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뜨개질로 필요한 옷을 만드는 데는 ROI의 한계가 있다.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도 힘들다. 누군가 옷을 리폼(Reform)이라도 할라치면, 손 뜨개질 방식 그대로 따라 해야 한다. 타 산업분야에 '자동화'를 부르짖는 ICT기업들이 본인들의 일에는 '자동화'에 손을 놓고 있는 아이러니한 현실이기도 하다. SW 산업, 특히 가장 많은 개발 인력이 몸 담고 있는 엔터프라이즈 애플리케이션 시장에서 왜 '제품화'와 'SaaS화'를 못하고 있나.
사용자가 이해하고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 내의 보편적 기술 패러다임 중심, 그리고 사용자 위주의 산업 정책이 만들어낸 후진성 때문이다. '내가 아는 것은 손 뜨개질 방식뿐이니, 반드시 손 뜨개질 방식으로 해야 한다'라고 하니, SW 전문기업도 외주 계약을 성사시키려고 '네! 손 뜨개질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해야 한다. 전문 기업은 새로운 '자동화 기술'에 투자할 이유와 명분을 잃게 돼버렸다. 보다 진보된 기술(직물 자동화 기계 방식)을 제안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상한 산업 사이클이 반복되며 후진 기어를 넣고 있다.
직물 패션 산업은 '자동화' 산업 바람을 타고 내수확대뿐 아니라 대한민국 수출 효자 산업이 되었으며 대한민국 수출 산업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자동화' 기술이 시장을 확대시키는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체험했지만, 대한민국 SW 산업에서만큼은 아니다. 오히려 더 노동집약적이고(기술 복잡도 상승) 보편적인 기술 접목에 그치며, 가장 '자동화'에 둔감한 산업이 되었다. AI(인공지능) 같은 분야는 '자동화'를 넘어서는 신기술 분야 아닌가라는 반문이 나올 수 있다. AI 엔진 개발은 신기술 분야이지만, 이를 응용한 산업은 SI라고 불리는 개발 노동 시장에 머물러 있다. 손 기술에 종속적이지 않은 신기술이 계속 나오고 있지만, SW 시장에서 보편적 기술 패러다임의 벽을 넘어서기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MSA(마이크로서비스 아키텍처), 컨테이너 기술, 그리고 DevOps 등, 손 뜨개질을 위한 다양한 최신 기술과 방법론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우리 엔지니어들도 이런 손 뜨개질 익히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기고 있다. 그것이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글로벌 기업의 손 뜨개질 기술이라면, '내가 이 손 뜨개질 전문가야'라는 이름으로 각 종 기술 콘퍼런스의 스피커로 등장하고 있기도 하고 책도 출간한다. 하지만 '완성품화'에 대한 개념과 접근 없으면 그저 또 다른 기술 패러다임의 전환 프로젝트 하나 더 하는 것일 뿐, 나아지는 것이 별로 없다.
손 뜨개질 기술이 불필요하다거나 쓸모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 화려한 손 뜨개질 기술로는 '대량 생산과 유통'을 통한 시장 확대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손 뜨개질로 나온 산출물은 규모의 경제를 만들 수 없다. 매번 직접 손 뜨개질로 대응하려니, 시장 니즈를 제때에 반영하기도 어렵다. 손 뜨개질의 예술성이나 전문성의 문제가 아니라 '초스피드'한 '초연결성' 이 강조되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대한 대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프레임이라는 의미다. 구글이나 아마존은 잘하고 있지 않느냐라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구글이나 아마존 같이 엄청난 리소스(자본과 인력)를 보유한 기업만이 손 뜨개질로 하더라도 커버할 수 있다. 우리 기업들의 현황이 구글과 아마존 같은 리소스를 확보하거나 투입할 수 있다면 문제없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지 않은가. 스타트업 같이 제한된 리소스의 기업들이 글로벌 서비스를 손 뜨개질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무모한 자신감일 뿐이다.
리소스가 풍부하지 않은 기업일수록 제품화 품질 지수를 높여야 한다. 시스템이나 서비스 기획 단계 시부터 '우리가 직접 하지 않아도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거나 확장할 수 있는 서비스'를 고려해야 한다. 애플리케이션의 기능만 비슷하게 개발한다고 절대 글로벌 애플리케이션과 같은 서비스나 제품이 나올 수 없다.
제품화란 COA(Customer Optimized Application) 즉 커스터마이징 가능한 애플리케이션을 뜻한다. 고급 손 뜨개질 기술을 가지고 있고, 웹과 클라우드 상의 풀 스택을 보유했다고 해서 COA를 개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기술을 사용하는가 보다 '내가 아닌 남이 고쳐 쓸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는 엔지니어가 되어야 하며, 그런 인력을 보유한 기업이 제품과 SaaS 서비스를 가질 수 있게 된다.
만약 솔루션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없으면 안 된다고 하는 엔지니어, 글로벌 시장을 직접 뛰어다니고 싶어 하는 엔지니어가 있다면, 기업의 미래를 위해서 서로 이별하는 것이 좋다.
"제품이 별거예요? 요구사항 받아 개발자가 얼른 반영하고, 컴파일해서 테스트한 후 배포하면 되지."라는 말을 하는 국내 개발 엔지니어가 부지기수다. 이런 개발자들이 많을수록 프로그램 소스는 각종 Option 처리가 난무하게 되고, 초기에는 One-Source 관리가 되지만 시장과 고객 유형이 팽창되면 곧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손 뜨개질의 한계이며 글로벌 시장 진출의 실패 원인이다. 솔루션 패키지이든 클라우드 웹 앱 서비스이든 마찬가지다.