리드 국립 프라도 미술관,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 파리 루브르 미술관, 런던 내셔널 갤러리, 워싱턴DC 미술관 등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공공 컬렉션에서 대여한 80여 점의 작품들은 최초의 대규모 헝가리 전시회로 눈길을 끌었고, 10만여 명이 넘는 관람객을 기록했다.        

이번 전시의 큐레이터를 맡은 스페인 왕실 컬렉션 디렉터인 레티시아 루이즈 고메즈(Dr Leticia Ruiz Gómez)는 “이 전시회는 유럽 미술사에서 가장 뛰어난 거장 중 한 명인 엘 그레코의 작품에 대한 포괄적인 개요를 제시하는 동시에 그가 적용한 형식의 완전한 복잡성과 놀라운 문체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고자 한다”고 전시 소감을 밝혔다. 특히 엘 그레코의 가장 가까운 추종자였던 그의 아들 호르헤 마누엘(Jorge Manuel)과 루이스 트리스탄(Luis Tristán)의 작품도 함께 선보이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엘 그레코 걸작전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302) El Greco | Budapest Museum of Fine Arts | ARSCRONICA - YouTube


 

반젤리스의 <A tribute to EL GRECO>     


디아스포라의 동병상련이었을까? 

그리스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한 건반주자이자 영화 <불의 전차>, <1492 콜럼버스> 등의 사운드트랙 작곡가로 잘 알려진 음악가 반젤리스(Vangelis 1943~2022)는 1995년 엘 그레코 헌정 앨범을 출시했다. 반젤리스는 평소 미술과 조각 등에 남다른 조예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앨범은 엘 그레코의 작품들을 스페인 톨레도에서 다시 그리스 본국으로 반환하기 위한 기금 조성을 위해 제작되었다고 한다. 

반젤리스가 금(金)으로 직접 넘버링하고 친필 사인해 3000 세트 한정판으로 만든 이 앨범은 아테네의 내셔널 갤러리인 ‘알렉산드로스 수초스 뮤지엄(Alexandros soutzos museum)’에서만 판매해 전 세계의 반젤리스 팬들을 애태우기도 했다. 앨범 패키지에는 CD뿐만 아니라 128페이지에 달하는 엘 그레코 화보가 담겨 있다. 반젤리스의 엘 그레코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가늠하게 해주는 이 앨범은 1998년 국제판으로도 재발매되었는데, 스페인 출신 소프라노 몽세라 카바예(Montserrat Caballé)가 찬조출연했다.         

  

1995년 한정판으로 발매된 앨범(Foros Timis Stone Greco)과 1998년 세계판으로 재발매된 반젤리스의 엘그레코 헌정앨범(A Tribute to EL GRECO)



영화 <엘 그레코>     


엘 그레코의 일생을 그린 전기영화도 제작되었다(한국 미개봉). 그리스 작가 드리트리스 시아토풀로스의 가상 전기소설 『엘 그레코: 신의 화가(El Greco: the Painter of God)』를 바탕으로 야니 스마라그디스(Yannis Smaragdis) 감독이 연출, 2007년 개봉했다. 16세기를 배경으로 자유와 사랑을 추구하는 엘 그레코의 이야기가 크레타섬에서부터 베니스 궁정에 이어 스페인 톨레도에 이르는 장대한 스토리로 담겨져 있다. 타협하지 않는 예술가이자 자유를 위한 투사인 엘 그레코의 일생을 담은 서사시로 그리스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 역시 반젤리스(Vangelis)가 담당했는데, 이로써 반젤리스는 95년의 헌정앨범(<Foros Timis Ston Greco>)과 98년의 재발매 헌정앨범(<A tribute to EL GRECO>)에 이어 엘 그레코에 대한 세 번째 헌정앨범 프로젝트를 완수하게 되었다. 


    

영화 <엘 그레코> (2007)



https://www.youtube.com/watch?v=mvfTqgr_8B4(El Greco: The Movie (2007) trailer No.1

https://www.youtube.com/watch?v=sISdsyQ1f9w (El Greco (2007)| Full Length Biography Movie| English Subtitles)       






   

*자료참고: 

- 위키피디아 

- 그릭뉴스아젠다(https://www.greeknewsagenda.gr/topics/new-arts-in-greece/7547-el-greco)

- 부다페스트국립미술관(https://www.greeknewsagenda.gr)     



*표지사진: Ⓒ MTI - Hungarian News Agen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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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azul24/223048760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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