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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Jan 15. 2020

나도 그 마음을 안다.

힘이 되는 그 말

-오늘 점심 뭐 먹지?


날마다 해결되지 않는 절대적 질문에 많은 경우 대답에 되어주었던 식당이 하나 있다. 식당의 이름은 오복식당.

두툼한 계란말이와 푸짐한 반찬, 김치찌개에 제육볶음까지 시키면 저녁 먹기 전까지 속이 든든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가게 안에 걸려있는 '오복'에 대해 읽어보았다.


수 : 오래살고

부 : 부유하며

강녕 :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평안하며

유호덕 : 도덕 지키기를 낙으로 삼으며

고종명 : 편안하게 임종을 맞이하는 것


그래서일까 오복식당을 나올 때는 조금 더 기분이 좋아진다. 오복의 기원은 지극히 유교적인 단어이다. 때문에 조선왕조에서도 즐겨썼던 단어이다.

강녕전 ⓒ이서준


경복궁을 안을 들어가면 좌우로 긴 건물이 하나 있다. 건물의 이름은 강녕전. 오복 중에 몸과 마음의 건강을 뜻하는 이 건물의 용도는 왕이 잠을 청했던 침소이다. 이 건물의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는데, 바로 세종대왕이 이곳에 머물 때의 이야기이다.


"임금이 잠저(潛邸)에 있을 때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게을리하지 않아서, 일찍이 경미한 병환이 있을 때에도 오히려 독서를 그치지 아니하므로, 태종(太宗)께서 작은 환관을 시켜서 그 서책을 다 가져다가 감추게 하고 다만 구소수간(歐蘇手簡) 만을 곁에 두었더니, 드디어 이 책을 다 보시었다. 즉위하심에 이르러서는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아, 비록 수라(水剌)를 들 때에도 반드시 책을 펼쳐 좌우에 놓았으며, 혹은 밤중이 되도록 힘써 보시고 싫어하지 않으셨다." - 세종실록 5년 12월 23일  중


세종대왕은 어렸을 때부터 책 읽기를 즐겨했다. 얼마나 즐겨했는지 아플 때도 책을 읽었고 아버지가 책을 감추어도 책을 읽었고, 항상 손에서 책을 떼지 않았다. 얼마나 책을 열심히 읽으셨는지, 나중엔 시각장애가 올 정도였다.


"내가 두 눈이 흐릿하고 깔깔하며 아파, 봄부터는 음침하고 어두운 곳은 지팡이가 아니고는 걷기에 어려웠다. - 세종실록 23년 4월 4일 중


"근년 이래로 내가 소갈증(消渴症)과 풍습병(風濕病)을 앓게 되어"

-세종실록 24년 6월 16일 중


세종대왕에게는 시각장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병들이 있었다. 당뇨를 비롯해 종기와 여러 질병으로 인해 항상 고생해야했던 세종대왕. 그는 몸이 불편했을 때 겪는 고통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몸소 느끼며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대왕은 자신의 '강녕'을 챙기기보다 백성들의 '오복'을 챙기기 위해 힘썼다. 몸이 아파서 해야할 것을,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는 갑갑한 마음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그 때문이었을까, 세종대왕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깊이 헤아렸다.


"관현(악기)을 다루는 시각장애인 중에 천인(천민)인자는 재주를 시험하여 잡직에 서용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세종실록 16년 11월 24일 중


경복궁을 거닐고 있으면 많은 상상을 하게 된다. '세종대왕은 여기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감정으로 이 돌 들을 밟고 거닐었을까?'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상해보일지 모르겠지만 때론 세종대왕이 된 것처럼, 때론 호위무사가 된 것처럼, 때론 사관이 된 것처럼 혼자 만의 상상을 하며 감정이입을 한다. 언젠가 눈이 수북히 쌓인 날, 눈이 침침하여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지팡이를 짚고 숙직 관리확인을 하러 강녕전을 나섰을 때, 시각장애를 가진 악사를 만나 어깨를 토닥여주며 말하지 않았을까.


-나도 그 마음을 안다.


하루는 휠체어를 끌고 궁에 찾아온 손님이 있었다. 궁궐에는 박석을 비롯한 수 많은 돌들이 깔려있다. 때문에 휠체어를 타고 돌아다니기에 불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어머니께서 아들을 휠체어에 태워서 찾아오셨다. 아들은 선천적으로 다리에 장애가 있어서 걸을 수가 없었지만, 어머니는 아들에게 더 많은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궁궐까지 찾아오셨다. 다른 손님들에게 자꾸만 늦어져서 죄송하다고 이야기했지만 사람들은 괜찮다며 여유롭게 기다려주었다. 그렇게 걷고 걸어 강녕전 앞에서 세종대왕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는 마지막 장소인 경회루로 이동을 했다.  


경회루 ⓒ이서준

경회루는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되었지만, 대표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기우제를 지낼 때였다. 그리고 기우제를 지낼 때 연주를 하고 점을 쳤던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이었다.


-장애인은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차별받았습니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달랐습니다. 백성은 모두 하늘이 내린 사람이라 하여 국가의 가장 중요한 행사에서도 장애인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나는 세종대왕의 업적과 투어에 대한 내용을 복기하며 투어를 마무리 짓고 궁궐 밖으로 걸어갔다. 투어가 끝나고 나면 식사 시간이 된다. 그 날은 같이 투어를 했던 팀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같이 식사를 하게 됐다.


-오늘 저희 때문에 많이 지체됐죠?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밥은 저희가 살게요.


휠체어를 끌고 왔던 어머니가 일행들에게 다시 인사를 하자 다른 일행 중 한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괜찮아요. 제 동생도 어릴 때부터 다리가 불편해서 그 마음이 무엇인지 충분히 알아요. 어머니 정말 대단하시고, 아들도 여기까지 따라오느라 고생하셨어요. 식사는 저희가 살게요.


그렇게 손님들끼리 친해졌고 나는 다음 투어를 진행하기 위해 먼저 나왔다.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은 얼마나 힘이 되는 일인가. 차갑고 힘든 현실에도 웃으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배려심에서부터 시작된다. 오늘 나는 누구의 마음을 알아주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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