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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an Lee May 16. 2024

어느 날 나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누구나 그럴듯한 계기는 있다



「 너는 어쩌다 그 춤을 추게 된 거야? 」


아니면, 「어떻게 시작한 거야?」 내가 춤을 춘다고 말하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다. 저번주 금요일에도 들었던 말이다. 나뿐만 아니라 이 춤을 취미로 삼는 사람들이 이 춤을 추지 않는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한다면, 꼭 따라오는 말 중 하나다. 「원래 관심이 있어서...」로 나는 으레 행운의 편지를 읽는 사람처럼 내가 이 취미를 시작하게 된 과정을 줄줄 읊어대곤 하는데, 사실 한 줄로도 요약이 가능하다.


심심해서요.


새 취미와 자극을 찾는 인간의 심리는 아주 단순하다. 심심하니까. 심심할 때 재미있는 것을 찾고 싶은 건 일종의 순리 같은 것이고, 30대 초반의 나는 순리를 거스를 수 없었다. 그래서 시작하게 되었다. 이 글은 여기서 사실 끝내도 된다. 하지만 나는 이 글로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가 춤을 추게 된 이유를 설명하기로 마음먹었다. 생각해 보니 이 글이 화제의 브런치 글 「퇴사:뜻밖의 비행」 이후 이야기를 하는 것이기도 해서, 20대 후반 30대 초반을 정리하기엔 이만한 핑계가 없지 싶다. 내가 무사히 지나온 과도기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일종의 프리퀄이다. 라틴 댄스 이야기보다 다른 얘기가 더 많이 나올 수 있으니 당황하지 말라는 뜻이다.





사실 살사를 시작하기 전 이미 파트너 댄스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 시험도 봤었다. 물론 살사는 아니었다. 대학교 때 들었던 사교무용 수업 덕분이었다. 그 수업은 여자와 남자가 10명씩 신청할 수 있었던 지극히 사교적인 수업이었다. 어리디 어렸던 스무 살의 나는 그냥 인기 수업에 학점이 PASS/FAIL로 갈린다기에 클릭 한 번에 운 좋게 들어갈 수 있었는데, 들어가 보니 '아르헨티나 탱고'를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난 그냥 그전에 두어 번 들어본 자이브나 룸바같은 댄스스포츠를 배울 줄 알았는데, 들어본 적도 없는 '아르헨티나 탱고'라니. 생각해 보면 수업을 진행하던 교수님의 취미였던 것 같다. 교단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고등학교 때는 골프에 빠진 체육선생님이 애들한테 퍼팅을 가르치던 학교에 다녔으니까. 아무튼 그렇게 나는 라틴과 그때 처음 만났다. 시험날은 무려 압구정에 있는 탱고바에 가야 했다. 시험을 보고서 교수님은 그 탱고바에 우리를 풀어놓고 알아서 놀라고 했는데, 그게 지금 생각해 보니 소셜시간이었던 것 같다. 난 일종의 소셜댄스 조기교육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때 그 수업은 너무 어려웠다. 낯도 가리는데 모르는 사람이랑 손을 붙잡고 어깨를 걸쳐야 한다는 그 부담감이 스무 살의 나에게는 상당했다. 그래서 사교무용 수업을 무사히 마치고, 나는 좋은 추억으로 남긴 채 내재된 흥을 노래방으로 풀거나, 일 년에 한두 번 클럽에 가는 걸로 풀곤 했다. 그것만으로도 20대의 흥은 충분히 해소가 되었다. 그리고 서른두 살이 되었다.


갓 서른두 살이 된 나는 지난 2년간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떠나보내야 했다. 불안한 미래를 격하게 위로해 주던 대학원을 졸업했고, 워너원이 해체했다. 워너원이 여기서 왜 나오냐면, 나도 그 시절 그 국프 중 하나였고, 최애를 데뷔시키는 데 성공한 국프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팬이 되었다. 한마디로 덕질을 했다는 거다. 그것도 아주 세게. 내 퇴직금을 텅장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을 정도로. 학교 생활을 제외 한 시간의 대부분을 덕질하는 데 썼다. (가끔 제외 안 시키고도 쓰기는 했다) 그 그룹을 좋아하는 내내 도파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오묘하게도 대학원의 입학시기 졸업시기와 워너원의 데뷔와 해체 시기가 맞물렸다. 워너원 해체콘서트를 3일 내내 다녀오고 난 지 일주일. 나는 곧 심심해졌다.


첫 직장을 그만뒀을 때 생긴 공백의 느낌과는 차원이 달랐다. 인생의 경험치가 쌓여서 그런 걸 지도 모르겠다. 레벨업이 이런 건가. 당시 나는 아직 직장이 정해지지 않았었는데, 이상하리만치 많이 불안하지 않았다. 그저 이 시간을 잘 보내다 보면 좋은 곳에 자리를 잡겠지 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뭔가를 하고 싶었다. 그게 뭐 새로운 꾸준히 할 취미를 찾아야지 보다는 시간이 많으니 헛되이 보내는 거 말고 혼자 놀 수 있는 재밌는 것들을 찾아봐야겠다는 마음이었다. 마치 아이스크림에 파핑캔디를 뿌리듯이, 그즈음 나는 이미 알고 있던 다양한 플랫폼이나 어플을 통해 원데이 클래스를 다니며 학업과 덕질이 끝난 공허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그러다가 모 어플에서 눈에 띈 건 '살사 무료체험'이었다. 하루 와서 배우는 게 공짜라니. 왜지. 그렇지만 이전에 재즈댄스며 폴댄스며 탱고까지 춤을 접한 경험이 없지 않으니 의심보단 호기심이 앞섰다. 홀린 듯이 가장 가까운 토요일 수업을 신청했다. 장소는 홍대였다.




「 이런데가 다 있네 」


쿰쿰한 냄새, 조금은 어두운 느낌. 미끄러운 나무바닥. 그 위에서 뭔가 하고 있는 사람들. 살사바에 들어간 첫인상이었다. 뻘쭘한 모양으로 구석에 앉아 사람들이 뭘 하는지 구경했던 것 같다. 원 투 쓰리, 파이브 식스 세븐, 연신 구령에 맞추어 걷고 남자들이 손을 번쩍 올리면 여자들은 턴을 돌고. 아 저게 살사인가 보구나. 좀 신기했던 것 같다. 티브이에서 봤던 라틴댄스의 화려함 보다는 뭔가 더 소탈한 느낌이 들었다. 어렵지 않아 보이는데?라고 건방진 생각을 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신기하게 여기저기 눈을 굴려가며 구경하며 기다리니 체험신청한 사람들 수업을 한다며 신청자 맞냐고 묻는다. 체험 수업을 들어갔다.


여자 세 명, 남자 여섯 명


여덟 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통상적으로 성비가 맞는 게 흔치 않은 일이다. 아무튼 그날은 나까지 체험수업에 여자가 셋 뿐이었다. 그 말인즉슨, 나는 한 시간을 꽉 채워 베이직을 밟고, 턴을 돌아야 했다는 뜻이다. 공짜 수업이었는데 없던 본전을 챙길 수 있었다. 체험수업을 하는 모두가 강사의 구령에 맞춰서 베이직을 엉거주춤 걸었다. 근데, 어설픈 거 아는데도 좀 재밌었던 것 같다. 어릴 때처럼 모르는 사람의 손을 붙잡고 춤을 춘다는 게 더 이상 부담스럽지 않았다. 앞에서 턴을 돌리는 게 누군지 중요하지 않았다. 박자에 맞추어 스텝을 밟고 턴을 도는 내가 신기하고 약간 기특했다. 어 나 원래 몸치인데. 춤출 수 있나? (당연하지 기초인데)


춤은 그때까진 나에게 좋아하지만 닿을 수 없는 무언가였다. 이미 재즈댄스와 폴댄스를 포기한 전적이 있었고, 그나마 가끔 어설프게 따라 해보는 케이팝 포인트 안무 정도(원더걸스의 노바디 같은)로 나는 내 춤의 한계를 정했었다. 폴댄스 포기한 이후로 춤은 다시 시작 안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일단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베이만 밟고 턴만 도는 지극히 기본적인 동작으로 나는 무슨 용기와 자신감을 얻었던 걸까. 한 달만 해보지 뭐. 하며 왕초보 수업을 신청했다. 2019년 2월. 그렇게 살사를 처음 만났다.


그리고 2024년 5월. 나는 여전히 춤을 추고 있다. 오글거리는 말이지만 내 열정의 주인이랄까. 코로나를 버텼으며 바차타는 절대 안 출 거라고 선언했는데 바차타를 더 춘다. 소속이랄 게 없는 수준으로 징그럽게 바 죽순이로 놀러 다니던 시절을 지나 무대 공포증 심하다며 공연은 절레절레하던 사람이 월평균 2회 공연하는 사람이 되어 여전히 춤을 추고 있다. 분명 심심해서 가볍게 시작한 취미였는데, 결코 가볍지만은 않게 되어버렸다. 이따금씩 생각한다. 어떻게 이렇게 됐지. 근데 어쩌겠어. 무거워도 버겁지가 않은걸.


아무튼 한마디로 말하자면, 시작은 별생각 없었는데 어지간히 좋아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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