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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의 서랍 Dec 23. 2020

été 19. 새우 파티

낭만시월드

2019년 8월
여름휴가 in 시월드



@Concarneau ㅣ콩카르노


나는 이상하게 바닷가 출신인데도 해산물과 생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막 잡은 물고기의 회를 떠서 초장에 찍어 먹고 황홀한 표정을 짓는 TV 속 사람들의 기분을 나도 느껴보고 싶은데, 느끼질 못한다. 힘든 하루를 마치고 차가운 맥주 한 잔을 들이켜며 "캬~'소리와 함께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해보고 싶은데, 나는 술도 맛이 없다. 회랑 술을 즐길 수만 있다면, 왠지 내 인생이 두 배는 더 드라마틱하고 재밌어 보일 것 같은데... 아쉽다.


반면 바닷가 출신인 나의 프렌치 남편은 나와 반대로 회를 보면 바보 미소가 줄줄 샌다. 광어를 한 마리 잡아서 회를 떠주면 나는 3-4점, 나머지는 남편이 다 먹는다. 프랑스는 회를 먹는 문화가 없는데도... 남편은 꿈틀거리는 산 낙지 탕탕이만 빼고 처음부터 다 잘 먹었다. 그래서 쉬는 날만 되면 바닷가 친정에 가자고 졸랐었다, 친정에서 주는 회와 서울에서 사 먹는 회는 급이 다르다나 뭐라나.


@콩가르노 대형마트의 수산물 코너. 싱싱~



결혼하고 알게 되었는데, 남편은 해산물 중에서도 새우랑 게를 심하게 좋아한다. 십여 년 전 시부모님 댁에서 상견례하던 날, 새우를 종류별로 테이블 가득 쌓아놓고 기다리고 계셨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네. 이번에도 우리의 방문에 아버님은 새우를 사러 가자고 하셨다. 생각해 보니 남편은 친정에서도 그리고 시댁에서도 푸짐하게 잘 얻어먹고 산다. 나처럼 '아무거나'가 인생 메뉴인 사람과 다르게, 좋아하는 것이 분명한 사람이 대접도 받고 사는 것 같다.


@콩가르노 대형마트의 수산물 코너. 대기표를 뽑고 기다려서 사는 시스템.



마트의 새우는 흔들어 깨우면 다시 일어나 펄떡거릴 것처럼 싱싱했다. 대신 생각보다 비쌌던 게는 어느 수집가의 벽에 걸려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특이한 딱지를 입고 있었지만, 삶아진 속살 맛은 너무나 평범했다.


조리하기 전, 고객님께 상품 소개 시간. 그리고 가차 없이 뜨거운 허브탕으로 슝~



요리를 예술로 승화시킨 프랑스인들은 모두 평소에 요리를 즐기는 줄 알았다. 그런데 시부모님은 주로 반조리 식품을 사서 드시거나 조리가 매우 쉽고 단순한 음식을 해서 드시는 편이었다. 소중한 아들 가족이 2년 만에 집에 와도 그 패턴을 유지하신다. 사위가 온다고 하면 광어랑 우럭이랑 손에 잡히는 대로 모두 회로 떠서 상다리 부러지게 차리는 친정 분위기랑은 아주 다르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대접받는 사람 입장에서 부담이 없다. 설거지도 단출해서 두 분이서 사이좋게 싱크대에 손을 담그고 계셔도 며느리의 마음은 편하다. 지금은 한식을 부르짖는 딸아이 때문에 매끼 취미에도 없는 요리를 하느라 너무 힘들지만, 나중에 사위가 놀러 오면 나도 우리 시부모님처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파떼를 얹은 식전 바게트. 프랑스니까요.
(좌) 본 요리 '새우 그리고 새우'   (우) 홈메이드 마요네즈



그래도 '남편이 좋아하는' 새우는 시어머님의 특제 홈메이드 마요네즈와 함께 먹으면 참 맛있다. 계란과 오일, 머스터드 등을 넣고 활기차게 저으면 완성되는데, 너무 맛있어서 새우 반 마요네즈 반 먹게 된다. 시댁에만 오면 그렇게 일 년 치 새우랑 마요네즈를 다 먹고 가는 기분이 든다.


(좌) 무늬만 특별한 평범 속살 게   (우) 잡아먹는 느낌이라며 눈 감은 따님,  그러나 잘 먹음.



프랑스 아이지만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탓인지 입맛이 완전히 한국 토종인 딸아이. 다른 집 아이들은 피자 시켜준다고 하면 환호할 것 같은데, 우리 집 따느님은 울상을 짓고 밥과 국을 달라고 한다. 어렸을 때 햄버거랑 피자는 몸에 안 좋다고 세뇌 교육을 너무 세게 한 탓일까. 내가 내 무덤을 팠구나... 고추장 들어간 얼큰한 된장찌개를 끓여주면, 7살 아이 얼굴에 행복 가득한 미소가 퍼진다. 남편이 광어회를 보며 짓는 미소랑 같은 미소... 고추장이 들어갔는지 꼭 물어서 확인하고, 매번 리필을 외치는 내 딸. 그래서 2주 이상 휴가가 길어지면 음식 때문에 좀 고생을 하게 된다. 아이는 새우 찔끔, 꽃게 찔끔 먹고는 입맛이 없다며 포크를 내려놓았다.


어머님의 결혼 피로연에 쓰셨다는 접시와 컵



어김없이 돌아오는 프랑스의 후식 타임. 프랑스 사람들은 유난히 달달한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내 프랑스 남자 남편은 배가 터지도록 밥을 먹어도 마지막에 달콤한 것을 꼭 먹으며 식사를 마무리한다. 한인 식당의 메뉴판에도 커피숍 못지않은 다양한 후식 메뉴들이 있고, 주변 테이블을 둘러보면 칼로리 폭탄을 맞은 거대한 후식을 즐기는 프랑스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식혜 같은 입가심 정도의 간단한 후식으로 마무리하는 한국과 매우 다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프랑스에는 뚱뚱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왜 그럴까?


아버님이 예스럽고 단아한 컵과 접시에 커피와 케이크를 내오셨다. 아주아주 옛날, 두 분 결혼식 피로연 때 사용한 그릇이란다. 그 옛날에는 대여 개념이 없었는지, 거실의 우람한 그릇장에는 같은 접시와 컵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내일 바로 식당을 열어도 될 만큼 많다. 내가 프랑스에서 결혼식을 올렸다면 아마도 피로연에서 다시 한번 열 일 했을 그릇들.(feat. 나는 한국에서만 결혼식을 올렸다) 내 취향과는 좀 거리가 있는 그릇들이지만, 그 안에 담긴 케이크와 커피는 정말 맛있다. 내가 먹는 커피와 같은 브랜드인데도, 이상하게 시부모님이 내려주시는 커피가 더 맛이 좋다. 남이 내려주는 커피라서 맛있는 걸까.


남편 가족의 패밀리 네임이 붙은 소박한 골목길



내일은 브르타뉴의 번화가라고 할 수 있는 '캥페르(Quimper)'의 도자기 박물관에 가보기로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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