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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의 기록자 Nov 01. 2022

인생은 개처럼 단순하개

최근에 힘든 일들이 한꺼번에 몰려왔었다. 육체적으로 피곤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니 물속으로 깊이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별 것 아닌 일에도 예민하게 말을 하게 되고, 소중하게 여겨야 할 가족에게 오히려 더 못나게 굴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고 했지만, 금세 기분이 좋아지지는 않았다.


이토록 예민한 나를 그나마 웃게 해주는 것은 우리 집 반려견이었다. 퇴근 후에 집으로 오면 반갑다고 꼬리를 치는 녀석을 보면 나는 무장해제가 되었다. 제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엉덩이를 흔들어대는가 하면 주인의 손길을 받기 위해 서슴없이 바닥에 드러누워 자신의 배를 다 보여주었다. 그런 녀석을 보고 있으니 반려견에게는 주인이 세상의 전부일 거라는 누군가 말이 기억나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다. 잘해줘야겠다고 다짐을 해보지만 일상에 치여 그렇지 못하는 날이 더 많았다.


이번 주 내내 날씨가 좋을 거라는 말을 들었다. 주말이 지나면 단풍 절정이 끝난다고도 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을 나섰다. 주말 오후, 녀석과 내가 나선 산책길에는 단풍이 만연한 가을을 느낄 수 있었다. 바람이 차가웠지만 햇살은 따스했다.

리드 줄을 잡고 있는 팔이 자꾸만 앞으로 기울었다. 녀석의 짓이었다. 엉덩이를 방실방실 흔들며 자꾸만 제 혼자 앞으로 나아갔다. 같이 가자고 줄을 당겨 보았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그저 가끔 고개를 돌려 주인이 잘 오고 있는지 확인할 뿐이었다. 나는 하는 수없이 빠른 걸음으로 녀석을 뒤 쫓아갔다. 세차게 움직이는 녀석의 꼬리를 보고 있으니 괜스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산책을 하는 내내 녀석은 뭐가 그리 신났는지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코를 킁킁대며 모든 냄새를 맡고, 친구들을 만나면 신나서 뱅글뱅글 돌았다. 그러다 흥분해서 너무 멀리 가버린 녀석의 이름을 부르면 나에게로 쪼르르 달려오기도 했다.


녀석과 나의 삶은 다르겠지만, 가끔은 녀석처럼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싫으면 으르렁 거리고, 좋으면 엉덩이를 흔들며 그렇게 단순하게 사는 삶이어도 되겠다. 복잡한 세상에서 머리 아프게 고민하기보다는 그저 여유롭게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것. 내게는 아직까진 어려운 일이지만, 때로는 녀석의 그런 단순함을 닮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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