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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Nov 09. 2020

안녕 '나'야

내가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지만, 그래도 우리 잘 지내보자.

부모님 품에서 호의호식하며 지내다 처음으로 그 품에서 완전히 벗어나 강남 직장인들 틈에 몸을 맡긴 지 1년. 비가 그친 퇴근길에 대로변을 거닐다가도 손에 쥔 우산으로 멋지게 투창해보고 싶은 충동에 자꾸만 휩싸였다. 주말 내내 좁다란 창만을 바라보고 누워서는 저 밖으로 뛰어내릴 때 다리부터 내놔야 하나 머리부터 내놔도 되나 고민했다. 핸드폰을 냉장고에 안에 넣어두고, 리모컨을 찬장에 놓아두고 몇 시간 동안 찾아 헤매는 빈도가 늘어갔다. 수면유도제를 여러 번 바꿔도 새벽 4시에 기절하듯 잠들고 동이 트는 7시면 눈이 저절로 떠지는 일상을 이어갔다.


그렇게 기억력과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사이 무기력감이 온몸을 지배하면서 체중은 18kg 늘었다. 3일마다 하던 집 안 청소를 3주 만에 하게 되었다가 문득 구석에서 체중계를 발견한 게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무심결에 몸을 올리고 앞자리가 두 계단이나 상승해있는 결과를 마주했을 때 내 머리를 보호하던 유리 상자가 요란하게 부서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지금 이상하다고. 30년 가까이 인생을 살면서 처음으로 익숙지 않은 나를 마주한 순간이었다.


언제부터 나에게 홀로 사는 집은 집이 아니고, 침대에서 취하는 휴식은 휴식이 아니고, 겨우 억누르고 있는 나쁜 생각들이 아무렇지 않은 생각이 된 건지 되짚어 보기 시작했다. 대충 6개월, 증세를 하나하나 따지다 보니 그보다 더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주변에선 내가 우울감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자각하기 전에도, 하고 난 후에도 나는 여전히 회사에서 동료들과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고, 웃으며 함께 점심을 먹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그래서 스스로 전문적인 상담이 필요한 상태가 맞는지 한참을 고민했다.


원인이 뭘까. 당장 회사 생활만 떠올랐다. 업무 강도가 높지는 않았지만 본 업무와 다른 업무들을 맡으면서 따라온 실적에 대한 압박이 나를 짓누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존감을 계속해서 갉아먹는 업무 메일 속 기괴한 문장들. 매주 업무 보고를 해야 하는 금요일 아침은 여러 충동이 가장 심하게 몰아치는 날이었다. 팀원들과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퇴근해서도 월요일이면 어떤 답장이 와있을지 두려워하며 주말을 침대에 가만 누워 매번 뜬눈으로 지새웠다. 두통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웃룩을 켜는 상상은 곧바로 뇌를 아주 세게 움켜쥐는 듯한 느낌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상상은 내 의지에 의하지 않아도 발작처럼 떠오르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석 달간 고민하다 사직서를 썼다. 퇴직 의사를 전달하고 절차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까지 매일 밤 고통스러워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2년, 3년 잘만 다니는데 나는 1년 겨우 넘겼다.'라는 명제를 만들고 비참함과 자괴감을 잔뜩 담은 관을 참 열심히도 짜고 있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사직서가 수리된 날 나는 부모님과 전화를 하며 결국 통곡했다. 못난 딸이라 남들만큼 버티지 못해 미안하다, 울음과 함께 흩어지듯 내뱉던 단어들을 모아 다시 정리해보면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그리고 돌아온 부모님의 '우리가 아직 젊으니 괜찮다'라는 말은 등을 토닥여주다가도 이내 온몸을 굳세게 짓누르는 쇠닻처럼 느껴졌다.


"모든 생각이, 그리고 그걸 표현하는 말들이 오롯이 자신만을 공격하고 있는 것 같아요."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말을 쇠닻처럼 여기게 된 것도 이 문장의 연장선이었다. 가족에게 털어놓고 나니 절친한 사람들에게 털어놓는 건 한결 쉬웠다. 그리고 늘어난 주변의 조언에 따라 상담을 받기로 결심했다. 상담 전화를 처음 진행했을 때 그동안 느낀, 그리고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는 낯선 나의 모습을 열심히 늘어놓았다. 그리고 상담사는 차분한 음성으로 바로 그 문장과 함께 내 상태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조곤조곤한 상담사의 목소리를 통해 나는 내가 모르는 나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참으로 기이한 느낌이었다. 나라는 사람을 포털에 검색하자 나오는 활자 정보를 묵묵히 읽고 머리에 담는 행위와도 같았다. 지금 쓰고 있는 글은 어쩌면 그러한 정보를 취합하고 이해한 후 요약하는 과제와 같은 글이다. 세상에서 가장 나를 잘 알고 이해하는 건 나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가장 알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밝게 웃으며 대화를 하는 나와 당장 세상에서 존재를 지워버리고 싶은 내가 한 시간에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 얼마나 허술한 가면을 쓰고 있었는지, 진짜 내 얼굴이 무엇인지 깨달으니 벗을 용기는 저절로 따라왔다.


인복이 후해 좋은 사람을 곁에 많이 둔 덕분인지 다행히 몇 차례의 상담만으로도 개선 방안을 실행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물론 여전히 갑작스레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뇌가 찢어지는 듯한 두통에 시달리는 타이밍이 오기도 하지만 그만큼 햇볕을 더 자주 쐬고, 중고 서점에 더 자주 가고, 딸기 음료를 더 자주 마시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 '잘 자고 일어났네.' 칭찬해주기로 했다.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먼저 잘 보내기로 했다. 매일 저녁 전화해 '밥은 먹었니?' '뿌듯한 하루였니?' 물어보는 부모님의 목소리를 구원처럼 여기기로 했다.


나는 요즘 이렇게 나를 존중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법을 실천하고 있다. [낯선 '나'야 안녕? 반가워. 우리 잘 지낸 보람이 있다. 참 멋진 사람이 되었네!] 훗날 인생을 한편의 편지글에 담는다면 지금 이 시기를 이렇게 쓸 수 있기를 바라며. 누구나 겪지만, 누구에게나 처음이어서 어려울 또 하나의 성장통을 겪는 나를 열심히 칭찬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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