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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샌코 Dec 14. 2022

윤이훈 尹異勳

나는 아버지라는 글자들의 무게를 재어본 일이 없다.


시대를 살아온 수많은 아버지들이 그러하였듯 나에게도 아버지라는 지위는 느닷없이 찾아왔다. 그래서 나의 아버지가 나를 낳고 어떤 감정이었을지 짐작이 가질 않는다.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아버지를 낳고도 어떤 감정이었을지 짐작이 가질 않는다. 나와 꼭 닮은 놈이 어미의 젖을 물고 빨려고 달겨드는 그 광경을 보고서 어떠한 감정을 느껴야 할지 나는 잘 모른다. 다만, 이 밤톨 같은 것이 내지르는 맹렬한 울음소리가 사방을 붉히고 또 끓게 했고, 그러면서 사라진 아버지들의 관계성이 기어코 복원됐고, 거기서 나온 그 사내들의 질긴 동질감이 내가 느닷없이 아버지가 되어서야 느낀 최초의 감정이었다.


이 끓는 것은 나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들에게서 세대마다 쌓아온 최초의 동질감들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나의 아버지들이 쌓고 쌓아온 이 끓는 것들을 한꺼번에 안았다. 그렇다면 몸속 깊숙한 곳에서 펄펄 끓는 것들이 아마도 아버지라는 글자의 무게를 방증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네 이름에 시대를 지나온 나의 아버지들의 끓는 것들을 새겨줄 것이다. 잔뜩 달궈진 네 쇳물 같은 몸뚱이가 다 자라서, 차가워진 나의 아버지들을 덥히기를 바란다.


내가 꿈을 꾸며 듣던 음악들을 너도 같이 들어주기를 바란다. 내가 울면서 보던 영화들을 너도 함께 보아주기를 바란다. 사내아이의 길을 먼저 걸어본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네가 유일하게 증명해주기를 바란다.


네가 나이기를, 하지만 우리와 전연 다른 훌륭한 사내가 되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2019. 5. 13



윤이훈은 저렇게 눈을 부릅뜨고 태어났다




3년 전 아들 출산 직후 산부인과에서 편지를 쓰라고 시켜서 쓴 글이다. 누구나 마찬가지였을 테지만, 생전 처음 느껴보는 그 감격스러운 마음을 어떻게 글로 옮길 수 있을까 고민이 컸는데 한 삼십여 분 만에 훌훌 써버렸던 기억이 난다. (물론 초고는 비문이 너무 많아서 나중에 문장을 손봤다)


사실 아이 이름은 태어날 때까지 태명만 있었고 본명은 정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 글을 쓰고 나서야 아들의 이름을 결정할 수 있었다. 아버지들의 지난 역사는 따르되 우리와 다른 더 훌륭한 사내가 되라는 뜻으로.


공 훈(勳)은 항렬자다. 뜻 자체 보다, 지나온 아버지들의 계보를 따르겠다는 순종의 의미다. 요즘 세상에 누가 항렬을 쓰냐고 아내가 반대했지만 내가 고집한 이유는 그 앞에 다를 이(異)를 쓰기 위함이었다. 그 취지를 설명하고 나니 수긍했고, 또 '이훈' 어감이 예쁘기도 했고, 흔한 듯 흔하지 않은 이름이라서 그렇게 잘 결정됐다.


원래는 항렬자가 두 자였다. 하나는 훈이고 다른 하나는 묵(默)으로 무슨 무슨 규칙에 따라 돌아가면서 써야 했는데 이번엔 '훈'이었던 것이다. 아찔하다. 이름이 '이묵'이가 됐으면 어쩔 뻔 했냐. 용이 되지 못한 열등감의 뱀 괴수, 윤이무기가 될 뻔했다. 물론 그런 이름을 지었을리도 없었겠지만 적당한 항렬자를 내려주신 조상들께 새삼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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