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여름휴가 in 시월드
프랑스에 온 뒤로 나는 없던 그릇 욕심이 생겼다. 평범한 쇼핑몰에 가도 유럽의 여러 나라의 브랜드 그릇들을 쉽게 구경하고 살 수 있다는, 다소 촌티가 폴폴 나는 기쁨을 누리게 된 것이다.
프랑스 북서부에 위치한 나의 낭만시월드도 도자기 그릇으로 유명한 곳이다. 32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 지역의 도자기는 현대에 와서도 전통을 지키며 대부분 수작업으로 만든다고 한다. 그래서 가격이 조금 사악한 편이다. 프랑스에 살지만 시댁에 자주 올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온 김에 구경을 하기로 했다.
3년 전 한국에서 살 때, 가평에 있는 쁘띠프랑스에 놀러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만난 캥페르의 전통 도자기를 남편이 딱 알아보고서 반가워했던 기억이 난다. 도자기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 전통 도자기 문양이 다 거기서 거기인지라... '남편이 어떻게 알아봤을까' 하고 오히려 신기해했었는데, 이번에 다시 보니 캥페르 도자기만의 뚜렷한 색채와 스타일이 보인다.
현대에 와서 색을 더 다양하게 쓰고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빨강 파랑 노랑 녹색을 가지고 자연의 식물과 남녀를 그리고 있다. 얼핏 보면 그냥 평범한 꽃무늬로 보일 수도 있지만, 온화한 느낌의 색감과 둥글둥글한 디자인에 묘하게 마음이 편해진다고 할까. 게다가 도공이 손으로 직접 그린 후 전통 가마에서 굽기 때문에 모든 그릇의 꽃잎과 풀잎의 모양이 달라서 유니크한 가치가 더하는 듯하다.
이 기회에 캥페르 도자기의 역사에 대해 한 번 알아볼까 하고 구글링을 했는데, 도자기 기업의 복잡한 가정사에 얽힌 히스토리가 우리나라 대기업의 지배 구조만큼이나 복잡하여 이해하는 것을 포기해버렸다. 그냥 가슴으로 느끼는 것만 하기로.
판매 공간은 전형적인 프랑스 집의 내부처럼 울퉁불퉁 돌 벽에 서까래와 같은 목조 구조가 결합된 공간이었다. 돌과 나무, 서로 다른 두 개의 질감이 만나서 예스러운 느낌을 내고 있었다. 성수기임에도 방문객은 그다지 많지 않았는데, 아마도 대부분은 길 건너에 있는 도자기 박물관에 가는 모양이다. 나는 어차피 프랑스어도 못 읽고 그릇도 살 생각이었기 때문에 숍으로 갔다.
캥페르에서 태어나고 자란 시아버님은 그릇들의 가격을 보더니 혀를 끌끌 차셨다. 실제로 살고 있는 주민이 지역 특산품의 거품 가격을 볼 때 나오는 흔한 반응일 테다. 시아버님은 미간에 주름을 힘껏 잡으며, 이 가격에 아무것도 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시아버님의 의견을 존중하여 우리는 돼지 한 마리만 샀다. 주먹 크기의 돼지 한 마리가 45유로.
시어머님은 내가 그릇에 관심이 많은 줄은 몰랐다며, 집에 돌아오자마자 본인이 간직해오던 오래된 그릇들을 내어 주셨다. 금방 도자기 숍에서 봤던 그릇들이었다. 다만 음식과 함께 세월의 흐름도 담았을 그릇들답게 제대로 빈티지였다. 시부모님께는 낡은 그릇일 수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보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나의 폭발적인 반응을 보시더니 이번엔 아버님이 지하실로 내려가셔서 장식용 그릇들도 막 내오셨다. 물론 우리 집에 와서도 그릇장 안에서 나오지 않는 아이들이지만, 언젠가 내 집이 생기면 벽에 제대로 장식해보리라 마음먹었다. 어머님, 아버님, 감사합니다.
시아버님의 당부가 있어서 돼지 한 마리만 사들고 숍을 나왔지만, 내 머릿속에는 수면 위에 뜬 수제비 마냥, 사지 못한 다른 그릇들이 자꾸 떠올랐다. 현대적인 감각으로 만든 예쁜 도자기도 좀 사고 싶었고, 한국으로 갔을 때 가족에게 선물할 그릇들도 좀 사고 싶었다. 남편의 마음도 나와 같았다. 우리는 다음 날 아이를 잠시 시부모님께 맡겨두고 시내 구경을 핑계로 도자기 숍에 다시 가서 사고 싶었던 그릇들을 더 샀다. 예산을 미리 정하고 사지 않았다면 우리의 여행 비용이 여기에서 다 사라질 뻔했다.
날씨가 좋아서 내친김에 캥페르 시내도 돌아보기로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