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들의 여동생을 향한 그리움
사람의 감정은 폭이 참 좁다.
내 감정의 작은 호수에 깊이 잠겨있다보면,
나 이외의 것은 보이지가 않는다.
어두운 호수 안에서, 손에 힘을 풀고
여러 감정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는 시간들.
그러다보면 호수 밖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차리질 못한다.
지난 몇 개월간
남편과 내가 그랬다.
시온이의 부모로서 느끼는
그 상실감, 슬픔, 죄책감의 호수에 깊이 잠겨서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천국에서 시온이를 다시 만나게 되면,
아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34살의 나로 돌아가있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그렇게 내 안에 깊이 잠겨있던 일상 속에
문득, 첫째가 지나가듯 혼잣말 하는 소리를 들었다.
시온이 보고 싶다.
로봇 장난감을 만지작대다가 갑자기 툭 내뱉은 아이의 말이
나는 놀랍기도 하고, 조금은 의아했다.
"온유야, 시온이가 갑자기 생각났어?"
첫째는 짧게 '네'하고 대답하고는 아무렇지 않은 듯 또다시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그때부터 종종,
첫째 아들은 시온이를 향한 그리움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남편과 나, 아들 이렇게 셋이 밥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을 때면
"시온이가 생각나요."
하며 남편과 나의 가슴에 그리움의 돌을 퐁당 던지는 아들.
"시온이가 천국에서 심심할까 봐 걱정돼요."
"시온이랑 놀고 싶다."
"시온이를 왜 다시 못 봐요?"
처음엔 아이의 이런 말들에 어떻게 대답해주어야 하는지 방어적으로 계산만 했다.
그러다가 문득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와 남편만 시온이를 그리워하는 게 아니라, 아들도 많이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걸.
내가 잊었구나. 너도 시온이 오빠였다는 걸.
온유는 어젯밤도 자기 전 내 옆에 누워 이런 말을 꺼냈다.
"엄마, 저는 쪼글쪼글 할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왜? 그럼 안되지."
요즘 아들이 워낙에 좀비나 귀신에 관심이 많은 터라 할아버지가 되고 싶은 소망도 그런 상상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잠깐의 침묵 뒤에 돌아온 아들의 대답.
시온이를 만나고 싶어서요.
아들아.
오빠였던 아들아.
내가 너에게 무슨 대답을 해줄 수 있을까.
그저 너의 그리움에 고개를 끄덕이고, 눈물 진 미소를 지을 뿐이다.
네 말처럼
우리의 인생이 화살처럼 빠르게 흘러 쪼글 쪼글한 모습이 되었을 때,
이 땅에서의 무거운 짐을 놔두고 시온이에게로 훨훨 날아가자.
시온이가 나를 34살의 엄마로 기억하길 바라듯이,
온유도 이다음에 천국에서 시온이를 만나게 되면
6살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되지 않을까.
온유가 앞으로 어떤 20대, 30대 또 그 넘어 어떤 노년을 보내게 될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시온이의 기억 속에 온유는 영원한 6살이니까.
같이 손잡고, 맛있는 걸 먹고, 투닥거리던 영원한 오빠니까.
시온이와 온유가 다시 만나게 되면
눈 오던 날 같이 눈 사람을 만들던 그때 그 모습으로 돌아가게 될지도 몰라.
내가 만들어줬던 크림 파스타를 둘이 서로 먹여주며 맛있게 먹던 그 모습으로 돌아갈지도 몰라.
이불 위에 같이 누워서 깔깔대며 장난치던 그 시절로 돌아가게 될지도 몰라.
그날이 오기까지
네가 시온이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그리워하고,
지금처럼 그 마음을 표현하며 그렇게 살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