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하던 그 해, 나는 자존심 하나로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누가 봐도 묘한 위화감이 드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을 것이다.
마음이 곪아 썩어 있었음을 인지하지 못했다. 오기로, 악으로, 허세로 버티고 있음을 알아채지 못했다. 이혼이라는 큰 일을 겪고도 눈물 한번 흘린 적 없었으니, ‘나 좀 쿨한 사람인 듯’하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약한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센 척’ 했다. 동정을 구걸하기도 싫었고, 겨우 ‘그딴 놈’ 때문에 상처 입었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당시 나는 홍콩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전 남편 손에 질질 끌려 집에서 쫓겨난 뒤, 방음이 안 되는 더러운 모텔방을 전전하게 되었다 (내 세간살이를 챙겨 나올 때만 빼고 그 집에 다시 들어가지 못했다). 열악한 상황에도 불구, 결근 한번 없이 성실히 회사에 출근하였다. 변한 것 따위는 없다고 거듭 되뇌었다. 전보다 더 많이 웃었다. 여전히 피트니스 센터에 다니고, 클럽에서 춤을 추고, 주말마다 파티에 참석했다. 추파를 던지던 정체 모를 이탈리안의 시시껄렁한 농담에도 과장하여 깔깔댔다. 이혼? 까짓 거 나한테 별 타격도 못돼.
그 웃음들이 사실 다 눈물이고, 절규이고, 발악이었음을 몰랐다. 아픔을 모른 체 하면, 그 아픔이 언젠가는 사라질 거라고 믿었다. 알아주지 않는 이상, 아픔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고.
스스로조차 몰랐던 속앓이를, 주변 친구들은 알고 있었다. 늘 내 근거리에서 맴돌며, 곧 무너질 듯 위태한 나의 몸과 마음을 꼭 붙들고 있었다. 해소되지 않은 문제는, 주변인들을 향한 불평과 어리광으로 발현되었다. 나는 그 모든 불만이 이혼과 하등 관계없는 제3의 사건으로부터 발생한 것이라고 믿었다. ‘이혼’이라는 인생 대사건에 얼굴을 직통으로 맞아, 세상을 보는 렌즈 자체가 일그러져 있음은 몰랐다.
억압된 괴로움에 매몰되어 있던 그 시절, 나를 힘껏 ‘간병’ 해 주었던 다정한 이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캐리 언니,
언니는 지옥 같은 결혼 생활에서 나를 꺼내 주었지. 전 남편을 어르고, 달래는, 때론 분노하고, 훈계하는 어조의 편지를 대신 써주었어. 이혼에 필요한 일련의 절차도 함께 밟아 주었고. 나를 대신해서 써주었던 편지들, 이혼 요구서들, 모두 고마웠어. 언니의 단호한 조언이 없었더라면, 차마 이혼까지 갈 용기는 못 내었을 것 같아.
한동안 넋 나간 있던 나를 집으로 초대해 주었던 거 기억나? 저녁 식사로 먹었던 파스타가 맛있었지. 자주 동석하여 위로를 건네던 언니의 남편 프레드에게도 안부를 전해줘.
시간이 지날수록 언니를 원망했어. 언니가 나를 이혼녀로 만든 것 같아서.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언니와의 관계가 끊어지면서, 우리와 함께 가히 삼총사로 불리던 샤론 언니와의 관계도 끊어지고 말았지. 집에서 쫓겨나 갈데없는 나를 재워주곤 하던 샤론 언니도 절절하게 그립다.
길거리의 인파 속에서 가끔 언니들을 발견해. 방금 샤론 언니가 지나간 것 같은데… 나는 언니가 사라질까 두려워 부지런히 뒤를 밟아. 따라가 보면, 늘 낯선 사람이긴 했지만.
사이먼, 폴, 이본느, 그리고 나오미.
너희들은 나를 혼자 두지 않았어. 너희가 참석하는 갖은 모임에 꼭 나를 끼워주곤 했으니까. 하지만 툭툭 튀어나오던 나의 히스테리와 돌발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을 거야. 내 상처로 인한 스트레스(이었던 것을 차마 모르고)를 우회적으로 너희에게 풀곤 했지. 나에겐 아직 너희들의 연락처가 남아 있지만, 그 시절의 내가 부끄러워 차마 먼저 연락할 수가 없다.
십수 년 지기 친구였던 지민아.
이혼 이후 계속 실패하던 나의 연애사를 들어주느라 (그것도 카톡으로) 많이 지쳤을 거야. 너는 함께 그들의 흉을 보았고, 수시로 조언을 해주었고, 우울 따위 농담으로 받아쳐 주었지. 꼬이고 엉킨 나를 어떻게 견뎠을까. 네 가득의 에너지를 나눠 갖길 원하던 나는, 그저 뱀파이어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아.
우리 둘이 만나기로 한 날, 내가 약속 시간을 어겼지. 너는 무척 화를 내긴 했지만, 그게 우리 관계의 마지막이 될 줄은 미처 몰랐어. 그런 시답잖은 이유로 날 버린 널 쭉 원망했어.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게 아니었더라. 내가 회복할 수 있도록 한참이나 기다려 주었다가 마침내 지쳤던 거라고 생각해. 너 참 힘들었을 거야. 정말 미안해.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던 친구들이 모두 떠나던 날, 해 떨어진 홍콩 거리를 헤매며 왕왕 울었다. 힐끔대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아랑곳 않고 통곡했다. 어느 친절한 여성분이 대뜸 다가와 나를 달래 주던 기억이 난다. 커피를 사주겠다는 그녀의 호의를 만류하였다. 이제 민폐 끼치고 싶지 않아.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열려 있는 건물로 들어섰더니 성당이었다. 안에서는 마침 장례식이 진행되고 있었고, 사람들은 나처럼 소리 내어 울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맘 놓고 실컷 울었다. 여태 외면하고 있던 상처를 모두 흘려버리듯이.
무심한 척 날 간병해 주던 다정한 이들. 구구절절한 사연도 묻지 않은 채 심상히 대해주던 이들. 그들 덕분에 이렇게 살아남아 글을 쓰고 있는 것도 모르고. 여분의 삶에서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늘에 별이 많길래, 그 하나마다 내 은인들의 이름을 담아 본다.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윤동주, <별 헤는 밤>
염치없게도, 나의 힘듦은 너의 힘듦으로 치유되었다. 이제와 내 마음을 어떻게 전할까, 하다가 차마 적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