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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드라큘라 백작과의 만남 - 3

by Cindy Hwang 황선연


이렇게 하여 박지원과 왈라키아 출신의 드라큘라 백작의 공식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다.


지금 우리가 보기엔 참으로 당연하겠지만 그 당시 조선 사람인 박지원에게는 ‘백작’은 동물이 아니란 사실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는 직접 만나기 전까지 그것이 연경에서 보았던 ‘공작’의 사촌쯤 되는 하얀 새 이겠거니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백작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의 머릿속에 한 기억이 떠올랐다. 창대가 괴물이 되어 돌아온 밤에 그를 잡아간 청나라 관리의 외국인 억양, 그 공기가 많이 섞인 가느다란 쇳소리와 똑같았던 것이다. 지원은 확신했다. 바로 그자였다. 그래서 구면이라 한 것이다. 지금 백작은 청나라 관복이 아닌 자주색 비로드 망토와 검붉은 튜닉을 차려입고 무릎까지 올라오는 검정 부츠를 신고 있었다.


지원이 그에게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가려 하였다. 별안간 백작의 인상이 무섭게 일그러지더니 저리 가라고 손을 휘저으며 진저리를 쳤다.


“가까이 오지 마시오. 냄새가 너무 심하구려. 램프를 드리려는 친절을 베풀었는데 정말 너무 하시오.”


지원은 무슨 뜻인지 몰라 옷을 내려다보다가 마늘 목걸이를 발견했다. 냄새를 풍기는 것이 실례인 것 같아 그것을 벗으려 하자 이안이 그의 손을 확 잡아끌며 말렸다. 백작은 그런 이안을 매우 못마땅하게 쳐다보았다. 대뜸 꾸중을 하려다가 꾹 참는 눈치였다. 수진의 친구가 이렇게까지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고, 또 앞의 백작이란 자도 그리 믿을 만해 보이지 않아 지원은 그대로 목에 걸고 있기로 했다.


그는 백작과 거리를 둔 상태에서 본론을 꺼내었다. 조선의 선비가 가진 당당함과 담대함을 무기 삼아, 사실 좀 많이 떨렸지만 하나도 안 떠는 것처럼 연기하려 노력하였다.


“내 하인 창대를 저리 만드셨다니, 다시 원래대로 돌려주십시오. 그리고 데리고 가신 나머지 두 명도 원래 모습으로 바꾸어놓으시오!”


“글쎄, 하도 오랜만에 인간의 피 맛을 봐서 그만, 자제력을 잃어 너무 많이 빨았소. 근데 어떡하지? 이미 저리 된 이상 나도 어쩔 수가 없소.”


백작이 마늘 냄새를 피하기 위해 세 걸음 정도 뒤로 물러선 후 한쪽 입술 끝에 조롱을 내건 채 대답했다. 말할 때의 그의 입술은 거의 벌린 듯 만듯했다. 그 사이로 흘러나온 말소리도 공기가 반이나 섞여 음량이 작고 희미하였다. 그래서 지원은 귀를 쫑긋 세워야 했다. 그러다 그의 비꼬는 어조와 삐딱한 표정에서 풍기는 무례함에 그만 화가 벌컥 났다. 떨리는 공포조차 잊은 채 지원이 소리를 꽥 지르고 말았다.


“그럼 저대로 그냥 두실 겁니까? 저게 괴물이지 사람입니까? 저리 만들어놓고 그리 무책임하게 구신다니 대체 양심이 있긴 한 겁니까? 저럴 바에야 차라리 죽이는 게 낫겠습니다. 다시 원래대로 되돌려놓으시오, 어서요!”


백작의 올라간 입술 끝에서 헛웃음이 내뱉어졌다. 감히 자신에게 대들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수의처럼 소매가 늘어진 괴상한 옷에 검은 대야 같은 걸 머리에 뒤집어쓴 동양인이 감히 누구 앞에서.


순간 그의 눈앞으로 화려했던 과거가 떠올랐다. 위대한 군사를 보유한 저 오스만튀르크의 메머드 2세도 자신 앞에서 벌벌 떨었었는데 말이다. 아니 내가 죽은 후에는 더욱 떨었겠지. 옛날 같으면 바로 저놈 목을 물어뜯었겠지만 지금 꼬마가 보는 앞에서 그럴 수도 없고. 게다가 하필 제일 싫어하는 마늘이 한가득 그 목에 걸려 있었다.


백작의 붉은 눈에 잔인함이 떠오르고 비웃음 어린 삐딱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히죽거리는 어조로 답했다.


“이거 죄송해서 어쩌나. 죽이라면 지금이라도 바로 죽일까요? 그건 그리 어렵지 않소. 그리고 잘못 아는 점이 있는데 난 사람이 아니오. 그러니 양심 같은 쓰레기는 나에게 절대 기대하지 말라고.”


지원은 세상에 이런 뻔뻔한 작자가 있나 싶었다. 주먹이라도 한 대 날릴까 싶었지만 상대의 붉은 눈이 어둠 속에서 이글거리고 그의 발이 허공으로 천천히 떠오르자 순간 움찔했다. 뒷감당할 대책 없이 사람이 아닌 자에게 덤비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안 역시 그의 소맷자락을 잡아당기며 이제 그만하라는 신호를 아까부터 계속 보내왔다. 그는 심호흡을 여러 번 한 후 가까스로 분노를 억눌렀다. 다시 처음의 점잖은 말씨로 돌아와 한 자 한 자 되씹으며 물었다.


“그럼 대체 저들을 어떡하실 생각이십니까?”


백작은 잠시 허공을 쳐다보았다. 그의 두 눈에서 잔인함과 이기적인 빛이 마구 표출되었다. 그가 망토를 손으로 털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내가 데리고 갈 거요. 이젠 나의 하인들이니까. 만약 원치 않으면 그냥 목숨을 끊어드리지. 끊을까요? 원하는 게 그거요?”


“아니 이런 사람이, 아니 이런 백작이 있나, 제가 원하는 건 그들을 원래대로 되돌려놓는 거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젠 죽이겠다고요? 말씀 다 하셨습니까?”


화가 난 지원이 빠른 걸음으로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점프하여 허공에 떠 있는 그의 손에서 램프를 확 낚아채었다. 순식간에 너무 분노가 치솟아 더 이상 그가 무섭거나 두렵지 않았다. 백작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이렇게 자신 앞에서 스스럼없이 당당하게 행동을 한 인간은 난생처음이다. 너무나도 큰 충격에 바로 코앞에서 풍기는 마늘 냄새도 거의 개의치 않는 듯했다. 그러나 곧 거부하려는 몸의 생리적 반응을 깨달아 땅으로 내려온 직후 몇 발작 뒤로 물러섰다.


지원은 아까 이안이 보라던 구멍으로 다가가 안을 들여다보았다. 컴컴한 어둠 속에서 몇몇 움직임과 쿵쿵거림이 포착되었다. 올려 든 램프의 불빛이 그것들을 향해 옮겨졌다. 그의 눈이 앞으로 고정되었다. 빛 안에 처음 들어온 한 남자가, 아니 짐승인가? 아무튼 사람 비슷해 보이는 무언가가 허리를 잔뜩 구부린 채 짚을 깐 바닥 위를 네발로, 아니 두 손과 두 발로 기어다녔다. 그런데 그의 움직임이 얼마나 빠르고 징그러운지 마치 거미가 스르륵 지나다니는 것만 같았다. 그의 꺾이어 달랑거리는 고개가 옆으로 돌려지는데 이런, 창대였다.


지원이 크게 경악하여 입이 저절로 벌어지고 날카로운 비명이 새어 나왔다. 다시 정신을 차린 후 램프를 옆으로 들어 비추었다. 군관과 하인이 서관에서 깨어났을 때처럼 두 팔을 앞으로 쭉 내민 채 외양간 뒤쪽 제자리에서 콩콩 뛰고 있었다. 그러다 군관의 시선이 지원을 발견하고는 괴물같이 끔찍한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그가 그를 향해 몸을 획 돌려 뛰어오려고 했다. 그때였다. 앞의 창대가 마치 뼈가 없는 생물처럼 온몸을 흐느적거려 허리를 펴고 벌떡 일어나더니 구멍을 향해 덥석 거미처럼 덮쳐왔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지원은 심장이 철렁하여 자지러지는 소리를 내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엉덩방아를 찧은 그의 손에서 떨어진 램프가 땅에 처박혔지만 그 안의 초는 꺼지지 않았다. 그 빛이 여전히 구멍을 살며시 비추었다. 살기와 허기로 터질 것 같이 이글거리는 창대의 충혈된 눈동자가 그를 내려다 노려보고 있었다.


그제야 지원은 확실히 알아차렸다. 저것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리고 원래대로 되돌려놓기엔 이미 너무 늦었다는 걸.




지원은 어떻게 숙소로 오게 되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겨우 정신을 차려보니 서관의 대문 앞이었다. 그의 손에는 파란 한지로 싼 작은 상자가 들려 있었다. 겉에 수진의 이름이 한글로 적혀 있었다. 그는 문을 열어준 그녀에게 그것을 말없이 건넨 후 방으로 직행하였다. 래원과 변계함이 그를 기다리며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술에 취한 듯 술상 옆에 쓰러져 자고 있었다.


그는 구석에 요를 피고 옷을 입은 채 그대로 그 위에 쓰러졌다. 정상적이고 상식적으로 흘러가던 그의 전 일생을 통 털어 오늘만큼 힘들고 기이한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난 적은 없었다. 정신과 몸이 완전히 지치고 기진맥진하여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조차 없었다. 의주성의 구룡정(九龍亭) 앞에서 압록강을 건넌 이후 처음으로 그는 단 한 번도 깨지 않은 채 아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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