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는 너무 착한 것 같아.
연애 초에 내가 남자친구에게 자주 했던 말이다. 지금은 남편이 된 그는 배려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데이트를 하기 위해서 약속을 할 때도 나의 의견을 먼저 물어봐주었다. 나는 그의 마음이 참 예뻤다. 함께 있을 때에도 자신보다는 나를 먼저 생각해 주었다. 자신이 조금 더 희생하는 게 마음 편하다고 말하는 그이었다.
나는 이상형이 딱히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그동안 만났던 남자들을 열거하면 공통점을 찾아볼 수가 없다. 외모도 다 다르고 체형도 그리고 성격도 비슷한 부분이 없었다. 그저 순간의 느낌으로 연애를 했던 것 같다. 그런 내가 남편을 만나면서는 이상형에 대해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착한 사람.
나는 그런 사람들이 좋았다. 화려한 연애 스킬이 없어도 상대방에게서 온기가 느껴지는 것이 좋았다. 따뜻한 사람 곁에 있으면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과거의 연애들은 불같이 뜨거웠던 만큼 이별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나와 함께 하지 않겠다며 돌아서는 등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배신을 많이 당했던 과거가 있어서 그런지 나는 돌아서는 뒷모습이 늘 잊히지 않았다.
남편을 만나면서는 이 사람은 나에게서 돌아서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내 확신이 생기게 되었다. 곁에 있으면 착한 그의 심성이 나에게도 옮겨지는 것 같아서 나도 착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 것은 그의 제일 큰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랑에 빠지면 마법에 걸린다고 했던가. 내가 좋아했던 그 장점은 결혼을 하고 나니 마법에 풀린 듯이 제일 큰 단점이 되어버렸다. 착해서 좋았던 사람이, 착하기 때문에 벌이는 사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는 착하기에 주변의 친한 사람들이 많고, 배려를 잘하는 편이라서 거절을 못할 때도 있었다. 자신의 상황이나 입장이 먼저가 되어야 하는 일에도 남편은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생각했고, 그렇기에 원치 않는 만남이나 부탁들을 들어주는 상황들이 생겼다. 타인에게는 착한 사람이었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착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남편과 나는 내향적인 사람이어서 타인과의 만남이 경우에 따라서 힘이 들 때가 있다. 분명히 상대방이 싫은 것이 아닌데 만나고 나면 왠지 모르게 피곤해지고 기운이 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러한 나의 성향을 잘 알기에 그런 사람들과는 내 에너지가 100% 충전이 되었을 때, 간헐적으로 만남을 하려고 한다. 그런데 남편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먼저이기에 자신의 상황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곤 갔다 와서는 굉장히 피곤해하고 힘들어하는 것이다.
한 번은 남편의 아는 지인을 함께 만남을 하고 온 적이 있다. 상대방은 에너지를 뺏어가는 사람이었고, 우리는 몇 시간의 만남으로 지쳐버려서 오후 내내 침대에 누워 있어야만 했다. 이러한 상황들이 처음에는 짜증이 나고 화가 났지만, 시간이 지나니 오히려 남편이 안쓰러워졌다.
배려하는 마음이 오히려 자신에게 피해를 주고 있기에 나는 남편에게 배려의 브레이크를 걸기로 했다. 관계에 있어서 남편이 무리하는 것 같다 싶으면 나는 지체 없이 STOP을 외쳤고, 남편도 다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었다.
남편의 배려심과 착한 마음이 타인에게는 장점이지만, 스스로에게는 단점이었던 것이다. 앞으로는 타인을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먼저 스스로에게 따뜻하고 착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