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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날 Apr 02. 2023

Q. 전율이 일었던 경험이 있나요?

A. ‘망원경’과 ‘현미경’을 들여다보다.

제임스웹이 지구로 전송한 사진을 보던 순간을 기억한다. 태양이라는 대단한 중심을 품은 ‘우리 은하’가 사실 모래 한 알만도 못한 존재임을 깨닫는 충격적인 순간이었다.


물리적인 관점에서 엄청나게 큰 것들, 즉 태양, 목성, 그를 모두 둘러싼 우리 은하, 그 모두를 하찮게 만드는 우주 전체에 대해 생각하면, 일상의 모든 것들이 아무 의미 없이 느껴진다. ‘나’는 우연히 살과 뼈를 갖추었다가 찰나에 흩어지고 마는 존재인 것이다. 육신에 갇혀 있다 보니, 그 육신을 둘러싼 만큼의 고통과 즐거움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안다. 시간과 공간의 상대성은 대부분 잊고 산다.


일본의 논픽션 작가이자 평론가인 다치바나 다카시가 쓴 <우주로부터의 귀환>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우주를 비행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담은 책이다. 책에 등장하는 구절 한마디를 인용해 보고자 한다.


“공통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사람이 보다 넓은 시야에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새로운 비전을 획득했다는 사실이다… 전 세계의 불행한 사람들을 모두 구하고도 남을 거액의 자금을 들여 서로 살육할 준비를 무한히 거듭하고 있는 현상은 슬퍼해야 할 일이다. 신의 메시지는 ‘사랑하라’는 단 한마디임에도 불구하고.”


우주를 잊은 인간들은 얼마나 우매한 존재인가. 좁쌀만 한 별 에서, 시답잖은 이유로, 매일 전쟁하고, 서로를 약탈한다. 귀환한 우주비행사들은 이 점에 몹시 한탄했다고 한다. 반짝이는 별로 각인된 그들의 몸과 마음은 스스로 우주가 된 듯하다. 그리고 개중 많은 이들이 종교에 귀의하였다고 한다. 신은 반드시 존재한다,라는 각성이 든 것이리라.


그래서 인간은 고작 ‘좁쌀 가루’ 따위인가 묻는다면, 그렇지만도 않다. 이번에는 배율을 최대한으로 높인 현미경을 사용해 본다.


미시적인 세계 역시 우주만큼 경이롭기는 마찬가지이다. 우리 몸과 마음은 놀랍도록 섬세하게 설계되어 있다. 곤충이나 미생물조차 경이로운 구성을 갖추고 있다. 모든 것은 그 자체로 ‘온전한 우주’인 것이 아닐까. 현미경으로 보느냐, 망원경으로 보느냐에 따라 상대성은 가질지언정.


미국의 재즈 밴드 핑크마티니의 ‘Splender in the grass (초원의 빛)’라는 노래의 가사를 인용해 본다.


“Life's been moving oh so fast

I think we should take it slow

Rest our heads upon the grass

And listen to it grow.


인생은 너무나 빨리 지나가.

우리는 좀 여유를 가져야 해.

잔디 위에 머리를 두고,

그들이 자라는 소리를 들어봐. “


이어 연주되는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풀 한 포기도 그만큼 웅장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자라는구나 싶어 전율한다. 꽃이 피었다가 지는 소리, 아이들이 자라나는 소리, 시간이 흐르는 소리 모두 대수롭게 여겼다. 미워하고, 슬퍼하고, 화내고, 우울에 젖기 바빠서. 그들이 이미 지고, 죽은 자리에서 뒤늦게 안타까워한다. 모든 것이 아깝게 흘러가고 있지만, 붙잡을 수는 없다.


크게 여기고 작게 여기는 역량은 나에게 있다. 좋은 것을 크게 보고, 나쁜 것을 작게 보는 역량도 나에게 있다. 찰나를 영원으로 여기고, 영원을 찰나처럼 여기는 힘도 나에게 있다. 저 하늘 밖의 무한이 물리적 우주라면, 추상적 우주는 내 안의 무한, 즉 ‘마음’이 아닐까. 그리고 내가 다스릴 수 있는 것은 마음,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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