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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영일 Aug 09. 2023

담배와 세계사 3

황금 정복 시대의 담배


콩키스타도르의 지휘관 에르난 코르테스, 그리고 슬픔의 밤


콜럼버스는 원정을 성공했지만 원정의 목표는 신대륙 발견이 아니었기에, 현실적인 결과를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계속 이어진 원정에서 이렇다 할 수확이 없어 여왕에게 돌아가 원정비용을 계속 요구하기에는 명분이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티 섬에 전진기지를 세우고 원주민들을 약탈하고 학살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황금도시의 소문을 들은 콩키스타도르(Conquistador, 스페인 정복자)라고 불리는 스페인 용병들도 대박의 꿈을 품고 남미에 와서 하나둘씩 자리 잡기 시작하자 콜럼버스는 성과를 내기 위해 점점 포악 해져 갔다. 그 잔인함에 결국 부하들도 등을 돌렸고, 그 와중에 이사벨 여왕마저 하늘나라로 떠나는 바람에 이후에는 지켜주는 사람 하나 없이 끝내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인도를 찾기 위한 그 꿈과 도전은 원대하고 멋졌던 만큼 당시 뱃사람들은 지금의 카리브 제도를 서인도제도(West Indies)라 부르고,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인디언(Indian)으로 불렀다. 오늘날 아메리카 사람들도 콜럼버스를 기리기 위해 기념일을 만들고 그의 이름을 따서 콜럼버스, 콜럼비아, 콜론과 같은 지명을 만들어 그를 기억하고 있다. 


콜럼버스의 원정으로 시작되었던 스페인의 남미 정복 프로젝트는 1530년경 마무리되는데 이 시기에 남미 3대 문명이었던 마야, 아즈텍, 잉카를 모두 정복하게 된다. 예전부터 스페인 용병들은 중동의 무자비한 이교도 군대를 제압한 실전 경험이 풍부한 프로였고 기마대를 주력으로 한 기가 막힌 전술과 다양한 철제 무기는 물론 화약총까지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남미의 원주민들은 그때까지도 나무와 돌로 무기를 만들어 쓰는 원시적인 무기밖에는 없었고 아메리카 대륙에는 아예 말처럼 생긴 동물도 없었다. 무기도 무기지만 실전 전투에서는 기동성이 생명과도 같다. 생전 처음 보는 빠르고 커다란 말들은 원주민들에게 공포 그 자체였고 소규모 병력에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전투 민족이었던 아즈텍 제국만큼은 정글에 특화된 전술과 특유의 운동능력으로 끈질기게 버텼다. 스페인은 긴 시간의 원정으로 많이 지쳐 있었고 인력난도 심각 해져 회심의 한방을 노려야 했다. 그러나 토벌군을 닥닥 끌어 모아봐도 천여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아 패배의 기운이 도는 듯했다. 하지만 아즈텍에게 치명적 약점이 있었다. 


아즈텍은 극강의 전투력을 자랑했고 문화도 좀 하드코어 했다. 마야처럼 수천 년간 평온하게 하늘의 별자리와 철학을 깊게 탐구하는 기존 제국들과는 좀 다른 문명이었다. 당시 아즈텍은 만들어진 지 200년쯤 된 꽤나 신생 국가였고 주변 도시국가를 무력으로 점령해 나가면서 세력을 확장했다. 거기에다가 자신들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침략에 성공하면 그 나라의 왕은 물론이고 귀족들의 심장을 뽑아 신에게 제물로 바치고 포로들을 잡아먹기까지 하는 치욕을 주었다. 그래서 주변 도시국가들에게는 오랬 동안 철천지 원수로 남아 있었고 스페인은 이점을 노려 주변 도시국가들을 꼬드기기 시작했다. 분노로 차오른 아즈텍의 주변국가들은 스페인의 음흉한 속셈 따위는 뒤로하고 오로지 복수만을 위해 병력을 보내왔고, 이로 인해 만 명이 넘는 병력을 모은 반 아즈텍 연합군은 아즈텍을 토벌하러 나섰다.


순식간에 아즈텍의 수도인 테노치티틀란으로 먼저 도달한 콩키스타도르 연합군은 온통 금칠이 되어 있는 왕궁의 모습을 보고 눈이 멀었다. 아즈텍 왕을 인질로 잡아 놓고 숨겨놓은 황금을 찾기 시작했는데, 아즈텍 왕은 인질로 잡혀 있는 상황에서도 고결함을 고수했다. 매번 식사 때마다 300가지의 음식을 차려 놓고 식사를 마친 후에는 기다랗고 멋진 담뱃대에 담배를 피우곤 했는데 이 뻔뻔하고 당당한 모습이 스페인 용병들에게는 좀 멋져 보였나 보다. 


사실 콩키스타도르들은 대부분 스페인 귀족들에게 고용되어 머나먼 땅에 돈을 벌러 온 낮은 계급의 용병들이었는데 정복지에서만큼은 꽤나 호사를 누리고 살았다. 고급스러운 취미를 갖고 싶은 그들의 허세였는지 아니면 담배의 마력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용병들이 심취해 버린 담배와 담뱃대는 그대로 유럽에 퍼지게 된다. 


그리고 느긋하게 배짱을 부리던 아즈텍의 왕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뒤늦게 도착해서 잡혀간 동족을 찾고 있는 전사들의 눈에는 아즈텍 신전에 심장이 뽑힌 채 그대로 전시되어 있는 동료들의 시체들이 눈에 보였고, 이들은 그대로 아즈텍 왕에게 달려가 심장에 칼을 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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