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는 유럽으로
유럽사람들에게 담배라는 새로운 식물은 신비로움으로 다가왔다. 모험과 꿈이 가득 찬 신대륙의 이미지와 야리야리한 분홍빛 담배꽃의 아우라가 겹쳐져 허영심 가득한 유럽의 귀족들의 자랑거리가 되기 충분했다. 귀족들의 신하들은 저택의 정원에 심을 담배씨앗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기도 했고 누구보다 담배를 먼저 들여온 귀족들은 한껏 거드름을 피우기도 했다.
또 담배는 신대륙의 영험한 건강기능식품으로 입소문을 탔다. 특히 아메리카대륙에서 온갖 노략질을 일삼던 선원들은 신대륙의 저주 와도 같은 매독을 달고 들어왔는데, 금세 유럽 대륙에 매독이 퍼져 나갔다. 이때 담배가 매독에 효과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나 보다. 왠지 새로운 문물은 뭔가 색다른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이런저런 용도로 담배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담배를 연구해 보겠다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건강에 좋다면 무어라도 좋다는 생각은 어느 나라를 가건 똑같은 것 같다.
특히 프랑스의 외교관 장 니코(Jean Nicot)는 담배에 특히나 관심이 많았는데 포르투갈 대사시절 담배를 정원에서 기르면서 여러 가지 약용 실험을 했다. 당시 의학은 고전의학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지만 약초에 대한 연구들은 상당히 진행되고 있었다. 장 니코 역시 담뱃잎을 으깨서 여러 환자들에게 처방을 했는데, 종기에 꽤나 효과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또 스페인의 의사 니콜라스 모나르데스(Nicolás Monardes)는 담배에 암을 비롯한 30개의 질병에 치료효과가 있다는 연구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런 연구들로 인해 담배는 상당히 오랫동안 유럽에서 영험한 약초로 포지셔닝되었다.
장 니코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바로 담배의 주성분인 ‘니코틴(Nicotine)’의 명명이 장니코로부터 유래했기 때문이다. 니코는 사실 프랑스의 공주와 포르투갈의 왕자의 결혼식을 주선하기 위해 포르투갈로 파견되었었는데 당시 여왕이었던 카트린 드 메디치(Caterina de' Medici)와의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가장 힘 있던 메디치 가문과의 친분으로 인해 장 니코의 이름도 담배씨와 같이 유럽으로 퍼져나갔고 장 니코는 불멸의 이름을 얻게 되었다.
한편 담배 전파 초기에는 파이프로 잎을 태우는 흡연 방식이 아니라 고운 담배가루를 코로 흡입하는 코담배로 귀족들에게 역시 비싼 값에 팔렸다. 스페인의 선원들이 신대륙의 흡연을 배워 오기도 했지만 유럽사람들은 담배연기의 자욱함과 그 냄새가 마치 악마의 연기처럼 보였던 것 같다. 이 선원들은 종교재판을 통해 7년 동안 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콜럼버스 이후 유럽은 지중해를 넘어 세계로 진출했고 16세기 후반 유럽의 강력한 절대왕정을 중심으로 세계 이곳저곳에서 정복과 약탈을 이어갔다. 유럽인들의 욕망의 여정과 함께 담배도 전 세계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