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by Sayoo


나의 오랜 꿈은 작가였다. 작가를 꿈꿨던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였다. 그 시절에 만든 ‘장래희망 : 작가’라고 적어놓은 초록색 목걸이를 나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그 목걸이가 서랍의 깊숙한 구석에 몇 십 년째 보관되어 있는 것처럼, 작가라는 나의 꿈은 내 마음 한 켠에 접힌 채로 아주 오랫동안 보관되어 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혼자서 소설이나 시를 쓰면서 시간을 보냈다. 세상에 내놓을 정도로 완성된 작품은 거의 없지만 말이다. 그래도 글을 쓰는 시간만큼은 언제나 즐겁고 행복했다. 하루 종일 글만 쓰며 사는 삶은 얼마나 행복할지.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고는 했다.


그러나 글을 쓰려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글을 읽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10대 시절에 한국 문학과 다양한 소설을 읽기는 했지만, 글을 쓰겠다는 꿈을 가진 사람 치고는 읽는 양이 적은 편이었다. 읽음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깨닫고 있었으나 나는 그 사실을 부정했고 또 회피했다. 글 읽을 시간이 없다는 핑계와 읽는 것보다는 쓰는 것이 더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눈앞에 쌓여있는 책들을 옆으로 밀어두었다.


그래도 운은 좋은 편이었다. 읽음이 그토록 부족했는데도 원하는 전공에 합격했기 때문이다. 나는 신문방송학과에 진학을 했고, 졸업 후에는 기자 또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글 쓰는 것이 좋았고,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 더 잘 쓰게 되리라고 막연하게 기대하기도 했다.


그런 기대를 품었던 나는 사실 공부를 열심히 한 학생은 아니었다. 대학 시절 내내 나는 혼란스러웠고, 그런 나의 혼란스러움을 잘 다스리지 못했던 것 같다. 그나마 재미있게 들었던 수업은 기사 쓰기 수업이었다. 기사도 결국 글이었으므로, 기사를 쓰는 것 자체는 매우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나 늘 마음에 남아있는 나의 진짜 꿈은 작가였다. 언젠가는 문학 장르의 글을 꼭 써보고 싶다는 생각은 내 안에 계속 남아 있었다. 하지만 문학만큼은 내가 쉽게 넘을 수 없는 산이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읽은 것이 많지 않았으니까. 대학생 때 문예창작과 수업을 신청한 적이 있었는데, 수업을 한 번 듣고는 바로 철회해 버렸다. 겁이 났던 것이다. 많이 읽지도 않았는데 쓰려고 하는 나 자신이 우습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작가는 내 길이 아니구나, 하고.


작가라는 꿈을 접어버리면서는 기자라는 꿈도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서는 그냥 운이 따르는 대로 살았다. 졸업 후에는 누구나 알 만한 대기업에 입사하게 되었지만, 단 하루도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행복이라는 것. 이것은 내가 늘 원하고 추구하는 것이었지만, 강렬하게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점점 더 멀어지는 신기루이기도 했다. 나는 진심으로 내가 행복한 일을 하기를, 그래서 일하면서 행복하기를 바랐다. 이런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토로했을 때에는 이런 대답이 들려왔다.


"글쎄, 행복한 일이 세상에 있을까? 너무 이상적인 것 아니야?"


이상적이라는 생각을 나 또한 하고 있었다. 나는 행복을 말하고 있음에도 행복하려고 하기보다는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고 있었으니까.


또 다른 누군가에게 '나는 글이 쓰고 싶어. 글 쓸 때가 가장 행복해.'라고 얘기했을 때에는 이런 말이 들려왔다.


"회사 다니면서 글을 써봐. 퇴사는 하지 말고. 진짜 글을 원한다면 어떻게든 쓰게 될걸."


이 역시 나름 맞는 말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바쁜 시간 속에서 짬을 내면서라도 글을 써야 진정한 글쟁이가 아니겠는가. 누구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글을 쓰고, 또 누구는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써서 소설을 냈다는데. 진짜 소질이 있고, 진짜 글을 쓸 운명이라면 그렇게라도 글을 쓰게 되는 것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12년을 더 보냈다. 긴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사랑하는 사람을 찾았으며, 하루에 수십 번을 껴안아도 더 안아주고 싶은 소중한 아이들을 낳았다. 전체적으로는 꽤나 바쁘게 살았던 것 같다. 건강상의 이슈가 한 번 있었고, 지금은 조금씩 회복하는 중이다.


많은 일들을 겪으며 이제야 나는 정말 어른이 된 것 같은데 오히려 지금, 행복을 말하고 글쓰기를 말하던 어렸던 내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나는 천천히 내 안의 나를 살펴보다가 너무나 당연한 두 가지를 깨닫는다.


첫째, 나는 행복한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다.

둘째, 글을 쓰려면 먼저 글을 읽어야 한다.


나는 대기업에 다닐 때보다 지금이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하다. 사람마다 행복의 역치는 이만큼 다른 것이다. 나는 나에게 맞는 행복한 일을 찾아서 이 일을 계속해나가야 하는 사람이다.


또한 나는 글을 쓰고 싶다. 글을 쓰기 위해서 글을 쓰려는 욕망을 잠시 내려놓기로 한다. 쓰기 전에는 많은 글을 읽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지금은 의도적으로 많은 독서를 하며 살고 있다. 때로는 잘 읽히지 않고, 때로는 어려워서, 때로는 바닥에 쌓여있는 빨래를 하기 위해, 설거지도 해야 하고, 마트도 가야 하니까. 그런 이유들로 책을 덮는다. 그럼에도 나의 부엌에, 거실에, 침대 옆에, 심지어 바닥에도 책들이 높이 쌓여 있다. 틈틈이 쓰고, 읽고, 생각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다.


이런 삶을 산 지는 이제 곧 1년이 된다. 도처에서 글을 읽기 시작하니 전보다는 글이 잘 쓰인다. 이 시간들이 아까워서, 그냥 흘려보내기 싫어서, 붙잡아두고 싶어서 내 생각들을 글로 남기고자 한다.


얼마 전에는 서랍 안 깊숙한 곳에 박혀있던 나의 초록색 목걸이를 다시 꺼내보았다. 한동안 나는 이 목걸이를 잊으려고 했다. 이루지 못 한 꿈 때문에, 아니, 그 꿈을 감히 넘보려고 했던 나의 얄팍한 존재 때문에.


하지만 이제 나는 나를 가득 채웠던 핑계와 안일함과 허상과 두려움을 걷어내는 중이다. 그리하여 나의 인생이 조금씩 더 투명해지고 있다. 투명해진 인생 사이로 나의 본질과 나의 꿈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오래된 초록색 목걸이는 이미 색이 다 바래버렸지만, 그럼에도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빛을 내는 것 같다.


꿈과 행복, 그리고 일에 대해 나는 오래 고민했다. 나의 고민을 기반으로 글을 쓰는 것은 내 오랜 꿈을 처음으로 이뤄보려는 나의 안간힘이다. 동시에 10년도 더 전의 어린 나에게 보내는 위로이기도 하다. 허우적거리는 나의 글들이 나 자신 외에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면 그것만으로 나는 꿈을 일부 이루는 셈이다.


나는 행복한 일을 하겠다. 글을 쓰겠다. 글을 쓰기 위해 먼저 글을 읽겠다.


이것이 내가 앞으로 살아야 할 인생임을 깨닫는다. 이 글을 쓰면서 내 옆에 쌓인 책들을 살짝 들춰본다. 책 하나는 1/3 정도만 읽고 덮어둔 지 오래다. 오늘부터 다시 읽기로 한다. 그리고 조금씩 글을 써보기로 한다.


이렇게 내 인생이 점점 더 투명해지면, 나의 행복이 더욱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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