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세 스타트업 대표 (남)
[스타트업 대표의 소셜 커넥팅앱 사용후기]
#2. 블랙스완에서 만난 사람들 _ 35세 스타트업 대표(남)
사업을 하다보면 결국 가장 나를 괴롭히는 것은 두려움이다.
모든 결정은 회사의 시간을 움직이고 그 시간은 돈과 사람을 태운다.
리소스는 제한적이다.
일정 수준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리소스가 말라버리면, 돈이 마르거나 팀이 지쳐버리면
회사의 결론은 뻔하다.
하지만 언제나 두려움을 극복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의사결정의 지연이 제일 끔찍하다. 돈과 사람을 의미없는 시간에 태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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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물에 빠졌던 사람이, 물을 무서워하게 되는 것처럼
위기 상황을 겪은 이후 나는 겁이 많아졌다.
겁이 많아질때마다,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버틸까 궁금했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블랙스완을 켰다.
이틀전이었나.. 스타트업 대표님 명함 하나를 보았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명함 목록에 스타트업 대표의 명함이 들어와 있었다.
밝은 웃음에 깔끔한 인상, 담백한 자기 소개, 최근 펀딩을 마친 대표님이었다.
명함 교환을 했고, 생각보다 쉽게 '남남 매칭은 이뤄졌다.
그 대표님의 회사도 역삼에 있었고, 우리는 단골 술집이 같았다.
거기서 만났다.
익숙한 안주에 낯선 사람과 대화를 시작했다.
어색함은 없었다.
스타트업 대표와 대표가 사석에서 맥주한잔을 목적없이 마시면, 서로를 측은해하는 분위기와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는 눈빛 교환이 이뤄진다.
이야기를 시작했다. 같은 전쟁터에 참전했던 퇴역 군인들 같은 공감대가 이런걸까..
사실 워낙 좋은 학교에 비싸게 찍은 것 같은 프로필 사진을 가지고 있어서,
회사도 투자를 꽤 받은 것 같아서.. 나는 좀 이것저것 물어볼 참이었다.
[앱 서비스]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았다.
앱 서비스의 마케팅은 무엇인지, 현재 상황에서 개발 언어는 어떤걸 쓰면 좋을지
하이브리드로 갈지 웹으로 갈지 이미 만들어둔 네이티브를 쓸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상대방이 먼저 물었다.
"대표님 마케팅은 어떻게 해야되요?"
나는 껄껄 웃었다. 나도 그걸 물어보려고 했는데..
"저도 그걸 물어보려고 했는데" 하니
"아이 대표님네 회사가 훨씬 잘되잖아요"
나는 또 껄껄 웃었다.
"대표님네 회사가 더 잘되는 것 같은데?, 저흰 진짜 요새 고전 중이에요"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결국은 얼마나 힘들었는지, 어떻게 극복했는지, 요새는 어떻게 고민이 있고 어떻게 극복하려 하는지
힘들어 죽겠어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두 시간이 훌쩍 지났고 이번 자리에서도 자연스럽게 맥주가 소주가 되었다.
지난 술자리와는 다르게 '남남'이여서인지 많이도 먹었다.
나는 사실, 실용적인 조언들을 들은 후에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었다.
"대표님은 의사결정 내릴 때 안 두려우세요?"
"어떻게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과감할 때는 과감해질 수 있는거에요?"
하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그냥 같이 웃고, 농담을 던지고, 각자의 제품의 좋은 가능성들을 주고 받았다.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일을 하며 즐거웠던 일화, 힘들었던 일화들로 술안주를 더했다.
다들 나랑 똑같이 살고 있다는 위안을 얻었다.
그 대표님도 나랑 똑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똑같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똑같은 답답함을 가지고 있을 것을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대표님은 붉어진 얼굴로 크게 웃었다. 프로필 사진에서의 웃음과는 다른 느낌의 웃음이었다.
생각보다 술을 빠르게 많이 먹어선지, 그냥 웃고 떠들다가 집에 와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어제의 일을 생각해봤다.
"우리 힘내자구요! 용기!" 헤어질 때 술에 취한 대표님이 호탕하게 택시를 타며 뱉은 말이 제일 기억에 남았다.
정말 재미있는 액션영화 한편을 기분 좋게 보고 치킨을 먹은 것 같은 후련한 자리었다.
두려움을 해소하고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생각을 문득했다.
그냥 용기를 내는 것.
정말 단순하고 어려운 그 방법만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 대표님도 용기를 내며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제는 용기 있는 나를 잠시 내려놓고 편안하게 맥주를 마시셨던 것 같다.
용기를 가져야지 다짐하며 출근했다.
그 날은 오랜만에 머리에 기름칠을 하고, 정장을 입고 출근했다.
그리고 성큼 성큼 걸었다.
용기가 좀 생기는 출근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