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스러움에 대한 간단한 생각

짧은 머리와 청바지와 운동화를 좋아하는 여자애에 대한 이야기.

by 하나

나는 청바지를 좋아한다.

치마나 짧은 옷은 신경을 많이 써야 해서, 내 행동에 제약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불편하다. 구두보다 단화, 운동화를 좋아하는 이유도 동일한 맥락이다.


머리를 숏컷으로 짧게 자르는 것에 대해서도 거부감이 없다.

중학교 3학년 때, 미용사 언니의 실수(?)로 짧게 자른 머리가 생각보다 나에게 잘 어울렸고, 짧은 머리의 내 모습이 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이후로도 짧은 머리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누구나 그렇듯, 나도 내 눈에 이쁜 모습, 내 마음에 드는 내 모습대로 지내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20살 대학생 새내기 때도 청바지와 져지 + 운동화 조합으로 다니는 걸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치마를 입고 학교에 갔던 날이었는데, 친구들과 선배들 무리가 한데 섞여 있는 자리에서 한 남자 선배가 ‘너, 여자 코스프레하고 다니냐’며 나를 보고 낄낄거렸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그 순간 나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창피함을 느꼈다. 그 날 귀까지 빨갛게 달아오르게 했던, 어울리지 않게 웬 여성스러운 옷이냐며 낄낄거리는 그 한마디가 나에게 트라우마를 남겼던 것 같다. 나는 여성스럽지 않은 여자애라고.


20살의 그날 이후로 꽤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 20대 중후반이 되었을 때도 여전히 운동화에 청바지 후드티를 입고 고향에 내려온 나를 보고 엄마는 ‘ 이제 좀 여성스럽게 하고 다녀’라고 이야기했다. 엄마는 엄마 눈에 너무 편하게 하고 다니는 내가 여전히 어린애들처럼 입고 다니는 것 같아 걱정을 하셨던 듯하다.


뭐랄까... 이렇게 평생을 통틀어서 ‘여성스러움’은 나에게 뭔가 항상 넘어야 할 큰 산이었다. 구두, 치마, 원피스, 하늘하늘한 소재의 블라우스, 파스텔톤 컬러의 무엇들로 정의된 듯한 그 ‘여성스러움’이 왠지 거북했다. 나는, 구두도 치마도, 하늘 한 소재의 원피스도, 핑크, 아이보리 등으로 대표되는 컬러의 조합들도 내 취향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20대 중반이 될 때까지 나 역시 ‘여성스러움’을 얌전하고, 조신하게 웃고, 긴 생머리에 마르고, 구두를 익숙하게 신고, 화려하거나, 하늘 한 옷들과 치마를 입은 모습이라는 이미지로 정의했다. 그랬기 때문에 ‘여성스럽지 못한 나’에 대해서 뭔가 열등감? 피하고 싶음? 뭐 그런 마음들이 있었다.


여성스럽다.라는 개념에 대해서 막연히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었지만, 내가 부담스러워하는 전형적인 ‘여성스러움’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는데 까지는 생각이 닿지 못했다. 다만 ‘그래, 난 여성스럽지 않지만 그래서 뭐?! 난 내가 좋아하는 대로 다닐 거야!’ 정도였지. 나는 머리가 허리까지 내려오는 내 모습도 좋지만 짧은 머리의 나도 좋았다. 치마를 입어서 잘 어울리는 나도 좋지만 청바지를 입은 내가 더 마음에 들었고, 구두를 신으면 이뻐 보일 때도 있지만, 나에게 편한 신발을 신고 급 할 땐 도당당 뛰어다닐 수 있는 상태가 훨씬 마음에 든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여성스러운 모습’ ‘여자다움’ 이 갖고 있는 그 전형. 모두가 떠올리는 어떤 이미지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도 여성스럽다고 생각하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나도 구두를 신기도 하고, 치마가 입고 싶은 날에는 치마를 입지만, 20대를 지나오면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모습이 어떤 것인지 점점 선명하게 정리하게 됐다.


최근 여성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각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보면서, 나 역시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여성성에 갇혀있었다. 라는걸 깨닫게 됐다. 그리고 ‘여성스럽다’는건 그냥 ‘여자인 나의 모습’으로 정의해도 전혀 문제 될 게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20대 후반쯤 되었을 때도 내 짧은 머리를 보고 ‘어떻게 여자애가 머리를 저렇게 자를 수 있지?’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지만, 이제는 창피해하거나 얼굴이 달아오르지 않는다. 20살 때랑 동일하게 여전히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다니는 나를 보고 ‘너도 좀 여자같이 하고 다녀’라는 말을 듣지만 이제는 이제는 ‘내가 여잔데, 이 모습이 여성스러운 거 아니에요?’라고 대답한다.


나는 내가 좋은 모습대로, 내가 편한 나의 모습대로 살고 싶고 그렇게 살아왔다. 지금까지 그래 왔지만 나는 내가 보기에 이쁘고, 편하고 좋은 대로 하고 다닐 거다. 지금은 그게 주로 청바지와 운동화, 티셔츠이지만, 내가 구두를 신고 싶고, 치마와 원피스 등등의 옷들을 입고 싶은 날에는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입고 다닌다.


혹시, 예전의 나처럼 누군가가 정해놓은- 자신이 결정한 여성스러움이 아닌 다른 사람의 기준이 반영된- 여성스러움에 대해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당당하게 말하자.


'여자인 내가 하고 다니는 이 모습이 여성스러운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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