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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urney Han Jun 25. 2023

조르바의 술, 우조 한 잔!

<그리스 프로젝트> ⑯ 그리스의 술

디오니소스의 나라답게 그리스 사람들은 술을 많이 마신다하지만 그리스어에는 숙취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다고 한다그리스 사람들에게 술은 혼자 마시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고 누리는 문화 그 자체이며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생을 즐기기 위해 천천히 음미하는 인간의 넥타(nectar)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는 유럽 최초로 와인을 생산하여 즐긴 나라다. 지중해와 중동지역에서 무려 6500년 전부터 시작된 양조법은 2000년대에 그리스에 안착되어 와인문화를 꽃 피웠고, 이후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 오늘에 이르게 된다. 

긴 역사를 두었지만, 산악지대가 대부분인 척박한 지형과 여러 정치적 이유로 인해 대규모 와이너리보다는 소규모 가족형 생산방식이 주를 이루었고, 해외 수출보다는 내수용으로 사용됐기에 그동안 우리가 맛볼 기회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내추럴 와인이 급부상하면서 그리스 와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고유한 맛과 색깔을 가진 개성 만점의 토종 와인으로서 전 세계 와인애호가들의 새로운 표적이 되고 있다.      


그리스를 대표하는 술로는 일반적인 와인(크라시(κρασί)라고 부른다) 이외에 와인에 송진을 가미한 레치나(retsina)와 와인을 만들고 남은 부산물에 약초 향을 가미하여 증류한 우조(ouzo), 또 우조와 비슷하나 양조방식에 차이가 나는 치포우로(tsipouro, 이탈리아의 그라파(grappa)와 같은 종류) 등이 있다.      


레치나는 옛 고대 그리스인들이 와인을 유럽으로 보낼 때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송진으로 밀납하여 보내면서 시작된 것으로, 약 2천년의 역사를 지닌 화이트와인이다. 포도즙 발효 전 또는 발효중에 알레포 소나무 송진을 넣어 만드는데, 송진의 양은 포도즙 100리터 당 1kg을 넘지 않는다. 근래에는 와인에서 송진을 제거하여 아로마와 맛만 남기며, 또 토종포도에서 나오는 백리향과 로즈메리향 등도 스며들어 독특한 맛을 낸다. 대부분의 가족 와이너리에서 일반 와인 제조와 별도로 레치나를 함께 만들고 있다. 

     

Ⓒgreekcitytimes.com, 2000년 역사의 화이트와인 레치나


우조 와인 양조에 사용된 포도 부산물(껍질과 줄기)로 만든 술이다. 기원은 14세기 아토스 산의 그리스 정교회 수도사가 치포우로에 ‘아니스’* 향을 가미하여 만든 브랜드인데, 알코올 도수 35~50%로 꽤 독한 술이다. 아니스는 우리에게는 ‘치약맛’과 같이 여겨지는 독특한 허브로, 이 아니스를 베이스로 생산자에 따라 고수씨, 정향, 계피 등의 향신료를 넣고 숙성시켜 우조를 만든다. 현재 우조 생산자는 약 300개 정도인데 각자 증류 과정과 향료 등의 제조법을 철저히 비밀로 유지하고 있어 브랜드별로 맛이 천차만별이다. 다만 모든 우조 제조에 최소 30% 이상의 포도 잔류물이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고, 여기에 각자 곡물, 감자 또는 기타 과일 등으로 맛을 보충하고 있다.     

현대적인 우조 증류는 그리스 독립 이후 19세기 초 레스보스 섬을 중심으로 생산이 시작되었고, 1932년부터 표준생산방법인 구리 증류기를 통한 증류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greekcitytimes.com, 그리스의 소주, 우조, 300종이 넘는다.


그리스 정부에서는 2006년 우조Ouzo’에 대한 원산지보호지정(PDO)을 받아 지금은 그리스산이 아니면 우조 이름을 붙일 수 없고, 그리스 이외의 지역에서는 우조를 만들 수 없다(프랑스 샹파뉴 지역산만 샴페인으로 불리는 것과 같다).      


*아니스를 이용한 술은 우조(ouzo)뿐 아니라 터키의 라키(raki), 이탈리아의 삼부카(sambuca), 프랑스의 파스티스(pastis), 그리고 전설의 초록색 술 압생트(Absinthe) 등이 있다.   


        

우조를 홀짝거리며 석양을 바라보는 것 말이요 

    

그리스 히드라 섬에서 집필했다는 대니얼 클라인Daniel Klein의 『철학자처럼 느긋하게 나이 드는 법』(책읽는 수요일)에 나오는 일화.      


한 미국인이 손질하지 않아 열매가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올리브 농장에 앉아 그리스의 전통주 우조 잔을 홀짝이며 석양을 바라보고 있는 노인을 발견한다. 

미국인이 노인에게 올리브 열매를 왜 따지 않느냐고 묻자,

노인은 필요할 때만 딴다고 대답한다.

이에 신선한 올리브로 짜낸 올리브오일을 만들면 좋은 값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자 

노인은 그렇게 번 돈으로 뭘 하느냐고 되묻는다. 

(돈이 많으면)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하는 미국인에게 노인은 이렇게 말한다.

“이를테면, 지금처럼 야외에 앉아서 우조를 홀짝거리며 석양을 바라보는 것 말이요?”(44쪽)      


‘우조’가 그리 낯선 이름이 아닌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그리스 체험 여행기인 『먼 북소리』(문학사상사)나 『비 내리는 그리스에서 불볕천지 터키까지』(문학사상)에 그리스의 대책 없는 태평함을 표현하는 데 꼭 우조가 상징적으로 등장하곤 하기 때문이다. 또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 주인공들의 격정과 일상을 오가는 매개로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레치나와 우조 그리고 산투르 음악…, 책을 다 읽고 나면 우조 한잔 들이키고픈 욕망에 시달리게 만들기 때문인지도.     


우조는 한국의 소주와 같은 존재로, 그리스를 대표하는 전통주이자 서민주로 첫손 꼽힌다. 

여름철이 다가오면 너나 할 것 없이 우조 한잔으로 식사를 시작한다. 얼음이 든 잔에 따르면 뽀오얗게 색을 바꾸며 한 잔의 칵테일로 바뀌는 마법의 술 우조. 


우조가 있는 풍경은, 그리스 하면 떠오르는 하나의 씬으로 작용한다. 노을이 짙게 물든 저녁 무렵,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타베르나에 앉아 얼음을 넣으면 하얗게 소용돌이치는 우조를 나눠마시는 사람들. 매미 소리, 웃음소리, 음악소리, 탁탁대는 주사위 놀이의 빙빙 대며 돌아가는 구슬들…. 계절에 상관없이 이상적인 그리스의 여름 풍경으로 즉시 이동하게 만들어주는 데엔 반드시 우조가 배경으로 있다.        


@greekvillages


   

'심포지엄'의 기원우조는 정신을 만든다     


그리스 속담에 “우조는 정신을 만든다”라는 말이 있다. 그리스 사람들에게 우조를 마신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함께 모여 이야기하고 나누며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매개체이자 문화 그 자체이다. 

심포지엄이란 말이 함께+마시다라는 그리스어(συμπόσιον)에서 유래했듯이이미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그리스인들은 술을 독하지 않게 마시며 물로 희석해 오래도록 즐기며 대화하는 풍습을 가지고 있었다따라서 과음은 비난의 대상이었고, 우리식으로 표현하여 ‘깡소주를 한입에 털어 넣는’ 행위는 그야말로 야만적인 행위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이러한 고대 문화가 오늘날까지 이어와 그리스에서는 지나치게 마시고 비틀대거나 싸우는 사람이 별로 없고, 청소년들이 술을 마시고 사고를 일으키는 일 등은 매우 드문 경우라고 한다.           

다이버 무덤의 프레스코화, 기원전 475년.  손에 든 잔(크라테르) 세 잔이면 한 사람이 마실 적당량으로, 오늘날 와인병이 석 잔씩 두 사람분 750mm가 된 기원이 된다.



우조를 제대로 마시는 법     


우조를 즐기는 것은 그리스의 문화적인 의식으로서 일종의 예술이기도 하고, 라이프스타일이기도 하다. 우조-음식-음악-대화가 하나의 짝을 이루는 그리스 술자리의 특징상 우조를 즐기는 데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우조는 냉장고에 보관하지 않는다. 유리잔에 한두 개의 얼음 조각이나 찬물을 넣어 차갑게 만들어 식전주로 마시거나 칵테일로 만들어 마신다. 물에 탔을 때 뿌연 흰색 액체로 변하는 것은 주원료인 아니스의 특정 성분이 유화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우조 현상, 또는 루쉬(Louche), 루칭(Louching) 현상이라고 한다.      

둘째우조는 술만 단독으로 마시지 않는다. 그리스에서 음식 없이 술만 마시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 언제나 메제(mezze, μεζέ,  작은 접시간식)’라 불리는 음식과 페어링해서 함께 한다(스페인의 타파스와도 같은 개념). 메제로는 올리브, 페타 치즈 샐러드, 빵을 비롯해 소금에 절이거나 숯불에 구운 정어리, 절이거나 말린 멸치, 육즙이 풍부한 문어 숯불구이, 홍합, 가리비를 비롯한 모든 종류의 해산물이 주를 이룬다. 또한 갓 튀긴 가지나 애호박, 피클, 케이퍼도 자주 나오고, 서부 그리스의 명란젓(avgotaraho)이나 고추치즈와 같은 지역명물이 나오기도 한다.      

우조를 마시는 식당을 우쩨리아(ouzeries)라고 한다(라키를 마시는 곳은 라카디카(rakadika), 치포우로를 마시는 곳은 치포우라디카(tsipouradika)). 북쪽 마케도니아 산 우조는 설탕 없이 드라이한 편이고, 남부 우조에는 설탕이 들어 있어 에피타이저 없이 쉽게 마시기도 한다. 격식 없이 편한 자리에서 메제를 먹을 때는 손으로 집어 먹는 것이 가장 좋다.     

셋째흔히 하는 우조의 건배사는 야마스!(Γειά μας!)” 혹은 스틴 이야 사스(Στην υγειά σας!(건강을 위해)”라고 한다. 우조 잔은 일반적으로 작은 편인데(소주잔과 맥주잔 사이), 먼저 앞사람의 잔을 채우고, 새로운 사람이 올 때마다 잔을 채우면서 건배한다. 

모두 다 함께 야사스!     






한국에서 우조를 마실 수 있는 곳  

   

서울에서 우조를 맛볼 수 있는 곳으로는 몇 군데 그리스 음식점이 있다.   

   

노스티모(Nostimo – '맛있다'라는 뜻)_ 

7호선 내방역 8번 출구에 있는 그리스 음식 전문 비스트로. 미국 이주 3세대인 Todd Sample 씨와 한국인 아내가 홈스타일 그리스 음식을 내놓는다. 그리스 와인과 우조를 마실 수 있다. 얼마 전 다녀간 그리스 본토 친구들이 “엄청 맛있다”며 엄지를 치켜세운 집이다.      

Ⓒ 노스티모


그릭조이

전경무 오너셰프가 20년 가까이 운영중인 그리스 음식 전문점. 『그리스 음식문화기행-그릭조이』(모두출판협동조합)라는 책도 펴냈다. 음식이 고루 맛있고 모든 메뉴에 빵과 샐러드가 포함된다. 메뉴판에 우조가 별도 없어 ‘우조 한잔’ 부탁해서 마셔봤다. 예의 박하향과 치약향이 묻어 있는 독주 스타일!      

ⒸJourney Han, 우조와 그릭샐러드, 무사카


니코키친_ 

익선동 옆 서순라길 아래 정도에 있는 한옥 속 그리스 음식점. 그리스인 오너셰프가 그리스 가정식 요리를 내준다. 핫 메제, 콜드 메제 등이 나온다.       

ⒸJourney Han, 한옥집의 그릭 레스토랑


더 그릭_ 

경복궁 옆 삼청로 초입에 있는 그리스 와인 수입사(동일코퍼레이션)에서 운영하는 그리스 음식점. 미리 예약하고 가야 하고, 같은 곳에서 그리스 인문학 강의, 음식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클래스도 진행된다. 수입한 그리스 와인을 종류별로 맛볼 수 있다.                     


ⒸJourney Han, 그리스 관련 인문학강의, 쿠킹 클래스 등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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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사진: https://www.discovergreece.com/travel-ideas/cover-story/ouzo     

*참고: 위키피디아(https://en.wikipedia.org/wiki/Ouzo), 나무위키(https://namu.wiki/w/%EC%9A%B0%EC%A1%B0), 그릭시티타임즈(https://greekcitytimes.com/2022/01/10/ouzo-greeces-famed-drink-2-2/)



https://blog.naver.com/azul24/223138308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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