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mond Chandler's The Lady in the Lake
"The Lady in the Lake"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말로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이다. 아마도 읽는데 가장 오래 걸린 것 같다. 첫째는 읽다가 도중에 일주일 가량 미국을 다녀올 일이 있었는데, 그 동안은 전혀 읽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유는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그의 소설에는 한 페이지도 술과 담배가 나오지 않는 적이 없는데, 비행기는 물론이고 요즘 미국 호텔에서도 그 유혹을 견디기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둘째는 플롯에 관한 한은 거의 산전수전을 다 겪은 나로서는 1943년에 챈들러가 쓴 소설의 플롯을 상당히 앞에서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정확한 결말은 아니지만 물에 빠져 죽은 여자가 나오자마자 대충은 "아 두 여자가 뒤바뀌었겠군" 정도는 생각해냈다는 것이다.
어쨌건 인물/캐릭터가 핵심인 챈들러 소설에서 플롯따위야 뭐... 내가 챈들러에 빠진 이유는 그의 엄청난 은유 때문이고, 두번째는 "말 그대로 배에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literary equivalent of a quick punch to the gut)" 느낌이 드는 (Paul Levine, Hard-boiled Dialogue: From Phillip Marlowe to Jake Lessiter) 그의 대화 때문이다.
나 말고도 여기에 빠진 사람에는 007 시리즈의 저자인 이언 플레밍, 무라카미 하루키 등등이 있는 듯 하다.
대화만으로 단박에 현실의 경계를 넘어 버리는, 대화가 갖는 힘을 단 한 줄로 보여 주는 엄청난 내공이다.
그나저나, 미국에서는 남이 뭔가 문법적으로 틀린 말을 하기만 하면 거의 참을 수 없어 하고, 있는대로 짜증을 내고 꼭 한 마디 하셔야 하는 분들을 "language police" 내지는 "language cop"이라고 하신다. 물론, 수사적 표현이겠지만, 필립 말로의 다음과 같은 대화를 읽고 나면 현실과 언어의 경계가 무너지는 (도대체 현실과 언어의 경계가 뭐지?) 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One moment, please. Whom did you wish to see?”
Degarmo spun on his heel and looked at me wonderingly. “Did he say ‘whom’?”
“Yeah, but don’t hit him,” I said. “There is such a word.”Degarmo licked his lips. “I knew there was,” he said. “I often wondered where they kept it. Look, buddy,” he said to the clerk, “we want up to 716.
대충 번역해 보자면 (번역하는 입장에서는 무지 어려운 대화이다),
"잠시만요. 누구를 보고 싶다고 하셨죠?"
디가모는 휙 돌아서서 나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지금 저 사람이 '누구를'이라고 말했어?"나는 말했다. "그래, 하지만 때리지는 마. 그런 단어가 있어." 디가모든 입술을 다졌다. "있었다는 것은 알아. 도대체 어디에다 그 단어를 쳐박아 두었는지 종종 고민했었지" ...
갑자기 현실의 경찰이 언어경찰이 되어버렸다. '누구를'이라고 번역한 'whom'이라는 단어는 언어경찰들이 자주 따지는 대표적 단어 가운데 하나이다. 말로는 그런 단어가 '있다 (is)'고 말하는 반면, 디가모는 '있었다 (was)'고 말한다. 살인사건 수사가 도중에 갑자기 영어와 문법에 대한 강의로 바뀌어 버리는 순간이다. 술과 담배만 중독적인 것이 아니다. 필립 말로의 대화도 무시무시하게 중독적이다.
여기에서 원문 전체를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