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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선 Dec 20. 2015

평화는 수단일 뿐.

틀리기 위해 씁니다 #4_'위대한 패배자'를 읽고.

※주의사항 : 제가 가진 지식은 굉장히 얕고 좁습니다. 하지만 제가 쓰는 글들은 강한 주장으로 끝날 겁니다. 그러니까 제 주장을 믿지는 마세요. 큰일 날 수도 있습니다. 사실, 틀리기 위해서 쓰는 거거든요. 틀리는 것이 두려워 입 닫고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아 보였습니다.

 단,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 아는 척한다고 욕하지는 말아주세요. 틀려 보려고 쓰는 거니까요. 정답이라고 생각은 안 합니다. '요즘'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일 뿐.


ㄱ. 몇 사람을 제외하고 우리는 모두 패배자다.

 최근 '이미테이션 게임'이라는 영화를 통해 접했던 '앨런 튜링'의 이야기에 부쩍 관심이 많았다. 우연히 그를 검색하다가 '위대한 패배자'라는 책을 접하게 됐다.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의 승리에  그야말로 결정적인 공을 세웠지만,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지고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던 '앨런 튜링'같은 '위대한 패배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었다.

 이 책의 골자는 이렇다. 인구가 많아지고 효율성의 사회로 접어들면서 경쟁에 있어 승리자보다 패배자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아지게 되었다. 그래서 몇 사람을 제외하고 우리는 모두 패배자인데, 여기서 패배자라는 것은 위대한 업적을 이뤄냈는가, 그렇지 않은가와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똑같이 위대한 일을 해냈더라도 역사적으로 최종적인 승자는 대개 욕심이 더 많은 사람, 악랄한 사람, 치밀하고 계산적이었던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래서 이 책에서는 인류의 역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최종적으로는 패배한 사람들 즉, 위대한 패배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앨런 튜링 역시 그러한 부류의 사람으로 소개가 된 것이다. 하지만 앨런 튜링 이전에 이 책에서 나를 사로잡았던 인물은 따로 있었다. 바로 소비에트 연방의 마지막 대통령이자 역사상 가장 극명하게 엇갈린 평가를 받았던 '고르바초프'다.


ㄴ. 그는 누구인가.

 어렸을 적 한 퀴즈 프로그램에서 정답이 '고르바초프'였던 문제를 본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엄마에게 고르바초프가 누구냐 물었고, 엄마는 이마에 세계지도가 있는 아저씨라고 설명해줬다. 어렴풋하게 나마 들어봤던 그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이 책을 읽고야 알게 된 것이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 시대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을 때, 그는 54살의 비교적 젊은 나이로 소비에트 연방의 서기장이 된다. 그가 부임했을 때 소련의 경제는 최악이었고,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미국은 경제력과 군사력에 있어서 압도적인 성장을 이뤄내고 있었다. 고르바초프는 미국과의 군비 경쟁에서 절대 소련이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오늘은 세제, 내일은 치약이 부족했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인민들은 생활고에 허덕였지만, 국가는 군비 경쟁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붓고 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고르바초프가 선택한 길은 '냉전 종식'이었다. 그리고 이를 이뤄내는 방법은 '소비에트의 양보'였다. 군비 경쟁만을 위해 군사력에 돈을 쏟아붓는 것을 멈춰야 했던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서방 세계에 미소와 긴장완화의 메시지를 던졌다. 처음에는 그의 군비 축소 제안에 서방 세계 리더들이 믿지 못했지만, 세계시민들은 그의 주장과 발걸음에 '세계 평화의 사도'라며 열광했다. 그리고 88년, 그는 모든 강대국의 무력 사용 포기 원칙을 주장하며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고 있는 소련의 병력을 감축하겠다고 선언했다. 뿐만 아니라 레이건 대통령과 핵미사일 폐기에 합의를 이끌어 내는 등 그 당시에는 상상하기 힘든 행보를 보였다.

 내부적으로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개인의 책임 강조, 소규모 자영업 허용,  부정부패 척결을 실시했다. 이는 압도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던 공산당 간부들의 특권까지도 침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경제는 더욱 악화되어 갔고, 상류층 뿐만 아니라 인민들 마저도 그의 정책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상황에서 서방 세계에서의 그의 인기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었다. 90년 10월 노벨 평화상까지 받게 된 것이다. 소련 사람들은 그 상이 서방 세계가 미국과의 군비 경쟁에서 진 패배자에게 내린 선물이라고 생각해 반기지 않았다.

 결국 91년 8월 19일, 보수 강경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켰고, 쿠데타는 진압되어 실패로 돌아갔지만 고르바초프의 권력은 땅으로 처박혔다. 쿠데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러시아공화국의 옐친 대통령이 과감한 결단력으로 큰 공을 세우고 권력을 잡은 것이다. 이후 고르바초프는 권력에 눈이 먼 옐친이 일방적으로 소비에트 연방을 해체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ㄷ. 평화의 사자인가 실패한 리더인가.

 이러한 고르바초프는 서구인들에게는 동구권 국가에 자유를 찾아주고, 독일의 통일을 도왔으며, 폐쇄된 공산주의 체제를 무너뜨린 인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자국 내에서는 사회주의의 무덤을 판 사람, 세계 초 강대국 소련을 붕괴시킨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과연 그는 정말 평화의 사자였을까? 아니면 실패한 리더였을까? 결과적으로 그의 존재가 자국민들에게 악영향을 미친 것일까?

 내 생각에 그가 진정으로 '평화'를 원했던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진정으로 자국민들을 위했음은 확신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지만 그가 부임했을 당시, 소련은 이미 미국과 경쟁할 힘을 잃은 상태였다. 그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였을 것이다. 군비 경쟁을 계속하며 인민의 굶주림은 나몰라라 하는 것, 그리고 냉전 체제를 종식시켜 군비를 감축시키는 것. 물론, 결과적으로 군비 감축이 경제 활성화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그는 전자를 선택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공산주의, 민주주의, 세계 평화 따위의 '대의'보다 인민들의  먹고사는 문제가 우선이었을지 모른다. 세계 평화는 그에게 있어 수단이 아니었을까?

 고르바초프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비슷한 상황의 북쪽에 누군가가 떠오른다. 그 돼지 녀석도 고르바초프의 소련과 비슷한 상황에 있다. 고르바초프와 그 돼지 녀석의 선택은 극명하게 다르지만 유사성도 있다. 고르바초프처럼 공산주의, 민주주의, 세계 평화 따위의 '대의'에는 관심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고르바초프가 인민의 안위를 위했던 것과 달리 자기 자신의 '기득권'과 '돼지 같은 삶'을 더 위한다는 것이 다르다. 아이러니하게도 고르바초프는 자국민들에게 실패한 리더로 평가받지만, 아직까지 돼지 녀석은 일부 자국민들에게 여전히 우상인 듯하다. 결과적으로 고르바초프는 경제를 살리지 못했지만, 자신의 기득권보다 그리고 대의 보다도 인민을 위한 사람이었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일주일에 딱 하루만 틀리기 위해 강해져 보겠습니다. 이 글은 제 생각들의 배설입니다. 볼일 보는데 겸손한 사람은 없잖아요? 틀린 부분이 있다면, 다른 부분이 있다면 꼭 댓글로 달아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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