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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선 Jan 06. 2019

이십 대가 끝나고 나에게 남은 가장 소중한 것들

더 늦기 전에 그것들을 글로 남긴다

나의 이십 대가 끝났다.


가장 잘한 것과 못한 것, 이 과정에서 내가 배운 것, 감사한 사람, 그리고 삼십 대에 대해 짧게나마 글로 남긴다.


1. 가장 잘한 것과 못한 것


가장 잘한 것은 '열정에 기름붓기'를 시작한 것

이 아니라,

그만두지 않은 것이다.


1년 차에 돈을 한 푼도 못 벌고 2년 차부터 진짜 '생존 게임'이 시작됐을 때는 4년 동안 매해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만두고 싶다'가 아니라, '그만두겠다'였을 정도로 진지하게 '포기'에 대해 생각했다. 그럼에도 진짜로 포기한 적은 다행히 없다. 근성이라기보다는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힘들게 버티고 열심히 한 건 사실이었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했을 때 정말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는가 생각해보면 쉽게 '그렇다'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이 일을 그만둔다면, 나는 사십 대가 됐을 때 매우 높은 확률로 나의 이십 대를 후회할 것이다. 그래서 못 그만뒀다.

이게 내가 이십 대에 가장 잘한 일이다.


가장 못한 것은 책을 더 많이 읽지 못한 것이다.


이십 대 중반까지는 독서량이 전무했다. 이십 대 중반부터는 책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물론 편식은 심하다. 경제경영서와 과학서만 읽는다. 편식은 상관없다. 앞으로도 편식은 계속할 것 같다. 하지만 양 자체는 많이 부족했다. 나는 지식을 쌓으려고 독서하지 않는다. 사고방식을 배우려고 독서하고, 책을 읽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잡생각을 얻으려고 독서한다. 다행히 이십 대가 가기 전에 이게 정말로 좋다는 사실은 깨달았지만, 그럼에도 적극적으로 이용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삼십 대에는 더 많이 읽을 거다.

이게 내가 이십 대에 가장 못한 일이다.


2. 내가 배운 가장 중요한 것


이십 대에 내가 배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일에서 오는 고통을 삶이 해결해주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흔히들 일과 삶의 밸런스가 중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게 적어도 나에게는 완전히 틀린 말이더라.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적합한 취미를 찾고자 했었다. 저녁과 주말에 시간을 내 여러 가지를 해봤다. 건담, 액션페인팅, 클라이밍, 스쿼시, 주식, 자전거... 일단 이 중 어느 것 하나도 6개월 이상 유지된 적이 없으며, 저 취미들을 굉장히 즐겁게 했지만 다시 일로 돌아오면 스트레스는 나를 짓눌렀다.

이유는 간단하다.

첫째.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은 일이 차지한다. 그래서 일 이후의 삶이 즐거워진다 한들, 일이 즐겁지 못하면 삶은 여전히 고통이다.

둘째. 다리가 아픈데 팔 운동을 했다고 다리가 낫는 건 아니다. 일에서 스트레스가 오는 것은 일 속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삶에서 푼다고 되는 게 아니다. 일을 하는 방식이 잘못됐을 수도 있고, 일에서 성과가 안나 힘든 걸 수도 있고, 나와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걸 수도 있다. 그러면 더 일을 제대로 해내는 방식을 찾아야 하고, 그것을 통해 성취를 해내야 하고, 나와 맞지 않는 일이라면 빨리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 그걸 해결해서 일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면 취미 따위 없어도 삶이 진심으로 충만해진다. 이 기쁨을 아는 사람 중에 한 명이라는 건

정말 큰 행운이다.


물론 취미를 갖고, 퇴근 후 가족,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그게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까지 해결해주는 건 아니란 말이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일이 힘들어지고 일이 즐겁지 않고 무료해져도 일에서 도망치지 않을 생각이다. 일 속에서 해결해낼 것이다. 그래야 삶이 충만해진다.

이게 내가 이십 대에 배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다.


3. 가장 감사한 사람


내가 이십 대에 가장 감사한 사람은

이길래, 이석란, 표시형이다.


이길래는 우리 아빠다.

30년이 넘게 한 회사에 다니며 공장 일을 하고 있고, 일을 하다 다쳐도 절대로 쉴 줄 모르는 바보 같은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성실하고 불평 없이 자기 일을 한다.

나는 아빠에게 성실함을 배웠다.


이석란은 우리 엄마다.

아빠의 월급이 많지 않았지만 그 돈을 정말 현명하게 사용했다. 그래서 내 어릴 적 기억은 언제나 '성장'이었다. 가족이 긴 외출을 할 때마다 바퀴벌레 약을 뿌리고 들어오면 땅바닥에 수십 마리 바퀴가 죽어있는 집에서 시작해 아파트로 이사를 가고, 작은 아파트 하나를 더 장만해 월세를 놓고, 더 좋은 아파트로 이사를 가고...

아빠가 벌어오는 월급의 상승세보다 엄마가 그 돈을 알차게 활용해 높아지는 삶의 질의 속도가 더 빨랐다. 어쨌든 내 30년 기억 속에 우리 집은 '언제나 성장'이었다. 나 모르게 힘들었던 시기야 당연히 많았겠지만, 어린 나의 눈에는 어쨌든 그랬다. 그래서 나는 삶을 정말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편이다.


이게 단점으로 작용할 때도 많지만 무언가를 도전하고 시도하는 데 두려움이 크지 않다. 내가 엄마의 현명함을 배우지는 못했지만, 엄마는 나에게 '삶이란 조금씩이라도 나아진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그게 나에게는 무언가를 버텨내는 힘이 돼준다.


표시형은 나의 대표이자 공동창업자이자 친구다.

열정에 기름붓기를 함께 시작했고, 내 이십 대의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한 사람이다.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순수하고 가장 열정적이고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매력적인 사람이다. 무서운 속도를 가졌고, 무서운 생각의 양을 가졌고, 무서운 화를 가졌고, 무서운 얼굴을 가졌다.

그러면서 동시에 한없이 나약하고 흔들리고 사업가 주제에 예술가를 꿈꾼다. 나에게 끊임없이 자극과 영감을 준다.

이십 대에 그랬듯, 삼십 대에도 함께 꿈을 꿀 정말 소중한 사람이다.


4. 마지막으로,


내 삼십 대에게 약속을 하고 싶다.


주말 중 일부 시간은 반드시 '생각'을 할 것이다.
매일 중 일부 시간은 반드시 '독서'를 할 것이다.
가족에게 잘할 것이다.


나의 이십 대가

다듬어지지 않은 열정으로 무언가에 끊임없이 부딪히고, 깨지고, 상처 받고 다시 또 길을 찾던 시기, 탁구공처럼 움직이던 시기였다면,

나의 삼십 대는

내가 가진 모든 열정과 실력을 '발휘'하고, '성취'하는 시기, 볼링공처럼 움직이는 시기로 만들 것이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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