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연 Nov 29. 2021

날짜 미상의 일기

2016년과 2018년과 2021년의 어느 날들.

1. 

눈물이 자꾸만 모르는 새 나온다. 요즘의 나는 그렇다. 눈가가 간지러워지는 순간이 오면 이유를 알 것 같다가도 눈꼬리 안에서 물방울이 툭 터져 흘러 넘 칠 즈음엔 그 모든 걸 잊어버린다. 그리고 심장이 아주 반듯한 돌 하나를 곱게 떠받치고 있는 것처럼 무거워진다. 영 내려놓지 못할 짐 하나를 억지로 떠안은 것만 같아 불편한 느낌도 덩달아 밀려온다.


2.

생일을 축하하고 위로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 좋아한다. 혹자가 얘기하는 나머지 364일(혹은 365일)도 똑같이 소중한 하루의 연속이라는, 남다른 가치관이 있기 때문은 아니다. 그냥 조용한 정적 속에 나를 깊숙이 밀어두는 것을 좋아한다. 안정감이 생긴다. 당연히 기억도 나지 않는 엄마 뱃속을 그리워하는 것도 아니다. 연말이 되면 올해 내 생일은 어떻게 보냈었는지 가장 먼저 떠올려본다. 올해도 만족스럽게 매우 조용히 지나갔다. 무더운 여름 날씨에 지치지 않아도 될 만큼 매우 조용히 지나갔다. 나는 그것이 만족스러운 그냥 그런 사람이다.


3.

'그냥'이란 단어가 얼마나 편리하면서도 불친절하면서도 적대감을 드러내는 단어인지 깨달았다. 울적한 감정에 사로잡힐 때면 나는 나를 향하는 그 어떠한 질문도 쉬이 받아들이지 못한다. 엄마가 묻는 "배고프지 않니?", "잠자리가 춥진 않니?"라는 사소한 질문도 견디기가 힘들다. 그것이 의견이 아닌 사실을 묻는 것일지라도 내 생각과 판단을 궁금해하는 목소리가 많이 무섭다. 마음이 피곤하면 뇌가 정지하는 것만 같다.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나이 서른에 그렇게 물음표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됐다.


4.

언제 어디서든 완전한 내 편은 없다. 내가 나를 1순위로 생각하지 않으니 당연하다. 그러니 나부터 나를 챙겨야 한다. 나라도 나만 생각해야 한다. 쉽게 바꿀 수 없지만 노력하라니 노력해야 한다. 이제 그만 이 머리 안에 내가 아닌 무언가를 그만 담고 싶다. 그만 생각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도시 입문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