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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선 Oct 06. 2016

츠타야 서점이 말하는 '진짜 기획'

기획은 컨셉이나 차별화가 아니다

나는 스타트업을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가끔 성공한 프로젝트나 성공한 회사를 보면 이런 궁금증이 들 때가 있다. '도대체 저 아이디어는 어떤 기획 과정을 통해 나온 걸까?'
그중 하나가 바로 츠타야 서점이었다. 그래서 나는 츠타야 서점의 사장 '마스다 무네아키'가 쓴 <지적자본론>을 읽었다.


ㄱ. 츠타야 서점은 진열 방식이 다르다.

 내가 출판업계에 발을 들이고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였다. 그리고 이는 출판 강국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츠타야 서점만큼은 달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출판 관계자들 사이에서 '서점의 변화' 정도로 입에 오르내리더니, 이제는 출판업과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도 일본 여행을 가면 꼭 들러보는 곳이 됐다.

 그런 츠타야 서점의 가장 큰 특징은 제품의 진열 방식에 있다. 기존의 서점들은 책의 카테고리에 따라 진열이 된다. 하지만 츠타야 서점은 라이프스타일을 바탕으로 책을 진열한다. 만약 '요리와 관련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코너'가 있다면, 책의 카테고리와 상관없이 요리와 관련된 소설, 실용서적, 에세이, 시집 등이 한데 모여있다. 심지어 요리를 하는 데 필요한 식기와 식재료까지 함께 판매한다. 이게 사람들이 말하는 츠타야 서점과 일반 서점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ㄴ. 이는 단지 컨셉의 차이가 아니다.

 얼핏 생각하면, 츠타야 서점의 이런 진열 방식은 독특한 차별화 전략 정도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차별화라고 보기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회사가 가지는 부담이 꽤나 크다. 일단 기존의 방식대로(책의 카테고리 별로) 진열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효율성이 크게 떨어진다. 서점의 담당자들은 일일이 책의 내용을 알아야 하고, 그 책의 내용에 따라 어떤 '라이프스타일'로 제안될 수 있을지 창의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트렌드와 서점의 위치에 따라 제안 내용도 새롭게 기획되어야 하며, 필요할 경우 해당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까지 진행한다. 그리고 이를 다시 츠타야 만의 시스템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이는 고도의 편집 작업이다.

 단순히 컨셉의 변화 혹은 차별화 전략이라고 보기에는 바뀔 게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기획 과정에 의해 이런 아이디어가 나왔길래, 츠타야는 효율성을 포기해가면서 까지 이런 서점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일까? 다른 회사였다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며' 포기했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ㄷ. 마스다 무네아키가 바라보는 '기획'

 츠타야 서점을 만든 CCC그룹의 CEO '마스다 무네아키(이하 마스다)'는 기획에 대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을 가지고 있다. 그가 쓴 <지적자본론>에는 츠타야 서점의 기획 과정을 중심으로 마스다의 경영이나 기획에 대한 생각들이 담겨 있는데, 여기에 나오는 그의 생각들은 모두 묘하게 '하나의 사고방식'으로 연결이 된다.

마스다의 사고방식은 이렇다.
'세상에는 빠르게 변화하는 것과 느리게 변화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들 간의 격차가 심해지면 뭔가 문제가 발생한다.'

※이는 짧은 글 안에서 이해를 돕기 위해 저만의 표현으로 다시 쓴 것입니다. 본래 책에서는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관점에서 기획을 바라봅니다.
 예를 들어 이런 거다. 항상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 사람들의 행동 패턴이나 생활양식도 달라지게 마련인데, 법과 제도가 그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불필요한 규제가 되거나 신종 범죄가 생긴다. 즉, 과학 기술의 발전 속도는 빠르지만 제도의 변화 속도는 느리기 때문에 그 간극에서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소비자와 생산자의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보통 소비자들의 생활 패턴이나 니즈는 빠르게 변화하는데, 생산자들은 기존에 구축해 놓은 유통 구조나 수익 모델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변화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노키아나 코닥처럼 그 간극이 커진 회사들은 몰락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빠른 것과 느린 것의 격차가 커진 것이다.

 때문에 마스다는 '기획'의 역할이 바로 이 간극을 줄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것들의 속도에 맞춰 느리게 변화하는 것을 혁신시키는 것. 다시 말해,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자들의 니즈에 맞춰 기존의 생산자 관점과 구조를 바꿀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마스다가 생각하는 '기획'이다.

ㄹ. 마스다 무네아키가 바라보는 '시장의 변화'

 자, 그러면 출판 시장에서 무엇이 바뀌었고, 무엇이 바뀌지 못했기에 '출판 시장 침체'라는 문제가 생긴 것일까? 마스다는 이를 소비 사회의 변화에서 찾았다. 그는 현재의 소비문화를 '써드 스테이지'라고 정의했다. 소비 사회의 첫 단계였던 '퍼스트 스테이지'는 제품이 부족한 시대다. 그래서 용도로서의 기능만 할 수 있으면 만들어내는 제품은 모두 팔렸다. 하지만 생산력이 올라가면서 제품이 넘쳐 나게 된다. 제품이 넘쳐 나니, 그 제품을 소비자들과 더 잘 만나게 할 수 있는 플랫폼이 중요해졌다. 접점이 강조된 것이다. 이게 바로 '세컨드 스테이지'다. 그런데 지금은 이 접점, 즉 플랫폼마저 넘쳐나게 되었다. 제품 자체와 제품의 접점마저 포화된 시장, 이게 바로 마스다가 주장하는 '써드 스테이지'다.

 써드 스테이지에서 생산자들은 소비자에게 한 발 더 다가가야 한다. 여기에서 필요한 게 바로 '제안'이다. 제품, 접점 모든 것이 포화하니 이제는 소비자들에게 선택권이 너무나 많아졌다. 그렇기 때문에 대신 선택해주고 대신 추천해줄 수 있는 '제안 능력'이 가치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제품뿐만 아니라 무형의 콘텐츠 시장에서도 '큐레이션'이라는 개념이 유행하는 것을 보면 마스다의 이런 주장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퍼스트 스테이지, 세컨드 스테이지 = 재무자본(돈)의 시대
써드 스테이지 = 지적자본(제안·기획 능력)의 시대

 세컨드 스테이지까지는 회사의 금전적 능력이 상당히 중요했다. 제품을 만드는 것, 접점으로서 좋은 플랫폼을 만드는 것 모두 '돈'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써드 스테이지에서의 '제안 능력'은 돈이 있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다. 회사가 가진 '지성' 즉, 지적 능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마스다는 이 책의 제목도 <지적자본론>이라고 지은 것이다. 그래서 써드 스테이지에서는 '기획자'들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 소비자들을 분석해 무엇을 제안해야 하는지 '디자인'하는 사람들이기 '기획자'이기 때문이다.

ㅁ. 그런데 왜 책은 안 팔리는가?

 다시 마스다의 '기획'의 관점으로 돌아가 보면 소비자들의 니즈는 '써드 스테이지'로 넘어갔는데, 책을 판매하는 서점들은 여전히 '세컨드 스테이지'에 머물러 있다고 할 수 있다. 책을 소비자들의 삶에 맞게 '제안'할 수 있어야 하는데, 기존 유통의 관점(효율성과 편리함)으로 책을 진열하고 판매하는 것이다. 잘 생각해보면 지금의 진열 방식은 판매자들에게는 편리한 방식이지만 구매자들에게는 그다지 편리한 방식이 아니다. 특정 책을 구매하기 위해 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어디 끌리는 책 있나' 싶어 서점을 찾는다. 하지만 책의 카테고리로만 구분되어 있는 지금의 진열 방식에서 '끌리는 책', '나에게 필요할 것 같은 책'을 찾기란 굉장히 어렵다.


ㅂ. 츠타야 기획의 시작점

 바로 이 점이 츠타야 서점 기획의 시작이자 기회 요인이었다. 마스다는 책이야 말로 '써드 스테이지'에 딱 맞는 '제안 덩어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많은 서점들이 책을 '제안'으로서 판매하지 않고, 책 그 자체로서만 판매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서점을 재정의했다. 책을 파는 곳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곳으로. 막연히 서점을 찾는 사람들에게 '이런 라이프스타일은 어때?'를 책의 카테고리를 뛰어넘어 횡적으로 연결해서 제안해준다. 때문에 그 제안에 적합한 음악이나 영화도 함께 팔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제안에 따라 서점 공간을 재구축했다.

ㅅ. 기획의 시작은 차별화가 아니고, 기획의 목적은 효율성이 아니다.

 즉, 츠타야 서점의 이런 기획은 단순히 차별화나 얕은 컨셉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마스다가 생각하는 '기획'은 그런 게 아니다. 앞에서 정의했듯이 '기획'이란,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자들의 니즈에 맞춰 회사의 관점과 구조를 혁신시키는 것이다. 때문에 필연적으로 '기획'은 소비자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다. 생산자의 관점에서는 더 많은 수익을 내야 하기 때문에 '효율성'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이 '기획'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생산자 관점은 시스템과 규모 때문에 언제나 소비자의 변화보다 느리기 때문이다.

 많은 회사들이 그런 오류를 범하곤 한다. 다른 생산자를 의식하며 '차별화'를 기획의 시작점으로 잡고, 효율성과 수익률 저하 때문에 많은 기획을 포기한다. 그리고 자신들도 모른 채 소비자와의 간극이 벌어지게 된다. 츠타야 서점이라는 기획도 '차별화'가 시작점이었다면, '효율성'이 떨어진다며 거부당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기획'이란, 시작점도 끝점도 '소비자'가 되어야 하는 게 맞다. 기존의 관습과 구조는 신경 쓰지 마라. 그걸 바꾸는 게 기획이다. 효율성과 시스템은 그다음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 마스다는 츠타야 서점의 기획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소비자로부터 생각해보니까, 이 기획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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