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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urney Han May 06. 2023

아테네 문화예술계의 두 기둥

<그리스 프로젝트> ⑮ 오나시스 VS. 니아르코스


살아서도 죽어서도 라이벌

그들의 경쟁이 남긴 빛나는 문화예술 유산들



오늘날의 그리스 문화예술을 논하는 데 있어 두 개의 특별한 공간을 제외하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하나는 2010년 ‘현대 문화가 미학과 과학을 만나는 곳(The place where contemporary culture meets aesthetics and science)’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오나시스 재단에서 문을 연 ‘오나시스 문화센터(Onassis Stegi)’이고, 다른 하나는 스타브로스 니아르코스 재단이 2006년부터 시작해 11년 간의 공사 끝에 2017년에 개관한 ‘스타브로스 니아르코스 재단 문화센터(SNFCC)’이다.     

 

이름에서부터 그리스 역대 최대 라이벌(오나시스 VS. 니아르코스)의 존재를 드러내는 이 두 재단은 불과 몇 미터를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성격이지만 같은 지향점을 지닌 공간을 운영하는데, 문화예술과 과학, 교육에서부터 의료, 환경, 사회복지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에 걸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면서 아테네의 살아 있는 문화권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생전에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두 사람은 죽어서도 문화재단을 통해 건물 위치뿐 아니라 디자인이나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한 편의 서사시와 같은 경쟁으로 위대한 유산의 힘을 지속시켜 나가고 있다. 


아테네 도심에 위치한 오나시스 문화센터(Onassis Stegi)와 외곽에 큰 정원으로 자리 잡은 스타브로스 니아르코스 문화센터(SNFCC)



질투사랑권력 두 거물의 결투


20세기 세계를 주름잡던 그리스 해운업계의 3대장이 있다면, 스타브로스 리바노스(Stavros G. Rivanos, 1891~1963)를 중심으로 한 쪽에 아리스토틀 소크라테스 오나시스(Aristotle S. Onassis, 1906~1975)가 있고, 다른 한 쪽엔 스타브로스 니아르코스(Stavros S. Niarchos, 1909~1996)가 있다.     

 

한 명이 1906년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시대의 터키 이즈미르에서 태어난 후 아르헨티나로 건너가 전화교환수, 담배장수 등을 하다가 부를 축적, 맨몸으로 세계 최고 해운왕이자 부호의 자리를 꿰찬 오나시스라면, 다른 한 명은 1909년 아테네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아테네 대학 법대를 나온 후 가족회사인 제분소 체인을 키우다 급기야 억만장자 운송 거물로 거듭난 니아르코스이다.      


두 사람은 태생도, 성격도 완전히 달랐지만 그리스의 새로운 20세기를 만든다는 공통된 운명 아래 파란만장한 한시대를 동반하게 된다. 특히 1세대인 리바노스의 두 딸과 각각 복잡한 혼인관계를 맺으면서 오나시스와 니아르코스는 평생을 풀지 못할 정적관계로 들어서게 된다. 마치 ‘질투-사랑-돈-권력’이라는 네 개의 바퀴로 된 멈추지 않는 수레를 함께 탄 사람들마냥 두 거물의 결투 이야기는 승자도 패자도 없이 살아서나 죽어서나 쉼 없이 세상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오나시스는 일생 두 번의 결혼을 하는데, 마흔살에 리바노스의 두 딸 중 막내인 17세의 아티나(Athina. 티나)와 첫 결혼을 하고, 14년 뒤 이혼한다. 성악가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와의 오랜 연인관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62세 때 J.F. 케네디 대통령의 미망인인 39세의 재클린 케네디(Jacqueline Kennedy)와의 재혼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다. 


반면 니아르코스는 총 다섯 번의 결혼을 하는데, 콘스탄틴 제독의 딸과 그리스 외교관의 미망인에 이어 세 번째 결혼이 리바노스의 첫째 딸이자 (오나시스의 첫부인인) 아티나의 언니인 유지니아와, 네 번째 결혼은 자동차 재벌 헨리 포드 2세의 딸인 샬롯 포드와, 그리고 다섯 번째 아내로 바로 처제이자 오나시스의 첫 부인이었던 아티나를 선택한다.     


그야말로 족보가 꼬여도 장난 아니게 꼬여버린 동서지간의 오나시스와 니아르코스는 ‘아티나’를 매개로 불꽃 튀는 경쟁을 한다. 오나시스는 그리스 선박뿐 아니라 항공회사 ‘올림픽 항공(Olympic Airways)까지 섭렵하며 승승장구하는 한편, 니아르코스는 수에즈 운하의 위기를 이용하여 해운 사업에서 억만장자가 되고 그리스 최초의 조선소를 건설한다.      


오나시스가 아티나와 결혼하자 (아티나를 뺏긴) 니아르코스는 그녀의 언니랑 결혼을 하고, 니아르코스가 에게 해의 스페소풀라(Spetsopoula) 섬을 사 개인 낙원으로 꾸미자, 6년 뒤 오나시스도 같은 방식으로 이오니아 해의 무인도인 스코르피오스(Skorpios) 섬을 산다. 또 오나시스가 세상에서 가장 호화로운 개인 요트로 알려진 ‘크리스티나 Kristina’호를 구입하여 사교계의 안방으로 만들자 니아르코스는 크리스티나보다 50피트 더 긴 375피트의 요트 ‘아틀란티스 Atlantis’를 건조하기에 이른다. 뿐만아니라 오나시스가 미국 대통령의 미망인인 재클린과 결혼식을 올리자, 니아르코스도 보란 듯이 미국 자동차 재벌의 딸인 샬롯 포드와 결혼을 한다. 각종 루머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부자가 되어가던 두 사람은 여자, 섬, 요트, 사교손님뿐 아니라 집과 빌라, 선박, 유조선, 사업에 이르기까지 사사건건 경쟁구도 체제를 놓지 않는다.      


재클린과의 결혼 후 5년 만에 오나시스는 비행기 사고로 아들 알렉산더를 잃고, 낙심이 커서인지 2년 뒤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다. 오나시스는 아들 알렉산더와 함께 그의 섬 스코르피오스에 묻힌다.  


니아르코스는 마지막 부인인 아티나가 약물과다로 1974년에 사망하자 이후 재혼하지 않았고, 오나시스 사후 20년 동안 모든 공적인 활동에서 물러난다. 니아르코스는 1996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세상을 떠나 로잔에 있는 가족 묘지에 묻힌다. 


왼쪽) 오나시스와 전 부인 아티나(티나), 오른쪽) 니아르코스의 마지막 부인이 된 아티나(티나). 두 사람 경쟁의 사발점이 된 여인 Ⓒ <Insider>(2019.07.30)



경쟁에서 보완상생으로 나아가는 아테네의 두 랜드마크

                    

두 라이벌의 죽음으로 끝났을 것 같았던 ‘세기의 결투’는 현대에 이르러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오나시스는 직접 손으로 쓴 유언장에 죽은 아들을 기리는 자선재단(Alexander S. Onassis Public Benefit Foundation) 설립을 명확히 했고, 현재까지 후손들이 아닌 15명으로 된 재단 이사회를 통해 특히 ‘문화, 교육 및 건강’을 인간이 진정으로 살기 위해 필요한 요소라 명명하고 관련된 부문에서 공익 활동을 펼치고 있다. 

스타브로스 니아르코스 재단(SNF)은 1996년 니아르코스 사망 후 사회복지, 건강, 문화예술 등을 포괄하는 재단으로 설립되어 세계 134개국 이상의 비영리 기관에 5,200개 이상의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오나시스 재단의 문화예술 파트를 책임지는 ‘오나시스 문화센터(Onassis Stegi *스테기는 ‘지붕’을 뜻하는 그리스어)’는 아테네 시내 한가운데 자리 잡고 ‘현대성과 개방성’을 상징하는 두 개의 건물로 되어 있다. 유럽의회 건물을 설계한 바 있는 프랑스의 ‘아키텍처 스튜디오’에서 설계했고, “ALL WE HAVE IS WORDS, ALL WE HAVE IS WORLDS”라는 네온 글자가 새겨져 밤이면 또 하나의 미디어 파사드 쇼를 선보인다.  


오나시스 측에서 문화센터를 개관하자 곧바로 니아르코스 재단도 문화센터 건립 작업에 들어갔다. 니아르코스 문화센터(SNFCC)는 퐁피두센터를 설계한 바 있는 이탈리아 건축가 렌조 피아노(Reno Piano)가 설계했고, 도심에서 벗어나 해안 근처에 운하와 정원으로 된 자연친화적 공간으로 꾸몄다. 

오나시스 문화센터의 건축과 문화적 접근 방식이 도시적이고 개념적인 데 반해 SNFCC는 생태학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대중 무료 프로그램 등으로 운영에 차별화를 두고 있다.      


두 문화센터 모두 그리스가 경제 위기에 빠져 있을 시기에 세워져 국민적 자존심을 끌어올린 것은 물론이고 그리스의 문화부흥과 소프트파워를 상승시키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두 부호의 경쟁은 이렇듯 상호보완하는 문화예술 인프라로 확장되어 그리스의 정신을 상징하는 실질적인 랜드마크로 살아 숨 쉬고 있다. 라이벌은 죽지 않는다.





그리스의 미래를 열어가는, 오나시스 스테기(Onassis Stegi)     



아테네 중심부에 가까운 신그로우(Syngrou) 가에 위치한 오나시스 스테기는 대리석을 현대적으로 사용하여 외관의 프레임이 미니멀한 라인으로 돋보이는 두 개의 건물로 되어 있다. 오나시스재단이 독점적으로 자금을 지원하고 감독하고 있으며 3,000㎡ 부지에 지어져 전체 내부 면적은 18,000㎡의 규모이다.      

건물 이미지처럼 그리스인들에게 도전적인 미적 개념을 제공하는 동시대 예술과 다원 예술, 디지털 예술 등을 포함한 미래적 문화예술을 지향한다. ‘현대 문화가 미학과 과학을 만나는 곳’이란 주제에 맞게 예술, 과학, 사회의 경계를 다루면서 이를 토대로 교육, 전시, 축제를 비롯해 사회문화 논제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오나시스 스테기 공연장에는 880석 규모의 원형극장(메인스테이지)과 220석 규모의 강당, 전시가 가능한 다목적 공간 및 전용 시청각 장비를 갖춘 리허설실 등이 있어 예술가들의 신작, 특정 영역에 깊이 접근하는 주제별 축제, 최첨단 국제 제작, 강의 및 대중 프로그램 운영에 사용된다.      

오나시스 스테기 레지던시는 특히 XR(eXtended Reality)과 몰입형 실습, 공연 설치, 증강 및 가상, 혼합현실(AR/VR/MR)을 포함하여 기술과 인체의 상호작용에 참여하고자 하는 예술가들을 위한 시설이다. 작가들은 레지던시 기간 동안 조직된 공개 행사에 참여하고 관련 관객 및 지역 예술가에게 작품을 발표하거나 DIWO(Do It With Others) 워크숍을 진행한다.      


오나시스 스테기의 880석 규모의 원형극장(메인스테이지)



오나시스 문화센터(Onassis Stegi)

107 Leoforos Andrea Syngrou, 아테네

https://www.onassis.org/     

Ⓒ 오나시스문화재단




도시의 경계를 확장시킨, 스타브로스 니아르코스 재단 문화센터(SNFCC)   



아테네 인근 칼리테아(Kallithea ‘전망 좋은’의 의미) 지구 옛 경마장 자리에 위치한 스타브로스 니아르코스 재단 문화센터(SNFCC)는 문화예술, 교육, 스포츠 및 레크리에이션 복합 단지로, 그리스국립도서관, 그리스국립오페라 및 20만㎡(6만5백평) 규모의 보기 드문 대공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니아르코스 재단이 전액 지원하여 이탈리아 건축가 렌조 피아노의 설계를 통해 11년간의 공사 끝에 2016년에 완성, 2017년 개관했다.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거대한 인공 언덕을 만들어 아테네 스카이라인과 연결하면서 400미터 길이의 운하를 바다로 뻗게 해 매력적인 조경을 자랑하고 있다.      


1939년 설립된 국립오페라는 옛 올림피아 극장에서 2017년 SNFCC로 이전해 오면서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는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상적인 말발굽형 무대의 1,400석 스타브로스 니아르코스 홀(ASN)과 최첨단 다목적홀인 450석의 얼터너티브 스테이지(Alternative Stage)를 두고 있다. 이곳에서 요르고스 란티모스, 마리나 아브로모비치 등이 참가한 4개의 세계 초연작이 공연되었고, 유수의 오페라, 발레, 콘서트와 시민 참가 페스티벌, 무료 프로그램 등이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그리스국립도서관 또한 도심에 있는 200년 역사의 국립도서관의 100만 권 이상의 도서 중 720,760점을 이전해 오는 대대적인 사업을 진행했는데, 9~19세기 희귀필사본을 비롯해 나폴레옹이 소유한 호모의 <일리아드> 에디션과 같은 보물도 속해 있다. 도서관 역할뿐 아니라 연구와 교육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운영하고 있다. 


도서관 꼭대기의 열람실은 전체가 유리벽으로 되어 있어 아테네와 바다가 연결되는 숨 막히는 전경을 제공한다. 그 아래로 지중해 고유 식물들로 조성한 거대한 정원이 펼쳐진다.   



1,400석 스타브로스 니아르코스 홀(ASN)과 현재 마리아 칼라스 탄생 100주년 기념 헌정식으로 공연되고 있는 오페라 <메데아>


100만 권의 도서를 보유한 신 그리스국립도서관 Ⓒ https://www.athensinsider.com/ Ⓒ (2019.07.30)



Stavros Niarchos 재단 문화센터(SNFCC) 

364 Syngrou Street, 17674 Kallithea(그리스)

https://www.snfcc.org/ 

ⒸSNFCC





표지사진: 오나시스 스테기 외관( https://www.onassi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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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azul24/223095205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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