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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Sep 22. 2020

도시 입문자

오늘의 날씨는 흐림이다. 눈을 뜨자마자 마주한 도시의 흐림은 다정함이라곤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 회색빛 도시를 배경 삼아 창문 한가득 뒤덮은 회색빛 하늘. 오전에 한 잔, 오후에 한 잔. 커피를 두 번은 마셔야 버티는 날씨다.


비 내리는 가을날. 소매가 긴 셔츠를 입으며 마지막으로 우산을 썼던 날을 떠올려보려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장마가 끝난 후 길고 긴 여름을 지나 오랜만에 만난 비. 곱게 접힌 노란 우산을 들고 현관문을 여는 순간 코끝을 정중하게 건드리는 냄새. 도시를 적신 빗물 냄새는 들뜬 적 없는 마음을 바닥까지 끌어내린다. 정중하지만 다정함은 없는 매너를 고고하게 뽐내는 냄새. 기분이 나쁘진 않다. 정중한 모습에 기분 나쁠 이유는 없지. 그저 위축될 뿐이다.


내가 사는 오피스텔에는 총 3대의 엘리베이터가 있다. 위아래로 바쁘게 움직이는 엘리베이터를 4분 정도 기다린다. 첫 번째 엘리베이터가 먼저 도착하고 곧이어 두 번째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일부러 텅 빈 두 번째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문이 닫히자마자 1층까지 내려가는 건 1분 남짓 걸린다. 경비원 분과 눈인사를 나누고 유리문을 나섰다. 건물 안에서 느꼈던 것과 다를 바 없는 비 냄새가 온몸을 감쌌다. 우산을 펼쳐 노란색 하늘을 만들었다. 회색빛과 노란빛이 뒤섞이면 버릇처럼 머리가 아파온다.


“보고 싶다.”


습관적으로 내뱉는 말이다. 주어는 궁금하지 않다. 그저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감정을 아직 갖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사회성이 존재한다는 증거이지 않을까? 증명이 없는 삶은 불안해서 그렇게 치부한다. 이렇듯 삶은 어느새 말도 안 되는 이론과 증명들로 점철됐다. 이해하기 어려운 생각들이 몸 곳곳을 지배한다. 노란색 하늘 아래 걷고 있는 발만 정상적으로 움직일 뿐이다.


평범한 하루의 시작이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의 시작이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의 파란빛이 이 어설픈 노란빛을 침범하기 전까지는.


“보고 싶었어요.”


이상하게도 그에게선 회색빛 냄새가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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